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섭 칼럼

대한민국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정치는 권력을 얻었지만, 국민의 신뢰를 얻었는가?

수원본부장 손옥자 2026.07.04 09:04

 

[필자]

대한민국은 지금 또 하나의 중대한 역사적 갈림길 앞에 서 있다. 정치권은 저마다 국민을 위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국민이 체감하는 현실은 그 말과는 거리가 멀다. 정부는 국정의 정당성을 내세우고, 국회는 의석수의 정당성을 앞세운다. 그러나 국민이 바라는 것은 명분 싸움이 아니라 삶의 개선이다. 정치가 국민의 삶보다 정쟁을 앞세우는 순간 민주주의는 형식만 남고, 국가는 활력을 잃는다.

 

지금 대한민국의 가장 큰 위기는 경제도, 외교도, 안보도 아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위기, 바로 정치에 대한 신뢰의 붕괴다.

민주주의는 선거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선거는 시작일 뿐이며, 그 이후 국민 앞에서 얼마나 책임 있게 권한을 행사하는지가 민주주의의 수준을 결정한다. 권력을 손에 쥐는 것은 어렵지만, 국민의 신뢰를 유지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렵다. 오늘 대한민국 정치는 바로 그 신뢰를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

더욱 눈여겨봐야 할 변화는 청년 세대다. 과거처럼 이념과 지역만으로 움직이는 시대는 사실상 끝나가고 있다. 20·30세대는 더 이상 어느 한 진영의 고정 지지층이 아니다. 그들은 취업과 주거, 교육, 자산 형성, 미래 성장 산업 같은 현실 문제를 기준으로 정치를 평가한다. 정치적 충성보다 정책의 성과를 묻는 세대가 등장한 것이다.

 

이는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성숙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기존 정치권에는 냉엄한 경고다. 국민은 이제 과거의 구호보다 결과를 본다. 정치가 삶을 바꾸지 못한다면 언제든 등을 돌릴 준비가 되어 있다.

정부 역시 이 변화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정부는 국가를 운영하는 주체이지만,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이 아니다. 정책은 명령이 아니라 설득을 통해 추진되어야 한다. 국정 운영은 법률적 정당성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국민의 공감과 신뢰라는 정치적 정당성이 함께해야 지속될 수 있다.

반대로 국회도 자유롭지 않다. 의석수는 국민이 위임한 권한이지 무제한의 면허증이 아니다. 다수결은 민주주의의 중요한 원칙이지만, 민주주의 전체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소수를 존중하고 반대 의견을 경청하며 타협하는 과정이 없다면 다수결은 자칫 숫자의 횡포로 비칠 수 있다.

정치는 승자독식의 게임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권력을 독점하는 제도가 아니라 권력을 끊임없이 견제하는 제도다. 어느 정부도, 어느 국회도 영원한 승자가 될 수 없다. 권력은 유한하지만 국민은 영원하다.

 

대한민국은 이미 여러 차례 이러한 교훈을 경험했다. 산업화 시대에는 경제 성장이 국가적 과제였고, 민주화 시대에는 자유와 인권이 시대정신이었다. 외환위기에서는 국민이 금 모으기 운동으로 나라를 지켰고, 세계 금융위기와 감염병의 위기 속에서도 국민은 놀라운 연대와 회복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지금의 위기는 성격이 다르다. 국민이 정치를 믿지 못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신뢰를 잃은 민주주의는 제도가 아니라 갈등의 무대가 된다. 국회는 대화보다 충돌을, 정부는 설명보다 일방적 추진을, 정당은 미래 비전보다 상대를 공격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세계는 지금 숨 가쁘게 변하고 있다. 인공지능 혁명은 산업 구조를 다시 쓰고 있으며, 반도체와 배터리, 바이오와 우주산업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분야가 되었다. 미국과 중국은 기술 패권 경쟁을 벌이고, 유럽은 공급망과 에너지 안보를 재편하고 있다. 세계는 미래를 향해 뛰고 있는데 대한민국은 정치적 갈등 속에서 제자리걸음을 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정치는 시간을 허비할 수 있지만, 국가는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 투자자는 기다려주지 않고, 기업은 경쟁자를 기다려주지 않으며, 청년의 인생은 정치 일정에 맞춰 멈춰 서지 않는다. 정치가 늦을수록 국민은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된다.

