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유신의 수련굴

    (사)가야연구원장 김성문

    by 이승섭 연합취재본부
    2024-02-17 09:07:20

     

    [김성문 (사)가야연구원장]

    유신은 화랑 출신이다. 화랑의 15세 풍월주였던 김유신(흥무대왕)은 굴이 있는 곳에서 수련했다는 기록이 명문(銘文) 또는 설화로 전해지고 있다.

     

    신라 화랑도는 소년들로 이루어졌고 곱상한 남자들이었다. 삼국사기』 「진흥왕 37조를 보면 미모의 남자를 택하여 곱게 단장하고 화랑이라 불렀다. 그를 따르는 낭도의 무리가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도의(道義)로써 서로 연마하고 노래와 음악으로써 서로 즐겼으며 산과 강을 찾아 멀리까지 다녔다.’ 라고 했다. 이 내용으로 보아 신라 전역에 있는 명산대천(名山大川)을 돌아다니며 수련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홍주암 전경]

    화랑조직의 유래는 진흥왕 37년인 576년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이미 화랑 사다함이 562년에 대가야를 멸할 때 활동한 기록이 삼국사기』 「사다함조에 전하고 있다. 아마도 576년 이전에 청소년 집단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이 간다. 역사적으로 진흥왕 시대는 신라의 영토가 함경남도, 경기도, 경상남도 등 면적이 크게 확장되었다. 신라는 통치해야 할 백성들의 숫자가 많이 늘어나서 새로운 영토를 다스리기 위해 화랑들이 필요했다는 생각이 든다.

     

    화랑도의 최고 지도자는 삼국유사에 국선(國仙)이라 불렀으나 화랑세기에서는 풍월주라 불렀다. 화랑도 조직은 화랑 아래에 평민부터 하급 귀족으로 구성된 낭도(郎徒)가 있었다. 낭도의 숫자는 수십 명 이상부터 수천 명까지 있었다. 화랑과 낭도로 이루어진 단체를 향도(香徒)라 부르기도 했다. 김유신은 15세에 외조모인 만호부인의 부름을 받고 진천에서 왕경으로 와서 용화향도를 이끌었다.

    [원효굴 내부]

    화랑은 낭도들과 함께 신라 영토의 사랑 정신을 기르고 굴에서 심신을 수련했다. 화랑들이 수련한 굴은 모두 천연 석굴로서 크기가 그렇게 크지는 않다. 굴은 모두가 자연의 조건이 명당의 위치이고 수련하기에는 적합한 공간이다. 화랑들이 굴에서 수련한 증거는 점말동굴과 단석산 중악석굴에 있다. 이들 굴 벽면에 있는 명문(銘文)에 의해 신라시대 화랑들이 수련했거나 다녀간 곳으로 확인되었다.

     

    김유신과 관련한 수련굴로 전해지는 곳은 경주 단석산의 중악석굴, 팔공산의 중악석굴, 충북 옥녀봉의 장수굴, 충북 용두산의 점말동굴, 경북 팔공산의 원효굴, 경북 장육산의 육장굴 등이다. 중악석굴이 두 군데이나 단석산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이전에 중악이었고, 팔공산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 중악이라 불렀다. 김유신이 수련하면서 난승으로부터 비법을 받은 곳은 단석산 중악석굴이다. 팔공산에는 원효굴이 두 군데이다. 한 곳은 비로봉 바로 밑에 자그마한 석굴이 있고, 동남쪽 기슭에는 조금 큰 굴이 있다. 2월 중순인데 산책하기에 좋은 기온이라서 조금 큰 굴에 가 보았다.

     

    원효굴은 깎아지른 절벽 바위 사이에 자연으로 생성된 굴이다. 일찍이 김유신 장군과 원효대사가 수련했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그 후 이 굴에 부처님을 모셨다고 불굴(佛窟)이라 불렀다. 현재는 불굴 바로 아래에 사찰을 짓고 불굴사라 한다. 불굴사는 신라 신문왕 10년인 690년에 창건했다. 이 절은 경북 경산시 와촌면 강학리 8에 있다. 청통와촌 톨게이트를 나와 서쪽 대구, 갓바위 방향으로 약 7km를 달리면 불굴사 입구에 도착한다.

     

    불굴사 입구 전까지 2km는 길이 완만한 경사이다. 불굴사 경내가 조용하다. 원효굴은 불굴사 마당에 들어서서 종무소 옆을 지나 무척 높고 길다란 돌계단 길로 올라가도록 만들었다. 지금은 돌계단을 보수하는 중이라 적멸보궁 뒤로 철제 계단을 만들어 두었다. 원효굴이 있는 바위에 두 개의 큰 기둥을 세우고 암자를 짓고 홍주암(紅珠庵)이라 부른다. 홍주암의 가람은 온통 붉은색의 옷을 입혔다. 1976년 원효굴 내부를 수리하던 중 신라시대로 추정하는 청동 불상 1점이 발견되어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홍주는 붉은 구슬로 태양을 뜻한다. 불굴사가 있는 지대는 음기가 센 느낌이 든다. 그래서 암자를 짓고 양기의 상징인 홍주라 한 것 같다. 홍주암은 거대한 암석 덩어리와 한몸을 이루고 있다. 암석 절벽에서 자라는 소나무는 말없이 천년의 역사를 말해 주는 듯하다. 원효굴로 오르는 돌계단 좌우에 쌓은 돌탑들은 다녀간 사람들의 간절함이 느껴진다. 돌계단 끝 왼쪽 바위에는 붉은 글씨로 홍주암이라 음각으로 했다. 좀 더 들어가면 검정 바탕에 흰 글씨로 원효굴(元曉窟)이라는 한자 현판이 나타난다.

     

    원효굴을 감싸고 있는 홍주암에는 여러 가지 시설이 있다. 복잡한 부대 시설이 김유신의 흔적을 지워 버린 듯하여 아쉽다. 나는 어린 화랑 김유신의 모습을 애써 상상해 본다. 조망이 좋은 이곳에서 심신 수련하면서 삼국을 통일하겠다는 김유신의 모습이 떠오른다. 기상이 늠름해 보인다. 굴 앞으로 보이는 조망은 정신을 한곳에 모을 수 있을 정도로 집중된다. 저 멀리 보이는 산과 들이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 굴은 협소하나 조망은 한없이 넓다.

     

    원효굴에 누군가 켜 놓은 촛불은 자신을 태우면서 굴 안을 밝혀주고 있다. 촛불은 켠 사람의 소망을 부처님께 전하고 있는 듯이 조용히 타 오르고 있다. 잠시 후 고개를 옆으로 돌리는데 어디선가 물소리가 난다. 바위틈에서 물이 새어 나온다. 암벽에 아동제일약수(我東第一藥水)라는 글귀가 보인다. 이 물을 먹으면 소화 불량과 신장염에 좋다고 안내되어 있다. 김유신의 장군수라 부르기도 한다고 하니 한 모금 마신 물이 에너지를 충전한 것 같다. 현재의 원효굴은 옛 정취를 찾기는 어렵다.

     

    심신 수련은 몸과 정신을 하나로 생각하면서 수련하면 쉽게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한다. 수련이 실패되는 경우는 몸과 정신을 분리하기 때문이라 한다. 김유신은 몸과 정신을 하나로 모았기에 무한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고사성어에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이란 말이 있다. 몸과 정신을 한곳에 모으면 못 이루는 일이 없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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