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율면 실버올림픽 YOC위원회 발족식 성료”

  [“율면 실버올림픽 YOC위원회 발족식 단체사진1] 율면 기초생활거점조성사업 주민위원회는 지난 2025년 5월 26일(월), 율면행정복지센터 2층 회의실에서 YOC(율면 올림픽 커뮤니티) 조직위원회 발족식 및 워크숍을 성황리에 개최하였다. [어르신들이 식사할 음식 품평 중 2] 이날 행사는 율면 실버 세대의 삶의 질 향상과 지역 세대 간 연대를 목적으로 하는 ‘2025 율면 실버올림픽’의 본격 추진을 선언하고, 주민이 중심이 되는 실행 조직인 YOC(율면 올림픽 커뮤니티) 위원회의 공식 출범을 알리기 위해 마련되었다. [“율면 실버올림픽 YOC위원회 발족식 회의3] 이번 발족식은 단순한 조직 출범을 넘어, 율면 주민이 직접 참여하고 기획하는 실버복지의 본격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어르신을 위한 운동회라는 형식을 넘어 세대 통합, 마을 공동체 회복이라는 가치를 중심에 두고 준비되었다. [율면 실버올림픽 YOC위원회 발족식 성공을 위한 건배사4] 행사 총괄을 맡은 율면 기초생활거점사업 주민위원회 이상돈 주민위원회 위원장은 “오늘 이 자리는 마을의 어르신 한 분 한 분이 주인공이 되는 축제를 주민의 손으로 준비해 나간다는 선언”이라며 “실버올림픽이 율면을 넘어 이천 전체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도록 꾸준히 이어가겠다.”고 전했다. [율면 거점 조성사업 이상돈 위원장 인사말5] 또한 율면 전체 민관이 함께 공동체로 움직이는 행사이기에 더욱 기대가 크며 율면의 모든 위원들과 기관장들도 적극적으로 참여 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어르신들의 축제 즉 『율면 실버올림픽 YOC위원회 발족식』이 세계 최초라는 면에서 감동이 넘치는 행사라고 한결같이 이구동성이며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율면 기초생활거점조성사업 주민위원회 회의 중 6] ‘2025 제1회 율면 실버올림픽’은 오는 6월 20일(금) 개최될 예정이며, 300여 명 이상의 어르신과 지역 주민이 함께하는 실내 체육 활동, 체험 부스, 식사와 문화 공연 등으로 풍성하게 꾸며질 예정이다.

한경국립대학교, 경기도 공공의대 범도민 추진위원회 사무실 개소

  [- 공공의대 설립을 위한 지역사회와의 긴밀한 협업체계 구축 -] □ 한경국립대학교(총장 이원희)는 5월 27일 경기도 공공의료체계 강화를 위한 “경기도 공공의대 범도민 추진위원회 사무실”을 개소하였다. ◦ 한경국립대는 공공의대 설립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해왔으며, 2024년 8월 16일에는 안성시 윤종군 국회의원을 대표로 “한경국립대 공공의과대학 설립을 위한 특별법안”이 발의된 바 있다. □ 이날 개소식에는 김보라 안성시장을 비롯한 공공의대 범도민 추진위원회 민완종 회장 등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으며, 개소식 행사에 앞서 공공의과대학 설립의 타당성 검토 및 전략 분석 등 기존 의과대학과 차별화된 경기도 공공의대 도입 모델을 마련하는 연구용역 최종보고회를 가져 공공의대 설립추진을 위한 사무실 개소에 뜻을 더하였다. □ 경기도 공공의대 범도민 추진위원회에서는 지난 2024년, 한경국립대에 경기도 공공의과대학 유치를 위한 서명운동을 전개하여 50,000명이 넘는 경기남부 지역주민의 서명을 받았으며, 이번 사무실 개소를 통해 지역사회와 긴밀한 협업체계를 구축하는 발판으로 삼을 계획이다. □ 김보라 안성시장은 축사를 통해 “경기도 공공의료 체계 강화를 위해 공공의대가 설치될 수 있도록 안성시도 함께 노력하겠다”고 의지를 표명하였다. □ 또한, 이원희 한경국립대 총장은 “경기남부 지역의 의료취약 문제를 해결하는데 한경국립대가 앞장서 경기도 유일의 국립대로서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 경기도 공공의대 범도민 추진위원회 사무실은 한경국립대 산학협력관 4층에 마련되었다.

