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섭 칼럼

[글은 마음의 통찰이다.1부~10]6부. 글쓰기는 결국 나를 발견하는 일이다

― 문장 속에서 만나는 또 하나의 나, 고독과 성찰이 자아를 깨우는 시간 1. 글쓰기는 자신을 표현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다

이분희 취재본부장 2026.09.26 10:06

 

 

 

[필자]

사람들은 흔히 글쓰기를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글쓰기의 더 깊은 세계로 들어가면, 글은 단순히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밖으로 꺼내는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는 자신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좋아하며, 무엇을 싫어하는지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일을 중요하게 여기고 어떤 사람을 멀리하는지도 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대부분 사회 속에서 만들어진 ‘나’다.

 

직업으로서의 나, 가족 안에서의 나, 사회적 관계 속에서의 나, 타인의 시선 속에서 평가받는 나다. 그러나 그 모든 이름과 역할을 내려놓고 혼자 남았을 때의 나는 과연 누구인가. 글쓰기는 바로 그 질문에서 시작된다. 펜을 들고 한 문장을 쓰는 순간 우리는 세상에 보여주기 위한 나가, 아니라,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나와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진짜 글쓰기는 자기표현보다 자기발견에 가깝다. 글을 쓰면서 우리는 뜻밖의 문장을 만나고, 그 문장 앞에서 스스로 놀라기도 한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나는 이런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구나.’ ‘나는 아직도 이것을 놓지 못하고 있었구나.’

글은 내가 알고 있는 나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몰랐던 나를 드러내기도 한다. 그 순간 글쓰기는 기록을 넘어선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하나의 탐험이 된다.

 

2. 사람은 사회적 자아와 내면의 자아 사이에서 살아간다

 

사람은 혼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태어나면서부터 가족이라는 세계에 들어가고, 학교와 사회를 거치며 수많은 관계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배운다. 부모에게는 자녀이고, 자녀에게는 부모이며, 직장에서는 직업인이 되고, 사회에서는 한 사람의 시민이 된다. 우리는 평생 수많은 이름으로 불린다. 그러나 이름이 많아질수록 오히려 ‘진짜 나’가 무엇인지 희미해질 때가 있다. 사회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어떤 모습이 되라고 요구한다.

강해야 한다고 말하고, 성공해야 한다고 말하고,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때로는 웃어야 할 때 웃고,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하며, 자신의, 생각보다 타인의 기대에 맞추어 살아간다. 그렇게 살아가는 동안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여러 개의 가면을 갖게 된다. 가면이 반드시 거짓이라는 뜻은 아니다.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얼굴도 있다. 문제는 가면을 오래 쓰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것이 자신의 얼굴이라고 착각하게 된다는 데 있다. 글쓰기는 그 가면을 잠시 내려놓게 한다.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한 문장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솔직해지는 문장을 쓰기 시작할 때, 우리는 사회적 자아와 내면의 자아 사이에 놓여 있던 거리를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그 거리에서 비로소 질문이 생긴다.

☛‘나는 정말 무엇을 원하며 살아왔는가.’

☛‘나는 누구의 기대를 위해 살아왔는가.’

☛‘내가 선택했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정말 나의 선택이었는가.’

 

이 질문을 견디는 순간부터 글쓰기는 자기성찰이 된다.

 

  •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시간이다

 

고독과 외로움은 같은 말이 아니다. 외로움은 사람이 곁에 없어서 생기는 감정일 수 있지만, 고독은 사람이 곁에 있어도 스스로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상태다. 외로움이 관계의 부재라면 고독은 자기 자신과의, 만남이다. 현대인은 혼자 있는 것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늘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고, 무엇인가를 보고 있으며,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와 소리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그러나 소리가, 너무 많으면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그래서 글쓰기를 위해서는 때때로 고독이 필요하다. 조용한 방에 앉아 아무도 나를 평가하지 않는 시간, 휴대전화도 내려놓고 세상의 속도에서도 잠시 벗어난 시간, 그때 비로소 마음 깊은 곳에서 오래 묻어두었던 생각 하나가 올라온다. 고독은 우리에게 묻는다.

