[대중문화평론가/칼럼리스트/이승섭 시인] 글을 쓰는 작가라고 하면 문인이라는 칭호가 따라다니는 것은 운위(云謂) 하는데 오랜 전통이 따라다닌다. 어느 시대에서나 글은 곧 가치 정신의 지표를 갖는 일면 정신의 고고(孤高)함을 증명하는 방법의 하나였으며 그만큼 정신의 정수(精髓)를 뇌리에서 짜내는 직업의 신성함을 의미한다. 사실, 인정을 받는 만큼 부수적인 갖춤이 있을 때, 지향의 목표가 뚜렷해야 하고 무게를 갖는 일상의 정서가 부스러기가 아니라 정제된 함축미가 필요하다. 이런 조건에 합치되는 일은 오랜 습작과 단련의 결말이 아니면 지난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통상적인 글에 누습(陋習)을 반복하는 창조성 결여를 지적하게 된다. 창조는 언제나 신선함과 선도적인 사고에 발현 점을 갖는바, 이런 조건에 합치는 곧 개성의 뛰어남을 이룩하는 일이다. 개성이 없다는 글은 또 다른 누습의 함정에 빠지는 결과에서 외면의 눈총을 받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신의 고양을 목표로 설정하지 못하면 결과에서 독자는 외면 혹은 침묵으로 지나치는 일이다. 이런 현상은 안 써야 하는 글의 이유를 합당한 논리로 처리된다. 물론 상이나 숲의 푸른 색채는 온갖 초목이 어울릴 때 멀리서 바라보는 녹색의 단일성을 갖지만 가까이서는 필요와 불필요의 구분이 정확성으로 나타난다. 왜 그런가 하면 글에 개성의 원인이 아니라 근인(近姻)에서 가치의 감동이 수반된다는 점을 특기할 일이다. 미상불 분석적인 현상에서 특징을 갖는 요인이 명확해진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문인은 기하급수적인 증가를 나타낸다. 어쩌다 문인의 모임에 나가면 생면부지의 신인이 와글대는 현상이 만연하고 있다. 적어도 수 삼 년에 이력을 내세울 것도, 없지만 과거와는 판이하게 다름을 가질 때, 선배들이 주눅이 드는 일은 양적인 팽창과 밀도를 함께 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문인의 숫자가 많음과 창작의 수준과는 불비례의 어긋난 기울임은 결국 탄식을 불러오는 외면이 당연한 것 같다. 때를 벗지도 않고 몇 번의 작품 발표와 한 권의 저서를 출간하면 중견의 어깨가 되는 가벼움이 만연했으니 다시 돌릴 수도 없는 한숨이 고작이고 외면이 당연지사이다. 질서의 무너짐은 잡지의 숫자와 비례하는 것 같다. 신인을 배출하는 일은 곧 잡지의 운영과 상관이 있음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악순환은 이 깊이 진행되는 일이라 어느 방향이 옳다고 시정을 촉구할 수도 없는 한계를 넘어 버렸다. 그렇다면 탄식이 정답이냐 하면 그것은 아니올시다, 이다. 잘못된 길을 수정하거나 바른길로 지나갈 수 있는 끝없는 조언이 필요하고 비평의 선도적인 기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에 비평은 이미 시들어 기력이 없는 지경임을 필자 또한 인정한다. 물론 뛰어난 논리와 합당한 판단을 구유(具有)한 사람이 전혀 없음은 아니지만, 머리는 기능을 하고 있으나 가슴이 메말라 있는 경우가 흔함을 목도(目睹)한다. 또한 공부의 지속성 연구의 지속성이 없기에 거의 10년이면 비평가의 수명이 끝나고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는 비평가가 많다는 아픔은 문학의 아픔과 비례하고 있다. 자기의 본분을, 잃고 다른 쪽에 고개를 돌리는 행위는 결과적으로 실패의 문패를 달았다는 말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이 문학의 질서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상징하는 행위인 점이다. 시를 쓰는 시인의 경우 두 가지로 구분한다. 하나는 열심히 정진하는 그룹이 있다면 또 한 그룹은 이름만을 즐기는 명찰 - 귀걸이 목걸이의 장식용 시인 - 전자의 숫자는 매우 희소하고 후자는 흘러넘치는 양상이 한국 시단의 모습이고 문제점이라 보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시 공부라는 학습이 전혀, 안된 상태에서 엉겁결에 시인이라는 호칭에 취하여 문자의 나열 즉 행과 연을 끊어 짧으니까, 시가 된다는 모독 행위가 만연하고 있다. 시와 감수성은 훈련으로 어느 정도 젊은 날의 시심을 회복할 수 있지만, 뼈를 깎는 정진에의 노력이 없기에 답보의 정체가 길고 긴 시간에 파묻히는 아픔으로 남게 된다. 왜 그런가 하면 언어의 운용에 무게를 실감하고 음악성으로 리듬을 깨닫고 그림으로 이룩되는 상상의 회화성과 의미의 초점이 모아질 때, 시는 비로소 감동에 눈을 뜨는 법이다. 이런 난제 앞에 시인은 오직 입학만 있고 졸업이 없는 끝 모를 정진이 요구되는 이유는 나변(那邊)이 아니다. 자기를 아는 행위는 반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한 편의 시는 시인의 인격이 들어있고, 한 권의 시집에는 전 생애가 담기는 것이다. 이런 무게를 실감할 때, 시어 한 글자나 마침표 하나에도 신명을 실어야 한다. 시는 모든 것이, 의미로 통하는 문을 가져야 비로소 시다운 시가 되는 것과 같다. 왜 시를 읽어야 하는가의 물음은 시인이 들어야 할 몫이다. 독자를 깨우치는 시인이 될 때, 시인은 때로 선생님일 수도 있고 도덕적인 위엄을 갖출 수도 있다. 왜 그런가 하면 다양한 인격을 소화하는 성품은 곧 끝없는 수련에서 시의 길은 환한 불을 밝힐 수 있다. 어쩌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간절히 불러 모으는 초점으로의 사고가 단련될 때, 시의 신은 얼굴을 보여주고 금시 달아난다. 왜냐하면, 시는 순간의 예술이며 이를 찰나에 포착하지 않으면 꼬리만 보이고 머리와 몸통이 없는 허무의 그림자와 같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시단은 수렁에서 나올 수 있는가 아닌가는 오직 시인 자신들이 선택하는 고행을 갈 것인가에 갈림길이 분기한다. 시인 자신들이 사명과 책임감을 느낄 때, 밝은 길이 열리는 것은 자명한 조언일 것이다. 시인은 모든 문학인의 맨 앞자리에 설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깨어난 정신을 소유자라는 말이 합당한 이유이다. 2025. 07. 대중문화평론가/칼럼니스트/이승섭시인 [필자 저서] [필자 저서] [필자 저서]