【엠비규어티『ambiguyty』의 모호성】

  [어느 한적한 호수에 필자] 진보라는 말은 작금에 공공연히 사용되는 말이며 아니면 좌파라고도 한다. 지금은 우파 <국수적>, 좌파 <급진적>로 나뉘어 서로가 정도라는 일반적인 수사로 현재 사용되고 있으며 좌우 갈등으로 인한 사회현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사실 공산당은 뿔 달린 괴물처럼 금기시되던 말이 현재는 리버럴주위 <자유주의> 시대 앞에 고민하는 사람쯤으로 허용의 폭이 매우 넓어졌다고 생각 하지만 이번언론매체를 보면서 한국사회도 자생간첩이 생겼다는 뉴스에 경악할 노릇이다. 물론 우리의 정신 공간이 성숙을 의미할 수도 있고 또한 다양성의 사회를 뜻할 수도 있겠지만 자생 간첩만은 이해가 안 된다. 엄연히 남북 대치 상황과 정전협정 상황이고 보면 더욱 그렇다. 왜 그런가 하면 우리는 지금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며 자유경제 바탕으로 이루어 나가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도 북한에 경도되어 소리치는 좌파들의 목소리는 여전하기에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1960년에 나타난 소위 민중문학의 잔치가 한창이 던바 21세기 들어서 이제는 노골적으로 창궐하는 자생간첩이라 니기가 막힐 노릇이다. 어느 정치가는 21세기에 대한민국에 무슨 간첩이 있겠냐며 하던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사실민중문학의 당위성으로 오도된 이 현실을 보면 민주화, 민중, 통일, 민족, 요즘엔 중도 등의 현란한 변화가 과연 오늘날 정당성이 담보할지 모르지만 이것은 아니올시다.이다 애매모호한 문학은 이제는 아니다.라는 말을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5년을 보았으면서도 사상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반쪽으로 나뉘어 싸우고 있다는 사실에 참으로 애석하고 안타깝다.   가장 극심한 시절은 김대중, 노무현을 거처 문재인 정권에 와서는 그들의 민족문학이라는 금과옥조의 간판조차 명칭을 변경하고 백낙청, 황석영 등에 의하여 최고조를 달렸다. 더구나 백낙청은 2009년 3월 도하 신문에 “우리의 목표는 한반도의 평화, 통일은 수단일 뿐”이라는 표제하에 “분단으로 이득을 보는 세력 남한에도 북한에도 있어 건전중도세력 형성되어야”를 주장하는 면모를 보였다. 문화 정신이 줏대가 없는 정책에 화해, 통일인지는 모르나 기막히게 그들의 또 다른 잔치가 되었다. 우리의 문학이나 문화는 좌파 시대나 우파시대를 지나도 이들의 활동무대였다는 점에서 한국문학은 정신이 나간 청맹과니의 신세처럼 보인다. 현재도 북한은 우리를 적이라 하며 미사일을 쏘아대고 툭하면 핵으로 위협하는 실정에 있다. 좌파들이 어떤 숨겨진 의도가 있는지는 보지 않아도 알 일이다. 수 백만명의 동포가 굶어 죽어가도 핵을 만들고 미사일을 발사하고 꽃다운 젊은이들이 꽃제비로 팔려가는 슬픈 북한의 실상을 보면서도 북한의 지령을 받고 간첩 활동을 하다니 참으로 이율배반이고 끼리끼리 만나 외국에서 북한과 접선을 하고 있다니 하루빨리 검거하여 바른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곧추서야 할 것이다. 이런 것은 개인 돌출이라 볼 수 없으며 조직적으로 암약하고 있다고 봐야겠다.   물론 좌파 문학에 심취한 지식인들도 시대에 따라 우후죽순으로 자생되었지만 경도된 문학은 한계가 있다. 대부분 선량한 작가들과는 달리 다른가 치의 이념은 기준 <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으로 가서 작가를 해야지 왜 우리 사회를 멍들게 하고 혼란을 주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어떤 진보의 작가는 이문열의 소설을 폄훼하여 거론하지만 이런 말은 확실히 잘못된 아집의 발언이다. 그렇다면 비난하는 자의 시는 잘된 작품인지 묻고 싶다. 특히 문학과 예술은 볼셰비키혁명에 의한 지도적 전위들이 이끄는 급진적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복무해야 한다는 문학론. 변증법적 유물론에 입각한 프롤레타리아 리얼리즘 문학론으로, 한국 문학에서는 1930년대 초 카프 문학 운동의 이론가였던 임화, 안막 등이 주창하였던 바 해방 이후 대한민국 많은 지식인들이 볼셰비키혁명에 의하여 중국, 러시아로 유학하여 경도된 문학으로 사상의 정신이 바퀸 문제도 있지만 참으로 근대사 역사를 보면 너무나도 슬픈 역사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1세기도 안되어 세계 10위라는 금자탑을 세웠던 것은 지도자들의 혁혁한 공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 와중에 독재, 민주화라는 문을 넘어 지금 같은 나라를 세웠다는 것은 기적이 아니고는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한때는 필자도 민주주의 가치를 위해 거리로 나선 적도 있지만 막스주의, 레닌주의니 하며 그때만 해도 경도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긴 끼리끼리 모여 단파방송을 몰래 듣는 친구도 있었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남북이 대치된 사회이니 그러려니 할 수도 있겠지만 민주화란 이름으로 경도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모든 시인이나 작가들이 생산하는 작품은 그 나름의 개성과 표정을 가진 살아있는 얼굴들임을 알아야 하겠지만 자유민주주의 정부를 부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물론 문학을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문학은 문학적 가치로 인정을 받아야 함에도 아직도 이데올로기에 경도되어 사회적 혼란과 문학을 이용하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   『2. 