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이유리 지음·청림출판)
식물은 늘 같은 자리에 서 있는 존재처럼 보인다.
말없이 계절을 견디고 꽃을 피우는 일이 당연해 보여 그 안의 시간은 좀처럼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러나 식물세포생물학자인 이유리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그 고요한 풍경 속에서 누구보다 치열한 생애를 발견한다. ‘식물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은 식물의 조용한 생애 속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길어 올린 인문과학 에세이다.
저자는 봄보다 먼저 피는 매화와 겨울을 견디는 동백, 긴 시간을 인내한 끝에 싹을 틔우는 씨앗을 통해 식물은 단 한 번도 남의 계절에 자신을 맞춘 적이 없다고 말한다.
맹그로브와 담쟁이, 바오밥나무 등 저마다의 생존 방식을 지닌 식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성장과 기다림, 공존의 의미를 풀어낸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저마다의 속도로 살아남았기에 오래 뿌리 내릴 수 있었다는 것.
식물의 생애는 우리에게도 조용한 질문을 건넨다.
식물을 향한 저자의 오랜 탐구는 학부 시절 받은 한 과제에서 시작됐다. ‘식물의 삶과 죽음에 대해 논하라’는 질문은 ‘독립적인 개체란 무엇인가’, ‘얼마만큼 죽어야 죽음이라 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게 했고 늘 배경에 머물던 식물을 하나의 생명으로 바라보게 했다.
대학의 울타리 밖에서 홀로 공부하던 시절부터 컴퓨터공학, 식물세포생물학으로 이어진 여정은 식물을 통해 삶의 태도를 읽어내는 시선으로 연결됐다.
식물은 조용하지만 결코 가만히 살아가지 않는다.
한 해의 절반을 지난 지금, 이 책은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막연한 위로 대신 자신만의 속도로 오래 뿌리 내리는 삶이 더 단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차분히 일깨운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남은 계절을 그려나가려는 이들에게 식물이 건네는 조용한 삶의 언어가 잔잔한 쉼표가 돼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