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섭 칼럼

[글은 마음의 통찰이다 5부(1부~10부 중] {좋은 글에는 사람의 체온이 있다}

― 문장은 지식으로 만들어지지만, 독자의 마음에 남는 글은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완성된다

이분희 취재본부장 2026.09.24 09:19

 

[필자]

1. 사람의 체온이 없는 문장은 오래 살아남지 못한다

 

세상에는 잘 쓴 글이 많다. 문법이 정확하고, 논리가 정연하며, 표현도 아름답다. 어려운 지식도 풍부하고 인용도 훌륭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읽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글이 있다. 반대로 문장이 조금 투박하고 표현이 완벽하지 않아도 이상하게 마음에 오래 머무는 글이 있다. 나는 그 차이가 ‘사람의 체온’에 있다고 생각한다. 글은 언어로 쓰지만, 독자는 그 언어를 통해 글쓴이의 마음을 만난다.

 

한 문장 안에 진심이 있는지, 삶의 흔적이 있는지,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있는지를 독자는 의외로 정확하게 느낀다. 그래서 좋은 글은 읽는 것이 아니라 만나는 것에 가깝다. 문장을 읽었는데 한 사람을 만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고,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이 느껴지며, 그가 무엇을 아파했고 무엇을 사랑했는지가 느껴진다. 그런 글에는 체온이 있다. 그리고 체온이 있는 문장은 쉽게 식지 않는다.

 

2. 체온은 꾸며낼 수 없다

 

사람의 체온을 글에 넣는다고 해서 감동적인 말을 일부러 많이 쓸 필요는 없다. 오히려 지나치게 감정을 꾸미면 글은 쉽게 인공적인 냄새를 풍긴다.

진심은 장식하지 않아도 전달된다. 오래 살아온 사람의 담담한 한마디가 때로는 화려한 수사보다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학의 진정성은 감정을 크게 표현하는 데 있지 않다. 자신이 실제로 느낀 것을 거짓 없이 바라보는 데 있다. 기쁨을 기쁨이라고 말할 수 있고, 슬픔을 슬픔이라고 인정할 수 있으며, 자신이 잘못했을 때 그것을 인정할 수 있는 마음. 그것이 글의 진정성을 만든다.

 

그래서 좋은 글을 쓰려면 먼저 자신에게 솔직해야 한다. 타인을 감동시키려고 쓰기 전에 내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바라봐야 한다. 자신의 마음을 속인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는 어렵다. 문장은 결국 마음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3.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인간을 쓸 수 있는가

 

문학은 결국 인간을 이야기한다. 시가 자연을 노래하더라도 그 자연을 바라보는 것은 인간이다. 소설이 한 시대를 이야기하더라도 그 시대를 살아가는 것은 인간이다. 평론이 작품을 분석하더라도 그 작품을 만든 사람과 그것을 읽는 사람의 마음이 그 안에 있다. 그래서 문학의 중심에는 언제나 인간이 있다. 나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사람을 바라보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모든 사람을 무조건 좋아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모순과 부족함까지 이해하려는 마음이다.

 

►사람은 왜 실수하는가.

►왜 욕망하는가.

►왜 사랑하면서 상처를 주는가.

►왜 외로우면서도 타인에게 다가가지 못하는가.

►왜 용서하고 싶으면서도 용서하지 못하는가.

 

이런 질문을 오래 바라보는 것이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 문학은 인간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일이 아니다. 인간의 어둠까지 바라보면서도 인간을 포기하지 않는 일이다. 그것이 문학이 가진 고귀한 힘이다.

 

4. 공감은 약함이 아니라 가장 깊은 지성이다

 

우리는 흔히 이성적인 사람을 지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논리가 정확하고 판단이 빠르며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을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공감 역시 매우 깊은 지성의 형태라고 생각한다. 공감한다는 것은 단순히 상대방의 감정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 세상을 한 번 바라보는 것이다. 내가 그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그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 이런 말을 했을까. 내가 모르는 어떤 상처가 그 사람 안에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질문을 할 수 있는 능력이 공감이다.

공감은 나의 세계에서 잠시 내려와 다른 사람의 세계에 들어가는 일이다.

 

그래서 공감에는 겸손이 필요하다. 내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 사람을 쉽게 단정하지 않고,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지 않으며, 말하지 못한 사정까지 생각해보는 것. 이런 태도에서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 이해가 문장으로 표현될 때 글에는 사람의 체온이 생긴다.