 

‘이제 남의 목소리는 잠시 내려놓고, 너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보겠느냐.’ 좋은 글은 바로 그 조용한 시간에서 태어난다. 고독 속에서 사람은 자신에게 질문하고, 자신이 스스로에게 했던 거짓말을 발견하며, 외면했던 기억과 다시 만난다. 그러므로 글을 쓰는 사람에게 고독은 빈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내면을 경작하는 시간이다.

 

  • 있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나

 

사람은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자신을 숨길 수 있다. 웃음으로 슬픔을 감출 수도 있고, 바쁨으로 공허함을 덮을 수도 있으며, 말로 침묵을 가릴 수도 있다. 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달라진다.

아무에게도 설명할 필요가 없는 순간, 사람은 자신의 진짜 생각과 마주하게 된다. 그때 문득 오래전의 일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미 지나간 줄 알았던 사람, 잊었다고 생각했던 상처, 이루지 못한 꿈, 하지 못했던 말, 그리고 다시 돌아가고 싶은 어느 한 시절이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글은 바로 그 문을 열어주는 행위다.

 

우리가 쓰지 못했던 말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다가 어느 날 문장이 되어 돌아온다. 그래서 어떤 글은 오래된 기억에서 시작되고, 어떤 글은 후회에서 시작되며, 어떤 글은 이름 모를 그리움에서 시작된다. 중요한 것은 과거를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때의 나를 오늘의 내가 다시 바라보는 것이다. 과거의 나는 그때의 눈으로 세상을 보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른 시간을 살아왔다. 그래서 같은 사건도 다르게 보인다.

이것이 성찰이다. 시간은 과거를 바꾸지는 않지만, 과거를 바라보는 우리의 눈을 바꾼다.

 

  • 내가 숨겨놓은 나를 불러낸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안에 여러 개의 자신을 가지고 살아간다. 세상에 보여주는 나도 있고, 감추고 싶은 나도 있다. 당당한 나도 있고, 흔들리는 나도 있다. 꿈을 꾸는 나도 있고, 포기하려는 나도 있다.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은 나도 있고, 아무에게도 기대고 싶지 않은 나도 있다. 우리는 그 많은 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여 세상에 내놓는다. 그러나 글을 쓰기 시작하면 선택하지 않았던 나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낸다. 평소에는 괜찮다고 생각했던 일이 사실은 마음에 오래 남아 있었다는 것을 깨닫기도 한다. 별것 아니라고 넘겼던 말 한마디가 자신에게는 깊은 상처였음을 알게 되기도 한다.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던 꿈이 아직 마음속에서 살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래서 글쓰기는 내면의 고고학과 같다. 한 문장을 파내면 그 아래에 또 다른 기억이 있고, 그 기억 아래에는 또 다른 감정이 있다. 마침내 우리는 오래 묻어두었던 자기 자신과 마주한다. 글은 그렇게 내가 숨겨놓은 나를 다시 세상 밖으로 불러낸다.

 

  • 견디는 것이 성찰의 시작이다

 

자신을 발견하는 일은 결코 아름답기만 한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때로는 불편하고 부끄럽다.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모순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미워하기도 하고, 용서했다고 하면서 마음 한편에 원망을 남겨두기도 한다. 겸손을 말하면서 인정받고 싶어 하고, 자유를 말하면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다. 옳음을 말하면서 자신의 잘못에는 관대하고, 다른 사람의 실수에는 엄격할 때도 있다. 이것이 인간이다.

 

자기성찰이란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만 바라보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보기 싫은 자신의 모습까지 바라볼 수 있는 용기다. 글쓰기는 그 용기를 요구한다. 자신을 미화하려는 순간 문장은 얕아지고, 자신에게조차 솔직해지는 순간 문장은 깊어진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완벽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옳기도 하고 틀리기도 했으며, 용감하기도 했고 비겁하기도 했으며, 사랑하기도 했고 상처 주기도 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자신을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성찰은 자신을 심판하는 일이 아니다.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오래 바라보는 일이다. 그래서 진정한 글쓰기는 자기고백과도 다르다.

