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 역사 산책

조선시대 멋쟁이 경기도지사의 ‘패션’ [경기도박물관 이야기]

과거에 정치를 맡았던 관리들은 어떤 옷을 입었을까? 양반의 복식에 엄격한 규정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똑같은 옷을 입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 경기도박물관에서 가면 조선시대 경기관찰사가 입었던 옷을 직접 만나볼 수 있다. 오늘날로 치면 경기도지사의 패션인 셈이다. 특별전 ‘오늘 뭐 입지?’는 경기도박물관이 2017년에 기증받은 17세기 우리 옷을 처음 공개하는 자리다. 화려한 무늬를 자랑하는 다채로운 복식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것은 경기관찰사 심연(沈演, 1587-1646)의 옷이다. 그의 무덤에서는 100여 점의 옷가지가 발견됐는데, 모두 놀라울 정도로 보존 상태가 좋았다. 관복에서부터 일상복, 속옷에까지 이르는 다양한 옷이 출토됐는데, 조선 후기 관리의 옷차림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소중한 자료다. [경기도박물관의 ‘오늘 뭐 입지?’ 전시 전경. 경기도박물관 제공 1] 심연은 모두 9벌의 옷을 입은 채로 발견됐다. 무덤에서 출토된 나머지 옷은 모두 시신을 감싸거나 관 안의 공간을 채우기 위한 것이다. 심연이 가장 겉에 입은 옷은 단령이라고 불리는 둥근 깃의 포(袍)이다. 조선시대 관복으로 널리 사용됐던 옷의 종류인데, 그가 관찰사로서 공무를 볼 때 입던 복식을 수의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구름무늬가 수놓아진 비단이 옷의 전반에 사용됐고, 가슴과 등 부분엔 금실을 사용해 화려하게 장식한 흉배가 달려 있다.     흉배는 관리의 신분을 나타내기 위한 옷의 장식이다. 본래 허리띠로 관리의 신분을 구분했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문관은 날짐승, 무관은 길짐승 무늬의 흉배를 사용해 자신의 신분을 드러냈다. 문관은 주로 학과 공작 등의 무늬를 썼으며, 무관은 호랑이와 곰 등을 사용했다. 그러나 당시에도 모두가 엄격하게 규정을 따르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왕조실록엔 흉배 제도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왕의 지적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심연은 경기관찰사 뿐 아니라 주요한 여러 공직을 두루 맡았던 인물이다. 그의 삶을 읊은 묘지명에선 “내직에서 중용되고 외직에서 급히 썼다”고 적고 있다. 스물 다섯의 어린 나이에 진사시에 합격했으며 예순이 다 되도록 공직에 종사했으니, 근면한 공직자의 전형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심연 묘 출토 단령. 경기도박물관 제공 2] 그런 심연 역시 규정에 맞지 않는 흉배를 사용했다. 종2품의 관찰사는 기러기 무늬의 흉배 사용하게 돼 있었으나, 그는 비오리 무늬 흉배를 가슴에 달았다. 비오리 흉배는 본래 명나라의 것이다. 조선에서 실제로 사용한 예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학계에서는 이를 명이 멸망에 영향을 받아 조선의 흉배 제도가 문란해졌음을 보여주는 자료라고 평가한다. 그럼에도 심연이 비오리 흉배를 사용한 구체적인 이유는 여전히 알 수 없다. 관복의 무늬에 숨겨진 이야기를 상상하며 박물관을 둘러본다면 한층 더 즐거운 전시 관람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동네 문화재] 삼막사마애삼존불(700이상)