 

5. 가장 좋은 글은 독자를 가르치기보다 함께 걷는다

 

글을 쓰다 보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독자에게 가르치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러나 글쓴이가 독자보다 높은 곳에 서려고 하는 순간 문장은 딱딱해진다. 좋은 글은 독자를 내려다보지 않는다. 오히려 독자와 같은 눈높이에 선다. ‘내가 이런 것을 알고 있으니 당신도 배워야 한다’가 아니라, ‘나는 이렇게 생각해왔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묻는다. 나는 이 차이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문학은 명령하지 않는다. 좋은 시는 독자에게 울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한 장면을 보여준다. 그러면 독자가 스스로 운다.

 

좋은 소설은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를 쉽게 판정하지 않는다. 인물들의 삶을 보여주고 독자가 스스로 생각하게 한다. 좋은 평론도 작품을 대신해 결론을 내려버리기보다 독자가 작품을 더 깊이 바라볼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그래서 좋은 글은 독자와 함께 걷는 글이다.

 

6. 사람 냄새는 작은 것에서 나온다

 

글의 체온은 거대한 주장보다 작은 장면에서 더 잘 드러난다. 아버지가 남겨둔 낡은 의자 하나. 어머니가 평생 사용하던 그릇 하나. 비 오는 날 우산 없이 서 있던 아이. 혼자 밥을 먹는 노인의 뒷모습.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한 친구의 이름. 이런 작은 것들이 한 사람의 마음을 흔든다. 왜 그런가. 그 안에 삶이 있기 때문이다.

 

문학은 거대한 명제를 이야기하면서도 결국 작은 장면 하나로 독자의 마음을 움직인다. ‘인간은 외롭다’라고 설명하는 것보다 혼자 식탁에 앉아 식은 국을 바라보는 한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강할 수 있다. ‘세월은 흐른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어린 시절의 사진 속 얼굴을 바라보는 장면 하나가 더 많은 것을 말할 수 있다. 이것이 문학의 힘이다. 설명보다 보여주는 것. 주장보다 느끼게 하는 것. 그리고 그 작은 장면에서 인간의 보편적인 마음을 발견하게 하는 것.

 

7. 따뜻함은 감상주의와 다르다

 

사람의 체온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모든 글이 부드럽고 감상적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좋은 글은 때로 매우 날카롭다.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사회의 모순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하며, 인간의 위선과 욕망을 직시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비판의 출발점이다. 사람을 미워하기 때문에 비판하는가. 아니면 더 나은 인간과 사회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판하는가. 같은 날카로운 문장이라도 그 안에 인간을 향한 애정이 있다면 독자가 받아들이는 울림은 달라진다. 나는 평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비판은 필요하다. 그러나 비판을 위한 비판은 결국 또 하나의 폭력이 될 수 있다.

 

진정한 비평은 작품을 무너뜨리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작품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밝혀내는 데 의미가 있다. 작가의 부족함을 지적하더라도 그 작품이 왜 태어났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그것이 사람을 바라보는 비평의 태도다.

 

8. 글에는 글쓴이의 삶이 스며든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쓰려고 해도 완전히 객관적인 글은 존재하기 어렵다.

글쓴이는 자신이 살아온 세계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도, ►살아온 시대도, ►만났던 사람들도, ►읽었던 책들도, ►겪었던 실패도, ►품었던 꿈도 모두 문장 속에 조금씩 들어간다. 그래서 같은 사건을 바라보아도 사람마다 전혀 다른 글을 쓴다.

 

나는 이것이 글쓰기의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한다. 각자의 삶이 각자의 문장을 만들기 때문이다. 결국 글쓰기는 자신의 삶을 세상에 내어놓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글을 쓴다는 것은 어느 정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자신의, 생각을 보여준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 위험을 감수할 때 글은 살아난다. 완벽하게 감춘 글보다 조금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글이 독자의 마음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이유다.

 

9. 오래 읽히는 글에는 인간에 대한 믿음이 있다

 

시대가 바뀌어도 오래 읽히는 작품들이 있다. 수백 년 전에 쓰인 문학작품을 오늘의 독자가 읽고도 눈물을 흘리고 웃는 이유는 무엇인가. 시대는 달라도 인간의 마음에는 변하지 않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버림받기 싫고, ►외롭지 않고 싶고,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고, ►자신의 삶이 의미 있기를 바라는 마음.