[대중문화평론가/칼럼리스트/이승섭시인]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려고 병원에 admission 했다고 가정 해보자, 한국 의학의 경우는 한방이나 양방이나 맥을 짚고 난 후에 그 사람의 모든 상황을 파악하는 문진과 맥진 방법이 지금까지의 진단이었다면 이는 종합에서 얻은 인간의 시체를 우주로 파악하는 방법이 동원되었다. 서양 의학의 경우엔 아픈 부의와 판단에 따라 집중적으로 메스와 항생제가 치료의 주요 수단이다. 우리도 의학이 발전하여 세계적 수준이 되었지만 이는 분석과 해체에서 얻은 전적으로 얻은 서양의 치료 방법이라면 동양은 종합과 분석의 결합에서 제3의 의학적 처방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대체 의학이라 말한다. 어느 것이든 전적으로 옳은 일방성은 없다. 문학에서도 이런 이론은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말하고 싶다. 다시 말하면 서양적인 이론의 추구뿐만 아니라 동양적인 전통의 결합으로 새롭게 바라보는 방법론에 필요성이라 하겠다. 현재 한국문학은 갈림길에 있다는 생각이다. 2000년 초부터 우리 문학의 판도는 너무나도 조용하고 액티브(activist)한 다양성이 부재한 듯하다. 민중문학이 잠들고부터 정체의 긴 시간이 무료하게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뚜렷한 없는 이슈가 없는 현실에서 예언의 말은 들리지 않고 침묵처럼 조용한 현상이 과연 좋은 것인가는, 차치(且置)하고라도 발전을 위한 모티브가 없으며 고민 없음을 대변하는 현실인지는 글쎄올시다. 이다. 물론 우리 문학의 주소를 언급하는 데에는 남한과 북한의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북한은 문학이 아니라 아첨 혹은 정권 잡이의 문학 – 이도 문학이라면 문학인지 모르겠지만 엄밀한 잣대로 말한다면 거론할 말은 제한적이다. 왜 그런가 하면 표현의 자유가 없는 곳에서 정해진 명령의 하달을 실천하는, 이른바 노동당의 기준에 적합한 경우, 충실한 문학인으로 대접받는 일종의 기록물이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우상 같은 표현만 있는 문학은 이미 문학의 이름이 아니라 일종의 광고에 지나지 않는다. 문학이란 표현의 자유를 어떻게 극대화하느냐의 함량에서 훌륭한 문학의 업적이 달성된다고 믿는다면 남한의 경우 상업성에 오염되었다 하더라도 표현의 자유가 구가 되는 현상은 올바른 징조이고 미래를 낙관하는 결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항상 한국문학의 문제는 심도에서 사상의 승화가 부족하다는 말을 되뇐다. 감각적인 표현에서는 진전을 이루었지만 정작 그 작품 속에 진지한 사상의 깊이에 고갈 현상이 있다는 말이다. 왜 그런가는 간단히 언급하기에는 어렵지만 우리 자신의 표현에 전통이 아직도 깊은 맥락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명백한 것 같다. 다시 말하면 우리 민족의 전통 정서는 자기를 해체하거나 분석하기보다는 <우리>라는 문화에 녹아 있는 생각의 문제이기에 참혹한 전쟁을 겪었어도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 같은 전쟁 문학이 없고 – 이런 전통은 고래로 올라가면 더욱 자명하다. 이른바 신라 통일 - 나는 통일이라는 말에 시비를 걸고 싶다. 당나라를 끌어드린 신라통일의 문제는 재론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삼국의 정립에 따른 각축을 다룬 진정한 역사적인 통찰의 안목이 없었고 근대로 와서는 온갖 전쟁의 참화 – 7여 년의 임진왜란도 그렇고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삼전도에서 청나라 왕에게 항복 문서를 바친 병자호란 또는 6.25의 비극은 너무 통렬하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는 둔감하고 남의 시비에는 민감한 정서를 <우리>라는 두루뭉술로 포장하는 관용이 있기 때문에 어느새 나의 비극을 잊어버리는 징후가 사상의 심화에 미흡한 표현력을 갖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서구의 사상사는 결국 자기의 문제로 시작해서 객관을 바라보는 접근법, 귀납적 논리학이 주류를 이룬다면 우리는 연역적 논리에 가깝지만 – 보편에서 특수로 가는 결말이기보다는 보편에서 시작하여 다시 보편에 머무는 논리에 익숙한 것이 추상적인 현상으로 남게 된다. 그러나 귀납적 논리도 아니고 연역적인 논리도 아닌 중간에 머무는 일 때문에 특성이 없는 결말에 직면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 문학이 심도는 돌뿌리에 체이는 안타까움을 맞는다. 북한의 세습 정권을 보면 금새 그 뜻을 알게 된다.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면서 3대 세습이 어떻게 민주주의와 인민공화국의 간판이 될 수 있는가 말이다. 오로지 독재자 김정은이 향하문 이외는 모두 차단하는 인간 지옥이 유지되는 것은, 결국 <우리> 신앙 문화의 함정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에서 그 원인은 나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를 위한 명분 아래 온갖 수사를 통하여 동원하여 합리 둔갑 될 때 용해되는 <우리> 정서의 함정을 벗어나지 못하는 최면이 깊어지게 된다는 뜻이다. <우리>를 벗어나면 악이 되고 나는 우리에 소속된 혹은 없어야 당연해지는 일이 어떻게 문학이 추구하는 휴머니티의 소산이 되겠는가? 한때 남한에서 극심했던 저항의 문화도 그렇다. 결국 끼리끼리의 문화였지 발전적인 <우리>로 이르지 못한 것은 편 가르기의 우리에서 너는 적이고 나는 선이란 이분법만 작동되었을 뿐 진정한 용해의 공동에 터가 없는바 일방성 때문에, 공통의 선이 없어지고 독선적인 메아리를 던지다가 소멸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하나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나에서 출발해서 우리로 가는 공동의 광장이 서구적인 사상의 모델이라면 우리 문화는 우리에서 출발하여 결국 우리로 돌아가는 공허만이 남게 되었으니, 우리의 문학 작품에는 깊이를 발견하지 못하고 표피적인 현상만 만연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한때 유명했던 대하소설도 대부분 가족사의 나열이나 이데올로기의 분열상만 파노라마적으로 보여 주었을 뿐이지 정작 작가의 고뇌 어린 해답은 없었다고 느낀다. 소설은 갈등을 다루면서 시간의 정리라면 결국 그 스토리의 깊이엔 작가의 사상이 뼈대를 이루지 못하면 사랑방의 이야기 수준이고 고작이라는 뜻이다. 톨스토이 작품에는 그런 대답이 가득하다는 예를 들면 결론은 자명해진다. 그는 러시아 귀족으로서 자기 사상을 실현하기 위해 많은 땅을 하인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땅 만으로는 살 수 없다>나 <전쟁과 평화>, <부활> 등은 결국 언행이 일치된 사상적 표현의 결집이었다는 사실이다. 러시아의 농민 혁명의 도화선이 된 톨스토이 – 그가 추운 1월 우랄 철도의 시골 역장실에서 쓸쓸하게 죽었을 때 그의 마부도 따라 죽은 감동은 그의 깊은 인간미에 대한 참된 삶의 실현이었다. 그의 유언은 마지막 말이 “진리를 나는 열애한다.” 왜 저 사람들은, .이란 마지막 말에도 그의 사상은 녹아있다. 나를 찾는 여행은 문학인의 영원한 사명이다. 