자식을 먼저 보내는 참렬(慘烈)의 창작』   죽음이란 참으로 참담한 슬픔이다. 그것도 자식의 타계를 앞서 겪어야 하는 어버이의 헤아리기는 그 당사자가 아니라면 필설로 형언할 수 없을 것이다. 정지용의 『유리창』이나 허난설헌의 『곡자』 같은 작품은 자식을 보내는 비참한 심정이 가슴을 적신다. 황금찬의 『목련꽃』은 참열이 묻어있는 시이다라고 하겠다.   “하나 예를 들어보자.”   집 앞에/목련 두 구루가 서 있다./키가 좀 크고 가지가 적은 나무는/백목련/키가 좀 작고/가지가 많은 나무는 자목련이다./해마다/목련 철이 되면/도제가 와서/목련꽃 시를 쓴다면서/반나절씩/꽃나무 밑에 섰다가 가곤 했다./금년에는 꽃이 다 지고 말아도/시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울고 있었다./내가 아니고/꽃나무들이다./눈물도 울음소리도 없이 우는/목련꽃나무/시인이 간 그 나라에도/목련꽃이 피어 있겠지//내게 그 소식/전해달라/시인아.   <황금찬 『목련꽃』> 중에서   시인 황도제- 자식의 죽음이 주는 통증을 감추면서 시를 쓴 것이다. 이는 절제의 미학이 되겠지만, 이를 감내하기 위해 안으로 흐르는 눈물의 추억이 고스란히 보인다. 이미 가슴에는 흘러넘치는 아픔과 슬픔이 노 시인의 마음을 의탁하는 목련꽃의 “눈물도 울음소리도 없이” 시나브로 떨어지는 꽃잎의 날림 앞에서 처절한 정경이 보이는 듯하다. 그때가 2010년쯤 인가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용인신갈그때 당시에 같은 00 아파트에 살고 있었기에 더욱 생각이 난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나 아무튼 정상으로 떠나지 않았지만 떠나간 시인은 소식을 보내는 방법이 없을지라도 사랑으로 지켜본 자식에 대한 연민은 “내게 그 소식/전해달라./ 시인아.”의 절규에는 허공에 씁쓸한 메아리 되어 귓전에 울리면서 가슴으로 파고드는 피 울음인 것을, 어찌 위로할 수 있겠는가? 행사 때 이거나, 문사원 대학에서 강의와 축사를 하면서도 황금찬 시인은 일절 입을 굳게 다물고 내색을 하지 않았다.   황금찬 시인은 이천 문사원 대학에서 강의도 듣고 스승이라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님을 밝혀둔다. 인간의 호기심은 늘 미지의 공간을 위해 모험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앞을 세우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 대답이라는 것은 씁쓸한 비유 앞에 홀로 서게 된다. 시는 이러한 이치를 에둘러 스스로를 말하는 독백의 길에 나설 때, 시의 깊이는 함축되는 것이다. 인간이 새가 되거나 꽃이 되거나 결국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방법일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시는엠비규어티 <모호하다>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날아가는 새들이/그리운가 보다./닿지 못하는 하늘이기에/ 되돌아왔다./하늘을 날다/되돌아와서는 /지치어/나뭇가지에 앉아/두리번거리는/새들이 저마다 어찌할 바를 모른다. 지치고/지친 나머지   인간은 길을 떠나 만들고 또 되돌아오는 일로 일생을 가늠하는 것이다. 설사 멀리 떠난다 해도 결국 종말에는 되돌아오는 여정에서 나그네라는 운명을 감내하는 것이 고작이다. “새도 인간으로 환치하면 무한으로 길을 떠났다. 결국 ‘날갯짓하다 지쳐서 확인하면 고작 <나뭇가지에 앉아> 두리번거리는 일- 지치고 지친 새가 어찌할 바를 모른다. 하는 데에는 새도 동물이라 가만히 지켜보면 그 나름의 행동을 보면 나타난다. 그것이 인간아니 시인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안목이다.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다른 촉을 가지고 있는 샘이 아닌가? 이것은 시인들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행동 촉, 상상할 수 없는 창작의 부산물이기도 하다. 개인적 촉으로 사물과 동물을 바라보고 창작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시인들만의 촉을 발휘한다 할 수 있겠다.   시인은 상상의 나래를 얼마나 펼칠 수 있고 그 사물과 행동들을 어떻게 표현하느냐는 순전히 개개인의 능력이고 창작이라 볼 수 있다. 어떤 시인은 외롭다 할 수 있겠고 또 다른 시인은 여유와 낭만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보는 각도, 창조하는 기교에 따라 모두 다를 수 있기에 시인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러한 모습을 허무라 할 수도 있고, 도로(徒勞)라 말을 할 수도 있지만, 지친 상태 앞에 무기력해지는 자화상의 발견일 것이다. 그러나 길을 떠나는 연습이지만 제자리로 돌아와 자기 앞에 설 때, 비로소 삶의 깊이는 성숙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도 새들은 하늘로 비상하는 꿈을 가질 때, 새의 운명은 아름다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삶의 모습 또한 저마다의 자리를 소유하고 빛나는 존재가 될 것이라는 함축과 응축의 소산이라 여기며 에필로그 한다.     2025. 06.     [대중문화평론가/칼럼니스트/이승섭시인] [필자의 저서]   [필자의 칼럼집]                                                     [필자의 저서]  

