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섭 칼럼

[백성의 피땀과 역사의 진실을 짓밟는 시대의 미망을 찌른다]

{대한민국은 지금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이분희 취재본부장 2026.09.30 08:20

 

[필자]

역사는 한 국가의 뿌리이자 영혼이다. 안보는 그 영혼을 지켜내는 가장 튼튼한 울타리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은 역사의 뿌리가 왜곡의 도끼질 아래 흔들리고, 안보의 울타리가 비겁한 침묵 속에서 사그라지는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최근 1974년 영부인 저격 사건을 다룬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무책임한 역사 왜곡과 음모론의 창궐은 단순한 문화적 흥행이나 표현의 자유라는 명분으로 포장될 수 없다. 명확한 역사적 사실과 증거를 뒤로한 채, 국가적 비극의 배후를 흔들고 대한민국 정부의 자작극인 양 호도하는 시도는 대한민국 국가 정체성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외부 자본과 왜곡된 진영 논리가 결합하여 만들어낸 이러한 문화 프로파간다는 국민의 기억을 마비시키고 국가의 자존을 내부에서부터 무너뜨리고 있다.

 

더욱 개탄스러운 것은 실재하는 위협 앞에서의 유약함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현실은 단, 한순간도 평화로웠던 적이 없다.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로 인해 젊은 국군 장병들이 다리를 잃고 피를 흘렸음에도, 이에 대한 철저한 원인 규명과 엄중한 책무 추궁, 그리고 단호한 대책 마련은 간데없고 정치권은 미온적인 태도와 공허한 말 잔치로 일관하고 있다. 우리의 주적이 누구인지조차 떳떳하게 말하지 못하는 정권과 사회적 기류 속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청춘을 바친 장병들의 헌신은 도대체 어디서 보상받아야 하는가.

 

나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1. 거짓 신화와 상업주의가 만든 역사의 난도질

 

문화는 국가의 자긍심을 높이는 도구여야지, 역사의 진실을 왜곡하고 국민의 정신을 분열시키는 무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영화 《암살자(들)》이 '영화적 상상력'과 '미스터리 추적'이라는 탈을 쓰고 퍼뜨리는 음모론은, 당대 대한민국의 주권을 위협했던 북한의 공작과 조총련의 연루라는 엄연한 사실관계를 흐리고 있다.

역사적 사건에는 주체와 책임이 존재한다. 사실과 증거가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배후가 있을지 모른다".

"정권의 음모였다," 는 식의 가설을 정설처럼 각색하는 것은 픽션의 자유가 아니라 역사에 대한 테러다. 나아가 이러한 제작 과정에 왜곡된 시각과 거대 자본이 개입되어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희화화하고 국가의 도덕성을 갉아먹고 있다면, 이는 단순한 영화 한 편의 문제가 아니라 사상적 안보의, 균열이다.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주적(主敵)의 존재를 지우고, 남남갈등을 유발하는 음모론에 환호하는 기괴한 현실을 언제까지 방관할 것인가.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문화적 프로파간다가 국민의 의식을 지배할 때, 그 사회는 스스로 자신의 역사적 정통성을 포기하는 길로 접어들게 된다.

 

2. 목함지뢰의 피 흘림과 잊혀진 안보관

 

국가의 가장 첫 번째 의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며, 영토를 수호하는 장병들의 피 흘림을 결코 헛되이 하지 않는 것이다.

DMZ 비무장지대에서 발발했던 목함지뢰 도발과 이에 따른 장병들의 잔혹한 부상은 우연한 사고가 아니다. 그것은 분명한 적의 군사적 도발이자 대한민국의 안보를 뒤흔든 침범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국가의 모습은 어떠한가? 전방에서 나라를 지키다 신체를 잃은 젊은 장병들의 눈물 앞에서도 정부와 정치권은 단호한 응징이나 빈틈없는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적을 적이라 부르지 못하고, 도발을 도발이라 단죄하지 못하는 정치가 어떻게 국민의 삶과 안보를 책임질 수 있는가. 정치적 유불리와 외교적 눈치 보기에 급급하여 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적의 위협 앞에서는 순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내부의 역사와 자유에 대해서는 칼날을 휘두르는 모습은 전형적인 주객전도의 안보 무능이다.