현실뿐만 아니라 작품 속에 구현되는 주인공과 등가를 이룰 때, 비로소 작품은 비로소 생명력을 획득하는 길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20세기의 최대 소설인 <모비딕>의 작가 멜빌은 살아있을 때 온갖 모멸과 굶어 죽다시피 했고 죽었을 때는 신문에 부고 한 줄도 안 나올 만큼 무시와 고독을 감내했었고, 생전에 1,775수의 시를 쓴 미국의 여류 시인 에밀리 딕킨슨은 살아 7편쯤 발표한 시인이었지만 70년 후에 평론가의 연구에, 의해 빛나는 미국의 시인이 된 일이나 우리의 한용운은 1962년 <님의 침묵>을 발표한 것은 3.1 운동의 실패, 감옥살이 3년을 겪은 후에 모조리 변절한 사람들의 슬픔과 좌절감을 백담사 오세암에서 쓴 고독한 사랑에의 뜻을 담은 88편은 연작 시라는 점, - 1965년 – 40년 후에 박노순 인권 항의<한용운의 연구>에 의해 유명 애국 시인으로 등극했고, 생전에는 동요 몇 편을 발표한 윤동주도 해방 이후 유고 시집으로 살아난 시인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인간애라는 휴머니즘의 사상에 깊은 감동을 시적으로 표현한 우리의 자랑스런 시인 – 이육사도 마찬가지이지만 말이다. 문학의 표현은 언제나 자기를 고백하고 또 주장하면서, 자기만큼 표현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결국에는 나를 어떻게 혹은 얼마나 객관적인 방법으로 바라볼 수 있는가의, 여부에 따라 표현의 심도에 감동의 파문은 따라오게 되어 있다. 아울러 자기에 몰입하거나 깊이 빠지게 되면 도그마의 함정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경계의 몫이라는 조언이 뒤따를 것이다. 명작의 조건은 하나같이 자기를 버리고 제3의 공간을 창조하는 길을 얼마나 진정성으로 표현하는가의 여부에 따라 인간애의 따스함도 전적으로 필요하다는 강조가 옳은 대답이 될 것이다. 대부분 문학은 정신이라 한다. 그렇다. 문학의 본질은 결국 사상의 실현이고 이를 어떻게 구조화하는가에 소설이 되고 이미지와 이미지를 결합하여 의미로 만드는 비유가 시가 된다면 자기라는 본질에 대한 “찾음”은 결국 문학적 표현의 깊이와 유관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표피적이고 감각적인 말초신경을 자극하거나 넋두리로 자기를 감추는 것은, 문학적인 깊이와는 멀리 있는 표현일 것이다. 즉 자기 진실을 말하는 것이, 정신 가치 사상이라 말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면서 에필로그 한다. 2025. 07. 대중문화평론가/칼럼리스트/이승섭 시인 [필자 칼럼집] [필자 시평집] [필자 시평집]
[나주경찰서 경위 김병효] 코로나19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 지역별 다양한 행사와 축제가 열리고 있는추세입니다. 이를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와 다양한 문화행사를 통한 볼거리 제공등 이로움이 적지 않습니다.하지만 공연·축제·체육경기 등 다중운집 행사장은 대규모 인파 운집에 따른 혼잡상황이 대형 안전사고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습니다. 해외에서는 이슬람 성지 메카 순례 기간 중 발생한 압사 사고,독일 테크노 음악축제 중 발생한 사망·사고 등이 종종TV에 소개되고 있으며,국내에서는 작년 이태원 ‘할로윈’ 행사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습니다. 이는 모호한 행사 주최,사전계획 부재,수용인원 초과,군중흐름 통제 실패 등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발생한 인재로 행사 주최 측,지자체,경찰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과거 행사 안전관리를 경찰이 상당 부분 담당하였으나 최근 민간경비가 발달하면서 수익성 행사는 주최자가 안전관리를 주도하고 경찰이 그 밖에 치안유지를 전담하는 민·경 공동시스템으로 전환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는 지역위원회에 안전정책실무조정위원회를 둘 수 있도록 되어있고 여기에는 소방·전기·가스·통신·군·교육 등 유관기관,전문가 봉사단체 등이 포함되어 있으므로「지역 안전관리위원회」를 행사 전 적극적으로 개최하여 행사 주최측이 민간경비업체를 활용하도록 적극 유도하고,현장 모든 상황을 염두한 대비책 마련 및 지자체,행사 주최자,유관기관,경찰 간 명확한 임무 분담을 통해 우발 상황에 유기적으로 대처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by 이승섭 연합취재본부정선군이 2018 동계올림픽 유산인 감동과 신로움이 가득한 해발 1,381m 가리왕산 케이블카를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관광 랜드마크 자리매김을 위한 브랜드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군은 지난 1월부터 운영하고 있는 가리왕산 케리블카를 동계올림픽 유산으로서의 가치, 가리왕산의 특색과 케이블카의 시각화를 통한 국민고향 정선 관광 콘텐츠 확보를 위해 정선 가리왕산 케이블카 브랜드(BI) 개발 용역을 추진하고 있다. [▲ 가리왕산 케이블카] 군에서는 14일 군청 소회의실에서 최승준 정선군수를 비롯한 관계 공무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정선 가리왕산 케이블카 브랜드(BI) 개발 용역 중간보고회를 개최했다. 이날 보고회에서는 가리왕산 케이블카의 가치를 시각화함으로써 군민들이 지역 자산을 보다 효과적으로 향유하고 관광객들에게 국민고향 정선을 알리는 관광거점 토대를 구축하기 위한 가리왕산 케이블카 브랜드 개발 배경 및 방향성, 브랜드 디자인 및 상품화 등에 대한 보고가 진행됐다. 또한 이날 보고회에서는 가리왕산 케이블카가 국민들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개발의 필요성·지역성·독창성과 차별화된 이미지 도출이 중요하다는 것에 대한 의견을 모았다. 군은 이날 보고회에서 제시된 다양한 의견을 수정·보완해 상반기 중 용역을 마무리하고 하반기부터 본격 브랜드 활용을 통한 국민고향과 가리왕산 케이블카 정체성을 더욱 부각시키는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때로는 바다가 되고 하늘이 되고 우주가 되는 마법같은 이야기가 펼쳐지는 해발 1,381m 가리왕산을 단 20분만에 오르는 국민고향 정선의 가리왕산 케이블카는 정선군민들의 새로운 희망을 한가득 싣고 지난 1월 3일 첫 운행을 시작했으며, 현재까지 19,200여 명의 관광객들이 가리왕산을 찾았다. 또한 국민고향 정선은 한국관광공사가 지정하는 웰니스관광 시설이 우리나라 기초자치 단체중 가장 많은 3곳이 지정되어 있어 웰니스관광의 메카로 급부상 하고 있으며, 가리왕산 케이블카와 함께 관내에는 힐링명소로 정암사 수마노탑, 함백산 만항재, 고한 마을호텔 18번가, 삼탄아트마인, 하이원리조트, 화암동굴, 정선5일장, 병방치 스카이워크, 짚와이어, 아라리촌, 나전역, 파크로쉬리조트, 로미지안가든, 아우라지, 레일바이크가 있으며, 트레킹 코스로 자장율사 순례길, 운탄고도, 동강따라 천리길, 항골 숨바우길 등이 있다.
