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섭 칼럼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균형발전인가 정치적 모험인가] 107

1. 과연 이 사업은 산업이 선택한 것인가, 아니면 정치가 선택한 것인가.

수원본부장 손옥자 2026.06.29 07:58

 

[필자]

대한민국이 세계 반도체 강국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세계 1등 산업일수록 정치보다 시장 원리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사실 역시 부정할 수 없다.

최근 정부가 호남권에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대한민국 산업정책이 거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최고경영진까지 참석하는 발표가 예정되면서 국민적 관심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국민이 반드시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

 

1. 과연 이 사업은 산업이 선택한 것인가, 아니면 정치가 선택한 것인가.

 

이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반도체 산업은 자동차 공장 하나 짓는 차원의 사업이 아니다. 공장 하나를 세우더라도 수백조 원이 투입되고, 완성까지 10년 이상 걸리며, 그 뒤 수십 년 동안 산업 생태계가 함께 움직여야 하는 국가 전략산업이다.

세계 어느 나라도 반도체 공장을 단순히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치하지 않는다.

미국의 애리조나, 대만의 신주, 일본의 구마모토 역시 철저하게 물, 전력, 연구인력, 협력업체, 항만, 공항, 대학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결정했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반도체 공장은 건물보다 생태계가 먼저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은 경기 남부와 충청권을 중심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공급망이 구축되어 있다.

장비업체가 있고, ,소재업체가 있으며,, 부품 업체가 있고,, 설계기업이 있으며,

연구소와 대학이 연결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이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이런 생태계는 하루아침에 만들 수 없다.

 

특히 가장 많이 제기되는 우려는 물 문제다.

최첨단 반도체 공장은 하루에도 수십만 톤 이상의 초순수가 필요하다.

물 공급이 안정적이지 않으면 생산 자체가 불가능하다.

여기에 대규모 전력 공급까지 동시에 확보되어야 한다.

반도체 공장은 전력과 물이 생명이다.

이 두 가지가 불안하면 투자 위험도는 급격히 올라간다.

또 다른 문제는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산업이다.

현재 국내 협력업체 대부분은 수도권과 충청권에 집중되어 있다.

공장이 수백 킬로미터 떨어질 경우 물류비 증가와 협력 효율 저하라는 새로운 비용이 발생한다.

결국 기업 입장에서는 생산성이 떨어질 가능성을 계산할 수밖에 없다.

물론 정부 논리도 일리가 있다.

대한민국 산업이 수도권에만 집중되는 것은 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에도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

 

국가균형발전은 반드시 필요한 정책이다.

지역에도 양질의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하고, 지방대학도 살아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반드시 구분해야 할 것이 있다.

균형발전은 목표이지 수단이 아니다.

산업의 논리를 거꾸로 세워서는 안 된다.

균형발전을 위해 산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곳에서 균형발전이 이루어져야 한다.

정부가 "기업이 원해서 투자한다"고 설명하더라도 국민은 충분히 검증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반대로 정치권의 "정치 논리"라는 비판 역시 실제 사업성 분석과 구분하여 검증되어야 한다. 결국 핵심은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객관적 데이터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번 사업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

 

수백조 원이 투입되는 국가사업이라면 최소한 다음과 같은 절차는 거치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의 상식이다.

첫째, 독립적인 경제성 평가가 공개되어야 한다.

둘째, 산업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공개 토론회가 열려야 한다.

셋째, 물과 전력 공급 계획이 국민 앞에 검증되어야 한다.

넷째, 기존 용인·평택 클러스터와의 역할 분담이 명확해야 한다.

다섯째, 사업 실패 시 국민 부담이 얼마나 되는지도 공개되어야 한다.

국민은 반대하기 위해 묻는 것이 아니다.

세금을 내는 국민으로서 알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다.

특히 이번처럼 국가 미래를 좌우할 사업이라면 국민 의견을 듣는 과정은 결코 정치적 부담이 아니라 정책의 정당성을 높이는 과정이다.

필자는 모든 국가사업을 국민투표로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수백조 원이 투입되는 초대형 프로젝트라면 최소한 공청회와 전문가 검증, 경제성 분석 공개는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밀어붙이는 정책은 속도는 빠를지 몰라도 신뢰는 얻지 못한다.

반대로 충분한 검증을 거친 정책은 시간이 걸려도 오래간다.

국가 산업정책은 선거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해 존재한다.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새로운 구호가 아니라 냉정한 계산이다.

정치는 지역을 바라보지만 산업은 세계를 바라본다.

반도체는 정치가 설계하는 산업이 아니라 시장과 기술, 그리고 냉혹한 경쟁이 선택하는 산업이다.

정부가 정말 국가 백년대계를 생각한다면 국민에게 먼저 묻고, 전문가에게 먼저 검증받고, 기업이 스스로 투자하고 싶어지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순서다.

 

국가의 미래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결정한다.

 

균형발전도 중요하다.

그러나 균형발전이 산업의 원칙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반도체의 미래는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과학적 근거와 산업 논리 위에서 세워질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국가 전략이 될 것이다.

 

2026. 06.

 

대중문화평론가/칼럼니스트/이승섭 시인

[거제도]

 

수원본부장 손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