국군 장병들의 다리가 잘려나가고 뼈가 깎이는 고통 속에서도 확고한 안보 결기와 사과 요구조차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미 국가로서의 기본적 자격을, 상실한 것과 다름없다.

 

3. '펜의 칼'은 거짓과 비겁함을 향해야 한다

 

나는 일찍이 '글은 백성이고, 펜은 칼이다. 라고 말해왔다. 펜이라는 칼은 권력의 눈치를 보거나 당파적 이익을 챙기기 위해 휘두르는 것이 아니다. 시대의 허위와 오만, 그리고 국가를 위기로 몰아넣는 비겁함을 도려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오늘날 언론과 지식인, 그리고 비평가들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 비틀어 돈을 벌고 이념적 혼란을 부추기는 왜곡된 콘텐츠에 대해 날카로운 사실의 칼날을 세워야 한다.
  • 경시하고 국군 장병들의 희생을 방치하는 위선적인 위정자들을 향해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 존립을 위협하는 외부의 도발과 내부의 무감각을 향해 경종을 울려야 한다.

 

진영을 불문하고 진실은 하나다.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주적은 명백히 존재하며, 그 적의 도발로 인해 우리의 자식들이 피를 흘렸다. 이 진실을 덮으려 하는 모든 거짓과 정치적 계산은 '펜의 칼'로 명명백백하게 도려내야 할 시대의 암 덩어리다.

 

4. 국격과 정의의 회복을 위한 요구

 

대한민국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거창한 수사나 정치적 구호가 아닌, 상식과 안보 원칙의 회복이 시급하다.

 

  • 진실과 문화적 책임성 확립: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여 국가적 비극을 정쟁이나 음모론의 수단으로 삼는 행위에 대해 지식인사회와 국민이 준엄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문화의 탈을 쓴 프로파간다에 국가의 정체성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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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적관과 안보 태세 재정립:북한의 지속적인 도발과 위협에 대해 '주적'의 개념을 명확히 하고, 단 한 명의 장병이라도 억울한 희생을 당하지 않도록 강력한 군사적 대응 태세와 철저한 사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 유공자 및 부상 장병에 대한 최상위 예우:나라를 위해 피 흘린 청년 장병들의 헌신을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고 기억해야 한다. 장병의 희생을 수수방관하는 국가는 유기된 국가나 다름없다.

결언: 진실과 국민 앞에 꺾이지 않는 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듯, 안보를 잊은 국가에는 평화가 존재하지 않는다.

거짓된 매체가 역사를 왜곡하고, 유약한 정권이 안보를 포기하려 할 때 백성들은 분노한다. 그 분노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나라를 바로 세우고자 하는 국민의 간절한 소망이다. 글을 쓰는 자의 펜은 바로 그 국민의 마음을 담아 가장 날카롭고 서슬 퍼렇게 빛나야 한다.

 

역사의 왜곡을 좌시하지 않고, 적의 도발 앞에 침묵하지 않으며, 피 흘린 장병들의 억울함을 외면하지 않는 정직한 사회. 그것이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진짜, 대한민국이다.

펜은 진실의 편에 설 때 비로소 칼이 된다. 거창한 권력이나 왜곡된 자본이 아닌, 대한민국을 지켜온 순국선열과 국군 장병, 그리고 오늘을 정직하게 살아가는 백성들이야말로 이 펜의 진정한 주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2026년 9월 30일

 

대중문화평론가/칼럼니스트/이승섭

[시는 무엇으로 쓰는가(출간 예정)]

 

이분희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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