by 이승섭 연합취재본부[김경희 이천시장 (1)] 민선8기를 시작으로 시정의 최우선을 ‘시민’과 ‘민생’을 중심으로 펼쳐왔다. 2023년 연두순시 현장에서 14개 읍면동 방문을 통해 시민의 의견을 경청하였고, 발로 뛰는 민원처리를 실천하고 있다. 민생현장에서의 신속한 민원처리, 규제개선, 반도체특화, 이천쌀 소비 촉진 등 피부에 와 닿는 시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바로 우리 모두와 함께 이천에 살고 있는 다양한 ‘가족’이다. 가족의 형태는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다. 예전의 가족은 할아버지, 할머니와 부모님, 자녀가 함께 사는 형태였다면, 지금 시대의 가족의 형태는 조손가족, 한부모 가족, 주말가족, 1인 가족, 다문화 가족 등 가족의 생활방식까지도 변화하고 있어 시민의 요구에 맞춘 가족정책이 뒷받침 되어야 시민이 행복할 수 있다. 올해 가족정책의 핵심 키워드는 “가족의 다양성”이다. 연령대와 가족구성형태에 대한 틀을 깨고 다양성에서 출발해서 삶의 터전으로서의 살고 있는 이천시민 모두가 함께 사는 가족을 만드는 것이 민선8기의 목표이기도 하다. 이천시에서는 다양한 가족형태와 지역사회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한발 앞서가는 정책 실현을 위해 ‘1인 가구’ 사업을 올해 처음 시작한다. 여성1인가구를 위해 창문 잠금장치, 현관문 안전걸이가 포함된 꾸러미를 지원하는 안심패키지 지원 사업, 중장년 1인 가구에게는 관심분야 동아리를 지원하는 중장년 수다살롱, 연령대별 건강, 식생활 개선, 재무교육까지 맞춤형 1인가구를 지원할 예정이다. [김경희 이천시장 (2)] 지난해에는 다문화 가족 지원을 위해 통역지원단을 구성하여 코로나로 고생하는 다문화 가족을 지원하여 경기도 민원처리 우수기관으로 선정되는 성과를 거뒀으며, 올해에는 통역지원 이용자의 만족도를 조사해서 수요자 중심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핸드폰만 있으면 이용 가능한 ‘행복솔루션클릭’ 이라는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는데 2022년에는 26,102명이 방문하는 성과를 거뒀으며, 올해에는 이용자의 편리성을 구현할 수 있도록 누구나 방문이 편리하도록 개선하고 통합상담, 운동영상 등 힐링콘텐츠, 운동 및 정서지지도구 지원 등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해서 상반기중에 제공할 예정이다. 이천시는 가족친화인증기관으로 2015년에 처음으로 인증을 받았고 두차례에 걸쳐 재인증을 받은 기관이다. 가족친화인증은 가족친화제도를 모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기관을 인증하는 제도로서 올해 재인증을 앞두고 있다. 우리는 잘하는 것에 박수를 쳐주고 칭찬을 한다. 그리고 모범기관, 우수기관, 상위기관 등의 명칭을 붙여서 불러준다. 가족정책의 처음은 사람이다.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하고 사람은 곧 이천시민이다. 2023년에는 이천시에서 모든 가족들이 소외받지 않고 박수를 치면서 시민이 힘나게 하는 행복한 한 해가 되는 정책이 실현되기를 기대해 본다.
by 이승섭 연합취재본부[55사단 쌍마여단 이천대대 대위 정효빈] 내가 임무 수행하고 있는 부대는 이천시 지역방위부대다. 지역방위부대는 군 병력은 적으나 작전지역이 넓고 지역 인구수가 많아 군 단독작전보다는 통합방위작전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우리 부대는 평소 시장님을 비롯해 지역의 경찰, 소방서장님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우리 부대가 유사시 어떠한 임무를 수행하는지, 군의 중요성과 안보의 소중함에 대해 공감하실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우리 부대가 유관기관 관계자들을 기회있을 때마다 자주 만나 군을 홍보하는 이유는 바로 성공적인 통합방위작전을 위해서다. 우리 군이 이 지역을 위해 어떤 임무를 수행하는지, 현 상황에서 어떤 준비를 하고 있고 이때 유관기관에서 협조해 줄 부분은 무엇인지 등을 설명하고나면 우리 군을 한층 더 가깝게 생각하는 유관기관 관계자들의 눈빛을 볼 수 있다. 지역 주민들의 안전하고 행복한 생활을 위해 군과 민⸱관⸱경이 함께 해야함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혹한기 훈련은 그동안 우리 부대가 이천지역 유관기관과 쌓아왔던 신뢰를 확인하기에 충분한 기회였다. 부대는 혹한기훈련 전부터 통합방위사태 선포 이후 통합방위지원본부 구성부터 현 상황 인식, 각 반별 조치사항 등을 도출해내는 실질적인 훈련을 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기관별 관련 부서와 수차례 협조토의를 진행했다. 세부적인 부분까지 맞추다 보니 협조토의를 할 때마다 예상치 못한 미비점들이 도출되었다. 보완하는 데 시간이 다소 걸렸지만 실제 전시 상황에서 생겼을 실수를 하나 줄였다고 생각하면 힘든 만큼 값진 시간이었다. 수차례 협조토의를 통해 미비점을 보완한 덕분인지 실제 혹한기 훈련 간 실시한 통합방위지원본부 개소 및 운영훈련은 성공적이었다. 통합방위본부장인 이천부시장님을 비롯하여 대대장님과 민⋅관⋅경 담당자들이 본부를 구성하여 그 임무와 지원 능력을 명확히 인지한 가운데 부대의 전시 임무 수행을 지원할 수 있었으며, 특히, 이천시장님과 사단장님도 현장에 함께하셔서 실질적인 통합방위지원본부가 운영될 수 있도록 많은 부분을 신경써주셨다. 이번 혹한기훈련 간 통합방위지원본부 운영을 통해 민⋅관⋅군·경과의 실시간 상황 공유체계와 즉각 대응태세를 발휘할 수 있었고 군 대량 피해 발생 시 구호 활동과 전시 부대 작전에 추가적으로 필요한 장비, 물자, 급식 지원에 대한 훈련도 이루어졌다. 민⋅관⋅군⋅경이 하나가 되어 통합방위태세를 확립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훈련 간 날씨는 정말 추웠고 살을 에는 바람이 전투복을 뚫고 들어와 맨살을 찌르는 듯 했지만 완벽한 통합방위작전에 한 걸음 더 다가갔다는 뿌듯함에 마음만은 뜨거웠다. 앞으로도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군인이라는 책임감을 가지고 지역민들과 함께 상생하며 성공적인 통합방위태세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 그리고 이 기회를 빌려 성공적인 통합방위작전을 위해 물심양면 지원해 주신 이천시장님, 이천경찰서장님을 비롯한 시청 및 유관기관 관계자분들께 감사를 전한다.
