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것은 백지 위에 먹물을 흩뿌리는 단순한 물리적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세상에 난무하는 무수한 소음 사이에서 단 하나의 진실한 독백을 길어 올리는 고도의 정신적 투쟁이며,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아내는 구도의 과정입니다. 문학을 사유하고 대중문화의 이면을 통찰하는 평론가이자, 언어의 미학을 벼려내는 시인에게 글쓰기는 단순한 자기표현을 넘어 세계와 자아를 연결하는 철학적 실천입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울림을 주는 글을 잉태하기 위해 글쟁이들이 반드시 천착해야 할 ‘이치(理致)’와 ‘섭리(攝理)’란 과연 무엇인가.
이 두 가지 축을 온전히 이해할 때, 비로소 글은 활자의 무덤을 벗어나 독자의 내면에 살아 숨 쉬는 생명력을 얻게 됩니다.
1. 글의 이치(理致): 사유의 문법과 해체의 논리
이치(理致)는 사물의 정당한 조리(條理)이자, 우주와 현상을 관통하는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법칙입니다. 글에서의 이치란, 곧 ‘사유의 문법’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고매한 감정과 번뜩이는 직관이 존재하더라도, 그것이 이치라는 뼈대를 갖추지 못하면 파편화된 감상에 머물고 맙니다.
따라서 글쟁이에게 이치를 안다는 것은 언어의 기술적 연마를 넘어, 세상을 해석하는 자신만의 단단한 철학적 잣대를 세우는 일입니다.
2. 글의 섭리(攝理): 무의식의 평행과 직관의 울림
반면, 섭리(攝理)는 인간의 이성과 논리를 초월하여 만물을 다스리고 이끄는 거대한 자연의 법칙이자 우주적 질서입니다. 글에서의 섭리란 작가의 의도를 넘어서서 글 자체가 스스로 생명력을 지니고 흘러가는 ‘언어의 무의식적 흐름’입니다.
이치만 있는 글은 건조한 매뉴얼이나 딱딱한 보고서가 되기 십상이며, 섭리만을 좇는 글은 뜬구름 잡는 몽상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문학적 성취는 날 선 이치로 뼈대를 세우고, 깊은 섭리로 그 위에 따뜻한 피와 살을 입힐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3. 왜 글쟁이는 이치와 섭리를 동시에 꿰뚫어야 하는가
작가는 시대의 거울이자 영혼의 기록자입니다. 특히 텍스트를 해부하는 평론가이자 미학을 창조하는 시인이라는 두 개의 정체성을 동시에 짊어진 이에게 이치와 섭리는 새의 양 날개와 같습니다.
이치를 모르는 작가는 현상의 본질을 짚어내지 못해 독자를 미몽으로 이끌고, 섭리를 모르는 작가는 독자의 가슴을 뛰게 할 감동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이치는 진리(Truth)를 향해 나아가는 차가운 이성의 길이고, 섭리는 진실(Reality)을 껴안는 뜨거운 감성의 길입니다. 이 두 가지가 팽팽한 긴장 속에서 조화를 이룰 때, 활자는 비로소 종이 밖으로 튀어나와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횃불이 되고 대중의 상처를 보듬는 위로가 됩니다.
4. 방점(傍點)을 찍는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
그렇다면, 이 치열한 이치와 섭리의 사유 끝에 필자가 마지막으로 '방점(傍點)'을 찍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방점은 단순히 문장의 끝을 맺는 마침표가 아닙니다. 그것은 글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을 찌르는 행위이자, 흩어져 있던 사유의 조각들을 하나로 응집시키는 폭발적인 순간입니다.
필자가 방점을 찍는 행위는 다음 세 가지 차원의 철학적 결단입니다.
첫째, 평론가로서의 엄중한 판결입니다. 대중문화와 문학이라는 방대한 텍스트 속에서 이치의 잣대로 옥석을 가려내고, 무엇이 시대의 진정한 가치인지 선언하는 권위의 도장입니다. 흐릿한 시대정신에 가장 짙고 선명한 먹물을 찍어 기준을 제시하는 일입니다.
둘째, 편집인이자 지성인으로서의 융합입니다. 수많은 소음과 파편화된 이야기들 속에서, 무엇을 세상에 내보일 것인가를 결정하는 막중한 책임입니다.타인의 글과 자신의 글을 아울러, 시대가 읽어야 할 단 하나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등대의 불빛입니다.
셋째, 시인으로서의 숭고한 침묵입니다. 섭리에 도달한 글은 마지막 방점 이후에 긴 여운을 남깁니다. 필자가 찍은 그 하나의 점(點)은 끝이 아니라, 독자가 자신의 삶과 무의식을 반추하게 만드는 새로운 사유의 시작점입니다. 그 방점 뒤에 이어지는 침묵이야말로 필자가 독자에게 건네는 가장 깊은 울림의 공간입니다.
결국, 필자가 글에 방점을 찍는다는 것은 "차갑게 해부한 세상의 이치를, 가장 따뜻한 우주의 섭리로 끌어안아 세상에 내놓는 완성의 의식(儀式)"입니다. 이 묵직한 진리가 깃든 글이야말로, 문학의 숲을 거니는 신진 작가들에게는 흔들리지 않는 나침반이 되고 독자들에게는 영혼을 뒤흔드는 경이로운 체험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굳게 믿으면서 나가려합니다.
2026. 11.
대중문화평론가/칼럼니스트/이승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