조형작가 김형태, 인생 이야기 담은 '보따리-기억의 문' 개인전

  [김형태 작가]                             삶 속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기억과 추억을 보따리 가득 담아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만들어 가는 김형태 조형 작가는 2025년 5월 28일(수) ~ 6월 2일(월)까지 서울 인사아트센터 3층에서 '보따리-기억의 문' 타이틀로 개인전을 진행 한다. 감상자에 따라 재물을 담은 보따리가 될 수 있고, 아름다운 이야기로 가득한 인생이 있을 수도 있다. [포스터] 중, 장년층에게는 어머니에 대한 추억일 수 있고, 보따리를 안고 피난을 떠나는 우리 민족의 슬픈 역사가 될 수도 있다.  작가는 한국 전통미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조형물인 달항아리와 견줄만한 조형물을 찾다가 보따리를 발견하고 아름다운 보따리 조형물을 만들기 시작했다. [보따리 기억의 문 1] 옻칠을 기반으로 하는 전통적인 건칠방식으로는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어서 천에 에폭시 및 FRP 등을 함침 시켜 보따리 형태를 고정시킨 후 그 표면에 분채, 아크릴, 유화물감 등으로 원하는 표현을 하는 새로운 접근을 시도했다. [보따리 기억의 문 2] 작품에는 원시 동굴벽화에 썼을 법한 부드럽고 깊은 색의 분채를 사용해서 땅의 숨결이 느껴진다. 또 다른 작품에는 투명한 에폭시를 써서 마치 천사의 날개처럼 하늘거린다. 보따리의 주름진 묶음에는 인생의 파고(波高)를 이야기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사를 말해주듯 보따리의 형태는 다양한 모습으로 제작 되었다. [보따리 기억의 문 3] 특히 작품을 구성할 때 마다 마음 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 보따리 속에 넣어 말하지 않아도 공감할 있는 따뜻한 보따리를 만들었다.   정성스럽게 싸맨 보따리의 정겨운 모습에서 한국인의 문화와 역사가 녹아들었으며,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기억들도 들어있다. [보따리 기억의 문 4] 세상은 변하여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보따리지만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켜 준 고마운 보따리. 나를 성장시키고 세상의 중심에서 오롯이 설 수 있도록 보따리 속의 귀중한 보물들을 하나씩 내어 주었다. 이제는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고, 고마움의 존재로 잊지 않기 위해 보따리 조형물로 제작하여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었다. [조형작가 김형태, 보따리 _기억의 문_ 개인전1] '보따리-기억의 문' 개인전을 실시하는 김형태 작가는 "보따리는 삶을 감싸고 기억을 묶는 작은 우주이며, 보따리 안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들어있다. 마음을 건네는 이문을 통해 잊고 있던 각자의 기억과 즐겁게 마주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조형작가 김형태, 보따리 _기억의 문_ 개인전2] 좋은 추억이든 슬픈 추억이든 보따리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있으며, 어린 시절 자신에 대한 아련한 향수도 있다. 또한 세련되지 않은 투박한 보따리지만 우리의 행복과 희망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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