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관통하는 평론가로서, 그리고 사랑하는 자식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어른로서 작금의 대한민국이 흘러가는 풍경을 목도하노라면 가슴 한구석이 턱 막혀오는 서늘함을 지울 수 없다. 한때 세계가 부러워하던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다며 자부하던 이 나라는 지금 어디로 표류하고 있는가. 우리 사회는 관용을 잃은 편협한 징벌의 잣대, 국가 시스템에 대한 맹렬한 불신, 그리고 우물 안 개구리식의 외교적 오만에 깊이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교육과 민주주의, 그리고 외교라는 국가의 세 가지 근간이 흔들리는 오늘의 현실을 짚어보며, 절망에 빠진 백성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이 시대가 나아가야 할 길을 묻고자 한다.
►미성숙한 청소년에게 가해진 가혹한 단죄, '배재고 사태’
최근 배재고등학교 야구부 학생들이 전국대회에서 외친 응원 구호를 두고 벌어진 사태는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참담함과 분노를 자아낸다. 경기 중 그저 빵이 먹고 싶어, 혹은 치기 어린 장난으로 "가자 가자 스타벅스 가자"라고 외친 순수한 마음이 졸지에 5.18 민주화운동을 조롱하는 불온한 혐오 표현으로 둔갑했다. 급기야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이들에게 '6개월 출전 정지'라는, 학생 선수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흔드는 가혹한 중징계를 내렸다.
여기에 5.18 묘역 참배까지 거론하며 아이들의 사상적 굴복을 강요하는 일부의 목소리는 폭력에 가깝다. 청소년기는 정신적으로 미성장 상태이며, 세상의 이치를 깎고 다듬어가는 예민한 시기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얄팍한 상업적 마케팅과 정치적 갈등의 파편을 주워섬긴 아이들에게, 따뜻한 훈육 대신 '사회적 매장'이라는 칼날부터 들이대는 것이 과연 이 사회가 가진 어른다움인가. 아이들에게 지울 수 없는 깊은 트라우마를 안기는 이 무자비한 작태에 배재학당 동문들이 끝까지 싸우겠다고 분연히 일어선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다. 어른들의 굳어진 이념적 도그마로 예민한 아이들의 꿈을 짓밟는 행위는 당장 멈춰야 한다.
►올림픽공원의 절규, 무너진 절차적 민주주의
교육과 사회적 관용이 무너진 자리에는 국가 시스템을 향한 짙은 불신이 독버섯처럼 피어올랐다. 지금 올림픽공원 개표소 앞에서는 2030 청년들이 연일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투표 수개표"를 부르짖고 있다. 과거 특정 세력의 억지 주장으로만 치부되던 선거 관리 시스템에 대한 의구심이, 이제는 청년 세대의 보편적인 절규로 번진 것이다.
이들의 외침을 단순한 음모론으로 깎아내릴 수 없는 뼈아픈 현실도 드러났다.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올림픽공원 개표소 현장을 검증한 결과, 수백만 표의 유·무효 투표지와 투표함이 보관된 장소의 보안과 관리가 아연실색할 정도로 부실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선진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의 심장인 선거 관리가 이토록 엉망진창이라니, 굳건히 믿었던 국가의 품격이 산산조각 나는 심정이다.
"투명성을 잃어버린 국가는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없다. 신뢰가 무너진 선거는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시한폭탄이다."
2030 세대가 왜 거리에 나와 가장 원초적 형태인 '수개표'를 요구하는지, 정부와 선거관리위원회는 뼈를 깎는 반성을 해야 한다. 의혹을 덮고 윽박지를 것이 아니라, 한 점 의혹 없는 투명함으로 스스로를 증명해야 할 때다.
►안하무인 외교와 흔들리는 동맹의 뿌리
내부의 붕괴도 모자라, 밖으로는 심각한 외교적 마찰을 자초하며 국가의 안위마저 위태롭게 하고 있다. 최근 미국 하원은 한국 정부가 공정거래위원회 등을 동원해 미국 기업인 '쿠팡'을 표적 삼아 차별적 규제를 가하고 있다며 강력한 경고장을 날렸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선도해야 할 국가가 낡은 규제의 칼을 휘두르다 동맹국 의회로부터 공개적인 망신을 당한 것이다.
더욱 개탄스러운 것은 동맹을 대하는 정부의 안하무인격 태도다. 미국 독립 250주년을 맞아 광화문 광장을 비롯한 곳곳에서 굳건한 한미동맹을 촉구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음에도, 정부 차원의 세심하고 깊이 있는 외교적 화답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전쟁의 참화 속에서 피로 맺어진 한미동맹은 대한민국의 안보와 번영을 지탱하는 대체 불가한 기둥이다. 이토록 중요한 외교적 모멘텀 앞에서 보여준 경직되고 무심한 대처는 심각한 우려를 자아낸다.
►침묵 속의 서사(書史), 다시 상식의 광장으로
길을 잃고 방황하는 대한민국, 우리는 어떻게 이 난국을 돌파해야 하는가.
칼럼니스트이자 시대의 아픔을 기록하는 지식인으로서 정부와 사회 각계에 강력히 고언(苦言)한다.
첫째, 징벌적 도그마를 버리고 미래 세대를 포용하라.
역사는 억압과 징계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설득과 이해를 통해 계승된다. 아이들에게 씌워진 족쇄를 풀고 교육의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
둘째, 100% 투명한 시스템으로 민주주의의 신뢰를 복원하라.
올림픽공원에서의 절규를 묵살하지 말고, 선거 관리 전반에 걸친 대대적인 쇄신을 감행하라.
셋째, 글로벌 기준에 맞는 외교적 전략을 재정비하라.
우물 안 개구리식 규제를 철폐하고, 상호 존중에 기반한 한미동맹의 가치를 국정의 최우선에 두어야 한다.
어둠이 짙을수록 새벽은 멀지 않다고 믿는다. 비상식과 억압이 난무하는 현실 속에서 상처받은 국민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한다. 특유의 회복 탄력성을 지닌 우리 국민의 집단지성이 끝내 이 비정상적인 시대를 바로잡을 것이다. 진영과 이념의 장벽을 허물고, 오직 대한민국의 올바른 미래만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이성과 상식의 촛불을 들어야 할 때다.
- 묵언 속의 서사(書史)를 기록하며
2026. 07. 05.
대중문화평론가/칼럼니스,트/이승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