이러한 마음은 시대를 넘어 존재한다.

 

그래서 오래 살아남는 문학은 인간의 본질을 건드린다. 나는 좋은 글이 결국 인간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추악함을 보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어둠을 충분히 바라보되, 그 어둠 속에서도 인간이 다시 일어설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은 잘못할 수 있다.

무너질 수도 있다. 때로는 스스로에게조차 실망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에게 다시 시작할 가능성이 있다는 믿음. 그것이 문학이 마지막까지 붙잡아야 할 희망인지도 모른다.

 

10. 좋은 글은 사람을 다시 사람에게 돌려보낸다

 

결국 글의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글을 읽은 사람이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글을 읽고 나서 세상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고, 평소 무심히 지나쳤던 사람을 한 번 더 바라보고, 가족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떠올리고, 잊고 있던 꿈을 다시 생각하고, 자신의 삶을 조금 더 사랑할 수 있다면, 그 글은 이미 충분히 살아 있다. 문학은 현실에서 우리를 떼어놓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을 더 깊이 살아가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

 

한 편의 시를 읽고 난 뒤 길가의 나무를 다시 바라보게 되는 것. 한 편의 소설을 읽고 난 뒤 가족의 얼굴을 다시 바라보게 되는 것. 한 편의 평론을 읽고 난 뒤 자신이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을 다시 질문하게 되는 것. 이것이 글의 힘이다.

좋은 글은 사람을 현실에서 멀리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현실로 데려간다. 그리고 결국 사람을 다시 사람에게 돌려보낸다.

 

맺음말 문장의 마지막에는 사람이 있다

 

나는 글을 오래 쓰면서 한 가지 사실을 점점 더 분명하게 느낀다. 문장은 지식으로 시작할 수 있다. 경험으로 시작할 수도 있고, 질문으로 시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장이 사람의 마음에 오래 남기 위해서는 결국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좋은 글은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다. ►좋은 글은 인간의 어둠을 외면하지 않는다. ►좋은 글은 상처를 아름답게 포장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 모든 것을 바라보면서 묻는다.

 

‘인간은 왜 이렇게 살아가는가.’‘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가.’ ‘상처받은 사람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리고 그 질문을 끝까지 붙잡는 순간 문장에는 사람의 체온이 생긴다. 나는 이것이 문학의 고귀함이라고 생각한다. 문학은 인간을 완벽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그러나 인간을 조금 더 이해하게 만들 수 있다. 문학은 세상을 단번에 바꾸지는 못한다. 그러나 한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 그리고 한 사람의 마음이 바뀌면 그 사람이 바라보는 세상도 조금 달라진다. 그러므로 글 한 편을 쓰는 일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한 사람의 마음에서 나온 문장이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 건너가는 일은, 인간이 인간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대화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좋은 글을 ‘마음과 마음 사이에 놓이는 다리’라고 생각한다. 그 다리에는 지식도 있고 경험도 있으며 사유와 통찰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하나로 묶는 마지막 힘은 결국 사람이다. 사람을 바라보는 마음. 사람을 이해하려는 마음. 사람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마음. 그리고 인간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이 문장의 체온을 만든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쓸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문장에는 사람이 있는가.’ ‘이 문장을 읽은 사람이 자신의 삶을 조금 더 사랑할 수 있는가.’ ‘내 문장이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온기가 될 수 있는가.’

그 질문을 놓지 않는 한 글은 차가운 지식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글은 살아 있는 인간의 언어가 될 것이다.

 

그리고 결국, 좋은 글의 가장 깊은 곳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문장의 시작에도 사람이 있고, 문장의 끝에도 사람이 있다. 그 사이를 흐르는 것이 바로 마음의 체온이다. 글은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경험을 지나고, 기억을 지나고,

성찰과 통찰을 거쳐, 마침내 사람에게 돌아온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된다. 글을 쓴다는 것은 말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이해가 깊어질수록 문장은 더욱 따뜻해지고, 따뜻해진 문장은 더욱 오래 살아남는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글은 마음의 통찰이다’라는 말의 또 하나의 의미다. 6부에서는 마음을 살핀다. 로 시작을 하겠다.

 

2026. 09.

 

대중문화평론가/칼럼니스트/이승섭

[무전 여행]

 

 
이분희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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