고백은 자신을 드러내는 데서 끝날 수 있지만, 성찰은 드러난 자신을 다시 이해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 들수록 글은 ‘증명’보다 ‘이해’에 가까워진다

 

젊은 시절의 글에는 자신을 증명하려는 마음이 강하다. 나는 무엇을 알고 있는 사람인지, 무엇을 해낸 사람인지, 얼마나 뛰어난 사람인지 보여주고 싶어진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조금씩 달라진다. 인생의 많은 장면을 지나고 나면 사람은 깨닫는다. 인생은 자신을 증명하는 일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오히려 중요한 것은 이해하는 일이라는 것을. 왜 그 사람이 그렇게 행동했는지, 왜 나는 그때 그런 선택을 했는지, 왜 어떤 인연은 오래 남고 어떤 인연은 스쳐 지나갔는지, 왜 젊은 날에는 그렇게 중요했던 일이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은지. 시간이 쌓이면 질문의 깊이가 달라진다.

젊음이 ‘무엇을 얻을 것인가’를 묻는 시간이라면, 성숙은 ‘무엇을 이해할 것인가’를 묻는 시간이 된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글은 조금씩 달라져야 한다.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는 글보다 삶을 이해하려는 글이 깊어진다. 자신의 성공을 자랑하는 글보다 실패에서 무엇을 배웠는지를 말하는 글이 오래 남는다. 삶을 많이 살아온 사람의 글에는 설명할 수 없는 무게가 있다. 그 무게는 지식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시간에서 온다. 상실에서 오고, 기다림에서 오며,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에서 온다. 그래서 진짜 글쓰기는 나이를 먹을수록 깊어질 수 있다. 삶이 늘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 만나지 못한 나를 향하여

 

우리는 흔히 자기 자신을 과거와 현재의 합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은 과거의 총합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우리 안에는 아직 살아보지 않은 삶도 있기 때문이다. 아직 쓰지 않은 글, 아직 하지 않은 말, 아직 만나지 않은 사람, 아직 가보지 않은 길, 그리고 아직 발견하지 못한 나. 나는 이것을 ‘미래의 나’라고만 부르고 싶지 않다. 그것은 아직 만나지 못한 또 하나의 나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갱신한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와 다르고,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와 같을 이유도 없다.

 

그러므로 글쓰기는 과거의 나를 기록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미래의 나를 부르는 일이기도 하다. 한 편의 글을 쓰면서 우리는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남은 시간 동안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내가 끝까지 지키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하는 순간 글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삶의 방향이 된다. 특히 인생의 후반부에 들어서면 이 질문은 더욱 깊어진다.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보다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가 중요해지고, 얼마나 유명해졌느냐보다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가 중요해진다. 그래서 글쓰기는 끝을 향해 가는 일이 아니라, 아직 남아 있는 삶을 다시 바라보는 일이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문장이 남아 있는 한, 발견할 나도 남아 있다.

 

  • 삶을 다시 선택하는 일이다

 

삶은 한 번 선택했다고 해서 영원히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다시 선택한다. 어떤 사람을 용서할 것인지, 무엇을 내려놓을 것인지, 무엇을 끝까지 지킬 것인지, 남은 시간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

글쓰기는 그 선택을 의식하게 만든다. 한 문장을 쓰는 것은 때때로 지나간 삶에 대한 판결을 내리는 일이 아니라, 그 삶을 새롭게 해석하는 일이다. 과거의 실패를 실패로만 남겨두지 않고 배움으로 바꿀 수 있다. 상처를 상처로만 기억하지 않고 인간을 이해하는 눈으로 바꿀 수도 있다. 잃어버린 시간을 후회로만 남겨두지 않고 지금부터 살아야 할 시간의 가치로 바꿀 수도 있다.