by 수원본부장 손옥자[나주경찰서 수사지원팀 순경 임기헌] 우리는 날이 갈수록 변화하는 보이스피싱 범죄 중 ‘대면편취’라는단어를어렵지 않게 접해보았을 것이다.스미싱,파밍,피싱...등등 여러유형의 피싱사기 범죄 중 대면편취형 보이스피싱이란 무엇일까?보이스피싱 범죄라 하면 누구들 흔히 피해자를 속여 계좌이체 통해 돈을 송금받는 형태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갈수록 변화한 보이스피싱 범죄는악랄하게도 피싱전화에 속은 피해자를 직접 만나 돈을 편취하는 방법인 ‘대면편취형 보이스피싱’이최근 성행하고 있다. 그 수법 중 하나는금융기관 사칭을 통해 “OO은행 직원입니다.저금리에 대환대출을해주겠다”라는 말에 속아 직접 만나 돈을 건네주는 방식으로 현재도 많은 피해자들이 전국에서 속출하고 있다.심지어 피싱범은 인상착의를 모두 가린채 차량도 타지않고 도보를 통해 피해자를 대면하기에CCTV를 통한 추적 수사 또한 쉽지 않은 실정이다. 이 외에도 검찰사칭,금감원사칭,자녀사칭 등 그 수법들은 날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고 직접 현장에서 현금을 건네주는 대면편취 보이스피싱범죄 특성상 홍보를 통한 범죄 예방 교육만이 직접 범죄자를 만나피땀흘려 번 돈을 스스로 직접 가져다주어 그 어떤 잘못도 없는,하지않은,자신에게 밀려오는 상실감ㆍ죄책감을 느끼는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한 방법일 것이다. 그 방법 중 첫번째는 대한민국의 그 어떤 기관도 ‘현금’을 요구하지 않는다.따로 만나 현금을 건네주거나 맡겨놓으라고 한다면 보이스피싱 범죄일 가능성이 매우 높으니 가까운 금융기관을 방문하거나 즉시112에 신고해야 한다. 두번째로 보이스피싱 범죄는 핸드폰을 통해 발생한다.그렇기에 주기적인악성코드 점검을 통해 핸드폰 해킹유무 확인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경찰청에서는 ‘시티즌 코난’이라는 불법 어플 탐지앱을 개발해 자칫보이스피싱 범죄 피해를 당할 수 있는 시민들에게 알려 피해 예방을 할 수 있게끔도움을 주고 있다. ‘수백에서,수천,혹은 수억’에 이르기까지..눈물을 흘리며 자신을자책하는 피해자들이 우리 또는 우리의 주변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일말의가능성조차도 차단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간 정보공유를 통한보이스피싱 범죄 유형별 사례ㆍ예방교육이 우리 모두에게 선행되어야할 것이다.
by 수원본부장 손옥자[금요저널 주필/대중문화평론가 /칼럼리스트/이승섭] 필자가 시청을 출입하다 시위하는 원곡면 주민들이 안성시청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어 취재를 한바안성의 정신인 원곡면3.1운동기념관 근처에 들어서려는 동물화장장을 막기 위해서다.그동안 지난8월15일에는3.1운동기념관 앞에서 집회를 했고,최근에는 안성시청 앞에서 원곡면 주민들이 대거 몰려가 집회도 했고,지금은1개월 동안1인 시위를 하고 있지만,안성시청은 묵묵부답이란다. 지난번 안성시 양성면에 페기물 소각장이 들어오는 것을 양성 주민들과 함께 강력 항의하여 저지한 바 있어 또 다시 시위를 하는 원곡면 주민들을 보고 있노라니 참으로 안타깝고 안성시 주민들만 피해를 보는 것 같아 안성시와 안성의회를 질타하지 않을 수 없으며 안성시 행정부서와 안성시 의회의원에게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안성시청 전경] 원곡면 주민들은 안성시가 사업자에게 요구한 주민설명회가 제대로 개최되지 않아 주민 의견을 제대로 수렴되지도 않았는데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통과했는지에 이해할 수 없어,안성시에 답변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그것도 한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답변을 요구하고 있음에도주민설명회는 하지도 않고,한번 한 것처럼 꾸미고,또 한번은 주민들이 반대한 것처럼 꾸몄다고 한다. 그러나안성시는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사업자의 서류만 보고 허가를 해주었다하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안성시와안성시 의회는 주민들에게 외면을 당할 것은 뻔한 이치이다. 원곡면 성은리 동물화장장은 동물 사체를 소각할 때 발생하는 다이옥신 등 유해 물질로 인한 대기오염,급한 사면의 기울기에서 비롯된 풍화에 의한 재해 위험성, 300m이내에 위치한3.1운동 기념관 등을 이유로2018년10월 불허됐었던 사업이다.이에 원곡면 주민들은 동물화장장이 들어서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안성시가 허가해 주어 원곡면 주민들은 무척이나 놀랐었다고 한다. 이 무슨 해괴 망칙한 행정인가? 그리고 동물화장장이 들어서려는 부지는 불과3.1운동기념관 위쪽으로300m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안성은3.1운동 당시 전국3대 실력 항쟁지였고 남한에 유일한 단 한 곳으로328명의 독립유공자 위패가 모셔진 광복사가 있다.안성은 서울과 안동 다음으로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지역이다.또 안성3.1운동기념관은 최근 모범 국가보훈 대외유공 대통령 표창을 받을 정도로 전국에서 관심을 갖는 보훈시설이다.또 수많은 학생과 인근 지역 주민들이 방문하고 있는 안성의 자랑스러운 장소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풍요는 이처럼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지금의 안성은 안성시민들이 이룬 것들이지,그 어떤 것들도 시장이 이룬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안성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안성시가 올바른 길로 가는 시정,안성시장이 올바로 하는 시정을 보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안성시장은 원곡면 성은리 주민들이 동물화장장 인허가와 관련한 질의서를 전달했지만,아직까지 답변조차 하지 않고 있다.주민간담회에서 약속한 것처럼 주민 민원을 해결하고,개발행위허가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을 안성시장에게 다시 한번 요구한다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원곡면 주민들은 안성시와 평택시 차이를 많이 느끼며 살고 있다.평택시는 좋은 기업 유치에 시장이 노력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그러나 안성시장은 물류센터나 동물화장장 등의 혐오시설를 인허가 해주고 있다.때로 언론에서 다른 지역 시장은 물류센터 배제하겠다고 하고,혐오시설 불허하겠다는 방침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홍보하는 것을 보면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안성시민들도 인근 평택시와 전국의 모범적인 시장들을 보며,부러워하지 않고 살 수 있었으면 한다.안성은 유서 깊은3.1운동의 상징적인 지역이다.안성시민들의 자랑이며,자존심이다.그리고 나라가 위기일 때 항쟁으로 맞서는 정신을 가지고 있다.불의에 맞서는 정신을 가지고 있다. 안성시장에게 이런 정신을 퇴색하는 사업에 인허가를 꼭 해줘야 하는 것 답을 듣고 싶다.원곡면 주민들은3.1운동을 하듯 반대운동을 지속할 것이다.안성시에 동물화장시설 관련 주민 민원을 먼저 해결하고,개발행위 허가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을 요구한다.안성시장으로 긍지를 가지고 다시 출발하기를 바란다.안성시장도 안성시민의 한 사람으로서,안성시민의 입장에서 원곡면 동물화장장을 보아주었으면 한다고 울분을 토했다. 다시한번 시장과 의장에게 묻는다. 원곡면 주민들과 하루빨리 재협상을 하여 동물화장장이 들어서지 않을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 가뜩이나 인구가 늘지 않는 안성에 혐오시설만 들어선다면 어떤 국민들이 안성으로 이주를 하겠는가? 안성시가 더욱 확장되어 외부인들이 자리 잡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지자체 단체장이며 의회가 되어야 하지만 거꾸로 가는 행정을 한단 말인가? 이것이 진정 안성시를 위하는 길인지 묻지 않을 수 없으며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안성시민이 남득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 주기를 강력히 촉구한다.