더 우려되는 것은 사회 전체에 퍼지는 냉소주의다. "누가 집권해도 달라질 것이 없다"는 체념은 민주주의의 가장 위험한 적이다. 국민이 정치를 포기하는 순간, 정치는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민주주의는 참여와 감시를 통해 살아 움직이는 제도이지, 몇 년에 한 번 투표하는 절차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이제 대한민국은 선택해야 한다.

 

첫 번째 길은 갈등의 연속이다. 정부와 국회가 서로를 국정의 동반자가 아닌 정치적 적으로만 규정한다면 사회는 더욱 분열될 것이다. 경제는 활력을 잃고 국민은 정치에 등을 돌릴 것이다.

 

두 번째 길은 무관심이다. 정치가 국민을 외면하고 국민도 정치를 포기한다면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는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위험한 쇠퇴의 길이다.

 

세 번째 길은 책임 정치다. 협치를 복원하고, 민생을 국정의 중심에 두며, 미래 산업과 교육, 저출산, 연금, 지역 균형발전 같은 국가적 과제를 정파적 이해관계보다 앞세우는 길이다. 이 길은 가장 어렵지만 대한민국이 반드시 선택해야 할 길이다.

정부에도 엄중히 말하고 싶다. 권력은 국민의 위임이지 소유물이 아니다. 국민의 목소리를 불편한 비판으로만 받아들인다면 국정 운영은 점점 고립될 것이다. 국정을 성공으로 이끄는 힘은 권위가 아니라 신뢰이며, 신뢰는 경청과 설명에서 시작된다.

 

국회에도 경고한다. 의석수는 국민의 명령이지 특권이 아니다. 다수의 힘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유혹은 민주주의를 약하게 만든다. 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에서 벗어나야 하고, 여당은 방어를 위한 방어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치의 목적은 상대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일으켜 세우는 데 있다.

 

청년들에게도 희망을 잃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대한민국은 아직 가능성이 큰 나라다. 세계가 인정하는 제조업 경쟁력과 창의적인 인재, 높은 교육 수준, 민주주의를 지켜낸 시민의식은 여전히 우리의 자산이다. 정치가 이 역량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 나라를 바꾸는 힘은 특정 정치인이 아니라 깨어 있는 시민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 속에서 수없이 확인해 왔다.

대한민국은 산업화의 기적을 만들었고 민주화를 이뤘으며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의 국가로 성장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기적이 아니다. 상식이 통하는 정치, 책임을 다하는 정부, 품격을 회복한 국회다.

국민은 완벽한 정치를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잘못을 인정할 줄 알며, 미래를 위해 협력하는 정치를 원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이며 선진국의 조건이다.

 

정치는 권력을 얻는 기술이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지키는 책임이다. 권력은 국민이 잠시 맡겨둔 것이며, 신뢰를 잃는 순간 언제든 거둘 수 있다. 역사는 수많은 권력이 흥망성쇠를 반복하는 모습을 기록했지만, 국민을 두려워하고 국민을 존중한 정치는 오래 살아남았다.

오늘 대한민국 정치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말이 있다.

 

국민은 권력의 대상이 아니라 국가의 주인이다.

 

이 단순한 원칙을 잊지 않는 순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다시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러나 이 원칙을 잊는 순간, 어떤 정부도 어떤 국회도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2026. 07.

 

대중문화평론가/칼럼니스트/이승섭

[젋은이들의 침묵시위]

 

수원본부장 손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