삼막사의 칠성각 내에 봉안된 조선 후기의 마애불이다. 거대한 암벽에 돋을 새김한 삼존불로 모두 연화대좌에 앉아 있다. 중앙의 본존불은 크게 표현하고, 좌우의 보살상들은 조금 작게 표현했다. 본존불은 민머리의 정상부에 뾰족하게 작은 육계(상투 모양의 머리묶음)가, 머리 중앙에는 계주(머리를 장식한 보석)가 표현됐다. 방형의 얼굴에는 눈두덩이 부은 눈, 삼각형의 짧은 코와 작은 입을 표현했으며 희미한 미소를 띠고 있는 부드러운 인상의 불상이다. 양 어깨에는 두꺼운 법의(승려들의 겉옷)가 걸쳐지고 양팔을 거쳐 무릎까지 덮고 있다. 옷주름은 대체로 간결하면서 도식적으로 처리됐다. [삼막사마애삼존불(700이상)] 배 앞에서 포갠 두 손에는 원형의 보주를 들고 있다. 좌우의 보살상은 머리에 해와 달이 표현된 관을 쓰고 두 손을 가슴에서 모아 합장을 하고 있다. 관의 표현으로 보아 일광보살과 월광보살로 추정된다. 법의를 입은 방식과 옷자락이 늘어지면서 형성하는 주름 모양은 본존불과 유사하다. 본존불은 일광과 월광보살의 가운데 앉아 보주를 들고 있으므로 조선후기에 유행한 치성광여래일 가능성도 있다. 불상의 하단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1763년(영조 39)이라는 정확한 조성 연대를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둥글고 부드러운 상호에 두꺼운 법의에 양감이 감소된 신체 등 18세기 후반 마애불의 특징을 알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작품이다. 또한 치성광여래마애불의 귀중한 예로서 조선 후기 미술사 연구를 위한 중요한 자료이다.

사단법인 가야연구원 제4차 학술발표회를 개최하다

  [김성문 원장] 사단법인 가야연구원(원장 김성문)은 가락대구광역시종친회 후원으로 제4차 학술발표회가 2023년 11월 18일(토) 오후 2시부터 4시 30분까지 가락대구광역시종친회 대회의실에서 60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하였다.   처음은 「KBS HD 역사스페셜」에서 방영한 『조선사편수회』에 관한 동영상을 15분간 시청하였다. 일왕의 명령으로 조직한 『조선사편수회』는 『조선총독』의 직속 기관으로 일제강점기 때 우리의 역사를 송두리째 쥐고 흔든 조선 역사 기관이었다. 『조선사편수회』가 남긴 역사의 잔재는 아직도 우리의 역사 곳곳에 남아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우리의 역사를 올바르게 알기 위해서는 『조선사편수회』가 만들어 놓은 역사를 극복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이다. 『조선사편수회』는 조선총독부 최대의 프로젝트였다. 『조선사편수회』가 만든『조선사』 35권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우리의 역사이다. 조선 8도에 있는 방대한 자료를 수집해서 만들었다. 한국의 역사를 식민지 지배자 처지에서 만든 것이기에 왜곡된 부분이 많다.    [『조선사편수회』에서 제작한 『조선사』35권 중 일부] 김성문 원장은 「가야 고분군 실제와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관하여 40분간 발표와 질의응답이 있었다. 먼저 가야 건국 당시의 가야국명과 강역에 대한 내용을, 그리고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한 김해 대성동 고분군, 고령 지산동 고분군, 함안 말이산 고분군, 고성 송학동 고분군,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합천 옥전 고분군, 남원의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을 직접 답사한 자료를 소개하였다. 이어서 추가 등재할 가야 고분군으로 함창 오봉산 고분군, 성주 성산동 고분군, 부산 복천동 고분군에 대한 발표도 있었다. 특히 가야의 바른 역사를 찾기 위해서는 1~3세기 가야의 고분군도 발굴하여 520년간이나 존속한 가야사를 찾아야겠다고 하였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한 가야 고분군(파란 네모)]   이찬구 박사는 「고조선사 왜곡의 실체와 비판」에서 소 고조선론, 단군 신화설, 위만 조선 계승설, 평양 한사군설을 중심으로 발표와 질의응답을 하였다. 고조선은 대고조선인데 소고조선으로 줄인 역사와, 단군은 실존 인물인데 신화로 취급한 것은 잘못, 위만은 한(漢)의 외신인데 조선 사람으로 왜곡하고, 조그마한 위만 조선이 고조선의 전체인 것처럼 위장한 잘못, 한사군은 요서에 있었던 것을 평양에 비정한 것은 우리의 역사 왜곡이라 하였다. 『전라도 천년사』, 『부산시사』, 『김해시사』에서도 왜곡된 부분은 바로 잡혀야 한다고 하였다. 아울러 고등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현행 한국사 교과서의 고조선 관련 부분에 대한 몇 가지 오류도 지적하였다. [이찬구박사의 발표] 질의에 나선 김일배 부원장은 우리의 참역사를 알게 되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하였다. 김영근 사회자는 사단법인 가야연구원의 설립 목적과 그동안의 경과를 발표하였다.   