by 조숙현 공동대표,금요저널 경기총괄본부장/ 최홍석작가 세상(世上)의 주체(主體)의미는 여러 갈래이기에 공동체(共同體)나눔의 집단(集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한 가지 해답이나 대답이 있다면이는 독선(獨善)의 함정에 빠지는 것이며 이런 현상은 무서운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한번 도그마에 빠지면 전후좌우가 보이지 않고 오로지 맹목의 깊이에서 벗어 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이는 소통의 문제와도 상관이 있을게다.지도자가 자기 함정에 빠지면 우군을 잃게 되고 결국 실패라는 간판을 들고 침몰하는 일이 비일비재 하지 않는가. 물론 정상에 오르면 올라온 내가 가장 위대한 것으로 여기는 고집이 발동되며 내가 하는 일이 산의 정상에 오른 경험으로 보아도 옳다는 확신의 노예가 되기 때문에 경청을 하지 않고 자가만의 확고한 성을 구축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참된 지도자 경청을 하는 지도자는 상대의 말을 많이 들을 것이며 결정은 자기만의 것으로 호감을 사는 일은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일이 내가 말을 앞세우는 것보다 효과 면에서는 따를 바가 아니라면 비단 지도자만의 덕목은 아닐 것이다.사실 가정에서도 불화의 원인이 상대의 말을 무시하거나 듣지 않으려는 상태에서 화마(火痲)가 많을 것이라면 소통의 문제는 절대적 성공의 열쇠가 될 것임은 뻔한 이치가 아니겠는가. 지도자는 항상 결단의 문제 앞에 고민하고 또 고민하게 된다, 결국에는 결단은 공유의 문제와 더불어 원만한 상황의 길을 넓히는 일이 될 것이기에 성공을 향한 목적 주체 의식의 이름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주저증에 망설임이 앞장서서 나가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당겨오고 결심을 마련할 것인가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왜냐하면 인간에게 먼저 오는 것은 감정의 함량이기 때문이다.다시 말하면 이성과 감정의 균형추를 갖는다는 것은 사실 너무도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이는 교육 환경혹은 경험들의 복합에서 비로소 원만의 자족성을 갖출 수 있기에 결정은 더욱 어려울 것이다. 삶을 살다 보면 도저히 이해 불가의 사람이 있다.자기만의 아집과 고집으로 오로지 소통의 기회가 차단된 그런 사람이 있다.지능으로 가늠할 수 없는 경우에 말이다.아집과 독선으로 뭉쳐진 그의 뇌수는 연구대상뿐 아니라 어찌해도 타인의 경우를 생각함이 없이 자기의 성문을 굳게 지키는 임무로 지새운다.그러나 그는 자신의 피붙이들을 위해서는 가진 것을 모두 주고 타인을 위한 배려에는 전혀 몰상식한 경우 이런 사람들은 도무지 방법이 없다. 내가 이웃 간에 싸움을 보노라면 객관적인 판단의 기준을 설정하지만 참견할 수도 없는 사람 들이 있다. 내가 이웃에서 바라본 그의 나이는70이 훌쩍 넘은 것 같은데 사고의 폭과 생각의 양은 납득할 수 없는 경우를 목도 했다.남과의 관계 설정에서 내 것만을 완곡하게 주장하는 일이란 사회성이 결핍된 사람이라면 독선과 아집 자기 필요의 일만 달성하면 된다는 성안의 가둔 사람이라 할 것이다.타인과의 관계가 어찌하든 상관이 없고 자기의 목표만을 위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분출 고토가 나오며 실증이 난다. 이런 사람에게서 이상하다 생각하는 것은 한 어머니의 품안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해도 형제간에 성격이 전혀 다르다는 점이 연구 대상이 아닐까? 경험이 많아서가 아니라 자기의 신념이 지나칠 만큼 완고할 때 소통의 문이 닫히는 정도가 지나치다는 일은 나이나 경험이 아무런 주체 의미가 없는 버려야 할 성격만 공고할 경우 사회에 지탄의 대상이 될 것이다. 불교 설화를 바탕으로 한 고대 풍자 소설로<옹고집전>이 있다.웅당 촌에 사는 옹고집은 심술이 사납고 인색하고 불효한 사람이었다.걸인이나 중이 오면 때려서 쫒아 보냈고 급기야 도술이 능통한 대사가 학(䳽)대사를 시켜 혼내 주라고 했으니 도리어 매만 맞고 돌아왔다. 이에 도인은 초인으로 가짜 옹고집을 만들어 진위를 가리는 다툼을 벌였으나 진짜가 져서 쫒겨 나게 되면서 마침내 자살 하려함에 이를 구원하여 독실한 불교 신자로 만들었다는 설화와 같은 사람은 주변에 얼마든지 있다. 심술이 사납고 인색하고 아집과 독선으로 불효막심한 인간의 자손이 결코 잘되라고는 없는 것이다.왜냐하면 베푸는 일이야말로 선업을 쌓는 일이고 이로부터 공덕의 탑은 평안과 안정이 삶의 행운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소통이 없는 개인은 옹고집의 인간이고 소통이 부재한 지도자는 사회의 숨통을 막고 결국 미구에 폭발의 화를 당하는 일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돌아보는 깨달음은 운명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 내 주변에 그런 옹고집의 불쌍한 사람이 보이는 행태나 소통을 역설하는 정치판의 아우성은 모조리 소통의 사회학이 잠자는 어둠을 깨워야 하는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삶의 어려움도 따라오는 것이기에 지도자들의 행동이 거울로 투명해질 때라야 백성은 따라가는 길이 밝은 민주공화국을 만드는 첩경이라는 말이 타당성을 갖는 이유가 아닐까? 필자가 보는 견해는 역사를 쓰고 있는 것이라고 믿으며 한 줄 한줄 그리는 중이다. 왜냐하면 작지만 큰 민주주의를 위한 틀이라고 믿기 때문이기에 계속 지속적으로 그려야겠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소나무 배경사진
by 최홍석 경기도 총괄본부장욕심 없는 세상과 배려하는 것이 공정,정의,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될 것이다.지금 현 시대는 이질성경쟁과 이익이란 자기 유익에 빠져버린 시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작은 것에 행복을 느끼며 감사하는 맑은 영혼을 가져야 비로소공정과 정의의 순수한 초석을 놓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평등한 생각 상대를 향하여 배려하는 자세와 초보적인 양심이존재해야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나의 유익에 부정이나 반칙은 없는가 돌아보는 자세 어려운 이웃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마음 즉 어린아이의 눈망울같은순수한 마음이 식지 않고 존재해야 하지 않을까?이 순수함은 세월 따라 시간이 흐르면서 변하고 물들고 사악한마음이들 때마다 마다초심을 지키려는 간절한 자기 체면이 있어야 할 것이기때문이다. 