이것이 글이 가진 힘이다. 글은 과거를 지우지 않는다. 그러나 과거에 붙잡혀 있던 나를 조금씩 풀어준다. 그리고 다시 앞으로 걸어가게 한다.

그래서 글쓰기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삶을 다시 선택하는 행위다.

 

  • 발견한 문장은 다시 세상으로 돌아간다

 

결국 글쓰기는 자기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지만, 자기 안에 머무는 일은 아니다. 자신을 깊이 바라본 사람은 다시 세상으로 돌아간다. 다만 이전과 같은 눈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게 된 사람은 타인의 부족함에도 조금 더 너그러워진다. 자신의 상처를 바라본 사람은 타인의 상처를 쉽게 판단하지 않는다. 자신이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으며 살아왔는지를 깨달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삶도 조금 더 따뜻하게 바라본다. 이것이 자기발견의 궁극적인 의미다. 나를 알기 위해 나에게 들어갔지만, 결국 더 넓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세상으로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좋은 글쓰기는 자기애에 머물지 않는다. 자기성찰은 타인에 대한 이해로 확장되어야 한다. 내 마음을 깊이 들여다본 사람이 비로소 다른 사람의 마음도 깊이 바라볼 수 있다. 그래서 글은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면서 동시에 밖으로 나가는 문이다. 글쓰기는 나를 발견하는 일이지만, 그 발견의 끝에는 다시 사람이 있다.

 

맺음말 ― 글쓰기는 아직 만나지 못한 나를 만나는 일이다

 

돌이켜보면 사람은 평생 자신을 찾아다닌다. 어린 시절에는 내가 누구인지 몰라서 찾고, 젊은 시절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 찾으며, 시간이 흐른 뒤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찾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닫는다. 내가 찾고 있던 사람은 멀리 있지 않았다는 것을. 언제나 내 안에 있었지만, 너무 바쁘게 살아온 탓에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을 뿐이라는 것을. 글쓰기는 그 사람을 만나는 조용한 방법이다. 한 문장을 쓰고, 그 문장을 다시 바라보고, 그 문장 속에서 나를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자신과 조금 가까워진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문장 속에서 낯선 나를 발견한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약한 나.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따뜻한 나.

☛아직 포기하지 않은 나.

☛그리고 아직 살아보고 싶은 것이 남아 있는 나.

 

그것이 글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깊은 선물인지도 모른다. 글쓰기는 살아온 나를 바라보는 일이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글쓰기는 아직 살아갈 나를 발견하는 일이다.

나는 이것이 글의 본질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내가 말하는 ‘이승섭 논고론’에서 글은 단순히 생각을 적어놓은 문장이 아니다.

 

논고란 인간과 시대를 오래 바라보고, 그 바라봄 속에서 발견한 질문을 자신의 삶과 연결하여 문장으로 세우는 일이다. 그러므로 글을 쓴다는 것은 세상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세상 속에 살아온 나를 다시 바라보고, 그 나를 넘어 아직 만나지 못한 나에게 다가가는 일이다. 결국 글은 마음에서 시작되지만, 진짜 글쓰기는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서 자신을 만났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그리고 그 만남이 깊어질수록 문장은 조용해진다.

 

자랑할 것이 줄어들고, 판단할 것이 줄어들며, 이해하고 싶은 것이 많아진다.

그때 글은 비로소 사람의 얼굴을 갖는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그리고 나는 남은 삶에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이 세 가지 질문을 오래 품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글쓰기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그것은 삶을 다시 바라보는 방법이며, 자신을 다시 만나는 방법이며, 아직 끝나지 않은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글쓰기는 나를 표현하는 일이 아니다. 글쓰기는 나를 발견하는 일이다. 그리고 나를 발견한 사람만이, 비로소 다른 사람의 마음을 깊이 바라볼 수 있다. 글은 그렇게 한 사람의 내면에서 태어나 다시 인간에게로 돌아가는 법칙이라 부르면서 제7부를 기대하자.

 

2026. 09.

 

대중문화평론가/칼럼니스트/이승섭

 

[크로아티아 지도]

 

이분희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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