영가들의 극락왕생 발원, 용주사 제6회 수륙대제

“우리 삶에 말할 수 없이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수많은 영혼들이 이 행사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가 여러분들의 삶에 행복을 가져다 주고, 국가 발전과 더불어 우리의 발전과 함께하는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용주사 주지 성효스님) 조계종 제2교구본사 화성 용주사가 3일 ‘용주사 천 년의 세월, 천 년의 공덕’을 주제로 유주무주의 고혼들을 구제하기 위한 대표적인 불교 의식 ‘수륙대재’를 봉행했다. 수륙대재는 천지와 수륙에 존재하는 모든 고혼의 천도를 위해 지내는 불교 의례다. 국가적 재난이 있을 때는 국민의 안녕을 위해 수륙대재를 지내기도 했다.   [3일 용주사에서 열린 제6회 용주사 수륙대재에서 주지 성효스님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1] 이날 수륙대재는 영가들을 맞는 대령, 시련의식을 시작으로 영가를 대접하고 깨끗하게 목욕시키는 관욕 의식, 사직사자를 모셔 공양을 대접하고 공첩을 가지고 명부계에 전달하는 사자단의식, 수륙도량을 옹호하고 대중을 보호하는 신중작법의식, 수륙도량을 깨끗하게 하는 수륙도량건립의식, 하단의식, 수륙도량에 초청된 모든 생명 존재를 돌려보내는 봉송·회향 의식 등으로 진행됐다.   용주사 주지 성효스님을 비롯해 제2교구 본사 말사 주지 스님들과 정명근 화성시장과 임종철 부시장, 경기도 관계자, 화성시·의회 관계자, 신도 등이 참석해 영가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했다.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축사를 통해 “길양사부터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어지고 있는 용주사에서 수륙대재를 봉행한다는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며 “불교 역사와 전통, 예술적 가치를 보존하고 나눔과 화합, 소통과 상생을 위한 대표적인 문화축제인 수륙대재가 앞으로도 각계각층의 다양한 참여와 소통으로 모두 하나되는 문화축제로 이어지길 기원한다”고 전했다. [수륙대재에서 축가를 부르는 용주사 효행 합창단] 용주사 수륙대재는 주지 성월스님의 뜻에 따라 2017년 고려최초 1046주기 첫 재현을 시작으로 코로나19 시기를 제외하고 매년 개최해 올해로 6회째를 맞았다. 용주사의 전신인 갈양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수륙대재를 봉행한 도량으로 그 의미가 남다르지만, 당시 치러진 의식의 절차와 과정은 후세에 세세하게 전해지지 못했다.     특히 용주사는 조선시대 성군 정조에 의해 중창된 이후 왕실에서 수륙대재를 개최해 역사적 가치가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에 잘 알려지지 않은 고려 수륙대재를 연구하는 것이 한국 전통문화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라는 성법스님의 뜻에 따라 용주사는 수륙대재 학술포럼 개최 등 연구에 힘을 쏟고 무형문화재 지정에 힘을 쏟는다는 입장이다.   이번 수륙대재의 의례를 주관한 조계종 어산어장 인묵스님은 “수륙대재는 세계전쟁으로 희생되신 영령들, 무주구천을 떠도는 연가들 등 국가적 시대적 상황에 따라 많은 고혼들을 모신다. 특히 지역의 특색을 반영하는데, 올해 용주사 수륙대재는 그 중에서도 정조와 장조(사도세자)를 중심으로 올해 벌어진 세계 전쟁 등을 아울렀다”며 “세월이 흐를수록 수륙대재의 의미와 전통, 격식이 축소축약 되고 있는데, 이 가치가 보존되고 고전의 의식이 지켜질 수 있도록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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