부정을 저지르고도 이유를 달고 거짓이었음이 밝혀져도 또 거짓을일삼는 이들이 득실대는 세상에 발을딛고 산다는 것이 허무한 세상인 것이기에- 특혜와 반칙으로 부귀를 누리고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도자신을 위하는 참사람답지 못한 이들이 과반을 훨씬 넘어 버린 사회가 되었다. 힘 있는 이들은 반칙을 뭉개고 오히려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을 볼 때 슬픔이 앞을 가린다. 욕심이 들어찬 이들이 공평한 세상을 말 할 수 있을까?내 것에 욕심을 지키는 이가 배려를 알겠는가. 배려란 어리석고 모자란 놈들이 하는 것이라고 치부해 버릴 것이다.공정해야 비로소 평등이란 이야기로 담론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기에 - 이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이 나만이 아닌 타인도 자신의 삶에 넣는 습관이필요하겠다는 필자의 생각이기에 나와 당신 경쟁과 쟁취가 아닌 배려와 나눔의 자세가 있어야 비로소 공정한 사회 진정한 선진국이될 것이라는 것은 뻔한 이치가 아니겠는가? 오늘 나의 행복과 건강도 중요 하겠지만 또 한편에 당신의 행복을 위하여 마음의문을 열어 우리 함께가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기에 자장하고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이치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날마다 쏟아지는 칼럼의 표정을 보면서 모두 그렇고 그런 글에 매달리기 보다는 원래 글과 칼럼이란 뼈가 있어야 하기에 이는 정신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신념과 사상이 있어야 한다는 필자의 주장이다. 화사한 외모의 꾸밈이 명품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온갖 부사와 형용사를 동원하여 그럴듯하게 꾸민 글이 감동을 줄 수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자기를 방기(放棄)하고혹은 누구의 얼굴인지도 모르는 글이 된다면 이는 허접스러운 쓰레기의 양산이라는 문패를 달고 허세를 부리는 일일 것이다. 콜링우드는 예술은 본질적으로“인간 최초의 기본적인 정신 활동”을 말했을 때 정신이란 배려하고주는 것이라고 했듯이 의식의 중심이면서 본질에서 이념을 나타내는 지향점을 갖기위해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예를 들어 최초의 기본 공정,정의,상식이 기본 활동이라 했을 때 거기에는 일정한 패턴의 지속성이 결여된 것을 느끼기 때문에 칼럼 또한 예술이라 보기에 예술가라는 작가라는 명칭을 부여할 수이유가 될 것이다. 물론 예술가라는 혹은 작가라는 의식의 지향은 페흐너가 말한 것처럼 위로부터의 미학이나 아래로부터의 미학,형이상학적인 정신 활동과 다른 공간의 현실 경험이나 실증의 요소를 적절히 배합할 수 있을 때 의식의 정신 활동이 공정,정의,상식,일정한 구조로 패턴이 형성될 것이라고 필자는 주장한다. 또한 칼럼도 정신의 줄기가 있는가 없는가의 여부에 따라 본인의 자화상이 나타나는 가치가 되기 때문이다. 김장 항아리와 도자기의 예를 들자면 우리가 주장하는공정,정의,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모두가 공정,정의,상식을 예기하지만 전자는 필요한 물건을 담는 상식일 것이고 후자는 생명 즉 우리네가 살아가는 생명이 넘치는 형태로서의 가치를 의미하지 않을까 하면서 예를 든 가치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나 공정,정의,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듯이 배려,사랑,양심이 살아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서로간, 계층간,이념간, 이질성도 사라지지 않을까 하면서Epilogue하련다. 겨울 화상
by 최홍석 경기도 총괄본부장왜 이런 말이 있다.정치가(政治家)는 모든 사람이 걱정하기 전에 걱정하지 말고 모두가 즐거워하고 난 후에 즐거워하라,는 말이정의정치가가 되어야 한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요즘 정치를 한다는 꾼들을 보면 역시 역시나인 것 같다. 왜냐하면 하나같이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고 자신들의 이익이나 챙기며 내로남불로 일관하는 단면을 보는 일이 각종 언론매체들에 의해 보는 것에 염증이 생긴다.정치꾼들이 이러할 진데 지자체야 오죽하겠는가.참으로 꼴불견이다. 경기도 이천시에도 의료페기물소각장이 들어선다 하여 이천단체장이 직접 한강유역환경청에서1인시위를 하고 있다는데 안성시 단체장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답답하다. 한 도시의 단체장들이라 해서 권력이라는 위력 앞에 서서 필요의 목록을 모르고 어느 것을 우선으로 처리를 해야 하는지의 목록을 몰라 안일 무사하게 태평한 것인지 아니면 주민들이 알아서 하라고 하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작금(昨今)의 안성을 보면 그렇다 시장,시의회,국회의원을 저마다 하겠다고 요동을 치는 것을 보면 권력은 좋긴 좋은가 보다. 아마도 시민을 위해서가 아닌 세도가(勢道家)의 위세를 보여주기 위함인지는 글쎄올시다.이다.왜냐하면 정(正)을 실현하는 일이 정치가의 임무요.해야 할 일이라면 응당 정치의 요체는 정의에 서는 일이지만 현실은 비겁과 위선이 더 많은 함량으로 나타나는 이유에서 더욱 혐오스러운지도 모르겠다. 물론 현실에 살아가는 국민 모두는 언제나 격랑이며 높아지는 불평들을 안고 살아가는 민초들일 것이다.그렇기에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조율하고 시대 정신을 살피고 구현하는 일들이 바로 정치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안성에서 발생하고 있는 의료페기물소각장이 들어선다는 와중에도 단체장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 불가이다. 벌써 입추(立秋)가 지나고 말복(末伏)도 지나 처서(處暑)가 오고 가을을 기다리는 계절임에도 우리 국민(國民)들은 불안(不安)과 공포로 좌불안석(坐不安席)이며 더욱이 코로나19가 창궐을 하여 언제까지 이런 비대면의 삶을 이어갈지 모르는 암울한 현실에 정치가들은 여야를 불문하고 대통령이 되겠다고 서로 간의 비판(批判)의 화살을 자기 쪽으로 돌리는 웃지 못할 자기 탓,남의 탓으로 돌리는 장면들을 보면서 더욱 불쾌 지수가 높아진다. 정치란 늘 합당한 이유이기를 염원하고 인간의 이기적(利己的)인 마음이 잔뜩 들어있는 것 같이 보이는 것은 성정(性情)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언제나 선거판은 정상을 가장한 가장 불합리(不合理)한 탓의 경연장으로 변하고 이기기 위한 열매에 탐혹(耽惑)하며 어쩔 수 없는 명분(名分)을 가장하는 일이 선거판의 모순들이 일어나고 있는 현실에 눈살을 구기지만 우선은 이겨야 한다는 강박에 달달한 맛의 쾌감을 아는 만족의 함량들이 빨리 권력을 쥐어야 한다는 경쟁자들이 하늘을 찌르고있다. 더구나 옆에서 부추기는 유혹의 깊이는 항상 승리의 여신이 자기 것으로 여기는 도취(陶醉)에 훗날 후회의 목록이 열거되는 것을 모르면서 말이다 모든 후보자들은 우선 왜를 따지기 전에 모든 것이 아집(我執)으로 채색된 풍경화가 안방에 걸려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는 것을 왜 모르는지- 그러나 요란과 법석을 떨어도 승리자는 오로지 한 사람이 될 것이고 고배의 잔을 든 사람들은 그를 옹위하는 역할에 들러리가 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할 때 비극이란 그림자도 함께 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때에 안성시 양성면에 문제가 발생 되는 의료페기물소각장이 들어온다고 하는데 있어 양성주민들은 어깨띠를 두르고 펫말을 들며 농업,직업,휴일도 팽개치고 벌써16일째 한강유역환경청에서 악다구니를 써가며1인시위 소각장반대투쟁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안성시 어느 단체장은 벌건 대낮에 모처 식당에서 지역민들과 수행비서를 대동하고 대(大)탕인지,염소탕인지 술을 곁들여 드신다는 진언이 들어오고 있으니 민원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도무지 이해 불가인 것이다, 사실 필자도 오불관언(吾不關焉)으로 일관하고 싶지만 시기가 시기인 만큼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기에 특집으로 다루려 한다. 물론 안성을 이끌어 가는 만큼 공사다망하겠지만 시민들의 눈살을 찡그리게 하는 것은 문제가 많은 것이기에- 또한 의료페기물소각장 입지에 대한 환경청 조사를 안성시에서는 문서 회신을 통해 농장도 있고 농경지도 많고 공장도 많아 불허했다고 3년 전과 같이 불가하다고 했다는데에 만족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행동으로 나설 때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사실 안성시 어떤 시의원은 행동으로 직접1인 시위에 참여하고 어떤 의원은 염치도 없이 강건너 불구경 하듯 한다면 과연 이것이 옳은 일인가는 단체장들이 더욱 잘 알 것이기에- 말로만 시민을 위하고 시민의 일꾼이라고 하지 말고 인구도 많지 않은 안성시에서 하나가 되지 못할망정 안성시민들에게만 맡겨놓는 다면 이것이 진정 시민의 일꾼인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간청하지만 내일 부터라도 단체장을 비롯하여 국회의원,시의원 등은 차례로 돌아가며 주민과1인시위에 동참해 줄 것을 강력히 촉구하는 바이다. 안성시 시민들이 눈을 부릅뜨고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 하기 바라며 한번 돌아선 민심은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민심이 천심이기 때문이다 북산환경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사업계획을 철회하고 안성시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줄 것을 당부하는 바이다. 안성시에 대학병원 하나 없는 도시에 의료페기물소각장이라니 이 무슨 해괴한 짓인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안성시민의 한사람으로 언론인으로 작가로서의 명예를 걸고 가열찬 투쟁을 할 것이다.이것이 언론인으로서의 주어진 책무이며 작가로서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비가 오면 비 탓이고 눈이 오면 눈 탓일 때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李玄齡)의 적당주의는시정이나 정치에서는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안성시 모든 시민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로지 신념의 깃대를 높일 때 비로소 눈과 비는 하나의 이유에 불과한 일이 될 것이며 자꾸 남의 탓으로 미루려는 이기적인 사고가 앞설 때 안성의 인구가 적다고 하는 옹색한 이유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정상적 신념은 바람이 부나 비가 오나 가열찬 투쟁으로 이어질 때 정의가 바로 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안성시 기관단체장들은 앞으로의 후손들을 위하고 안성시 시민들을 위해서라도 더욱 헌신하는 정신으로 안성시를 위해 힘써 줄 것을 당부하는 바이며 깨달음의 섬광이 허물을 보여주는 장면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더욱 적극적인 행정과 행동으로 안성이 예술의 도시,문화의 도시를 만들어 줄 것을 신신당부하는 바이다. 2021. 08. 13. 금요저널 주필/칼럼리스트/ 이승섭시인
by 이승섭 연합취재본부시인/전진 " 삼 개월째 쉬지 않고 달성공원 동물원을 찾는다 짐승들은 눈치도 없고 빈둥거림은 피장파장이다 어쩌면 구경꾼이 된 내가 저들 눈에 비추어진 동종의 몰골이다 할 짓이 없어 야바위꾼의 장기판에 훈수를 두다가 고래등 같은 고함에 슬그머니 등을 돌린다 회전목마를 탄 아이들은 풍선을 들고 뜀박질인데 빈 주머니에는 동전 몇 개가 달랑거린다 " 삼 개월째 쉬지 않고 달성공원 동물원을 찾는다 짐승들은 눈치도 없고 빈둥거림은 피장파장이다 어쩌면 구경꾼이 된 내가 저들 눈에 비추어진 동종의 몰골이다 할 짓이 없어 야바위꾼의 장기판에 훈수를 두다가 고래등 같은 고함에 슬그머니 등을 돌린다 회전목마를 탄 아이들은 풍선을 들고 뜀박질인데 빈 주머니에는 동전 몇 개가 달랑거린다 동네공원에는 언제나 뜨거운 승부가 벌어진다. 장기열전에서 찾은 노년의 일상을 그려 보았다. 〈해질녘 승부 한 판〉, 아이패드. [그림 홍미옥] ------------------------------------------------------------------------------------------------------------------------------------------------------------------------------------- 장기 두는 사람 어디갔어~~하고 거드름 좀 피워 보셨나요? 오늘자 중앙일보 <홍미옥의 모바일그림세상>은 동네 장기판에 관한 이야깁니다. 옆동네 작은공원에선 날이면 날마다 뜨거운 승부가 벌어지고 있거든요. 저녁도 거른 채 가로등불 아래 장기판에 열중이신 어르신들을 그려 봤어요. --------------------------------------------------------------------------------------------------------------------------------------------------------------
by 조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