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섭 칼럼

[언어의 실존적 침묵과 진실의 회복]

서론: 눈덩이가 된 말, 그리고 변명의 정치학

수원본부장 손옥자 2026.08.24 08:56

 

 

[필자의 나들이]

"말이 입 밖으로 나올 때, 이미 변명의 구실이 첨가되고, 전달되는 순간 비대해진 눈덩이가 된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가장 비극적인 풍경은 '언어의 파산'이다. 본래 인간의 언어는 세계의 진실을 밝히고 타인과의 인격적 만남을 이루어내는 신성한 빛이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언어는 어떠한가. 말이 입 밖으로 흘러나오는 순간, 진실을 향한 열망은 사라지고 자기 합리화와 책임 회피라는 껍데기만 덧붙여진다. 말이 구르면 구를수록 그 안의 진실은 차갑게 얼어붙고, 외형만 비대해진 변명의 눈덩이가 되어 사회적 신뢰를 파괴하고 있다.

 

"침묵만이 진실이고 언어는 변명의 들러리에 머문다"는 자조 섞인 유행어는 단순한 자학이 아니다. 그것은 타자와의 진정한 소통이 불가능해진 시대, 말이 오히려 진실을 가리는 암막이 되어버린 시대를 향한 서글픈 고백이다. 한 치의 변명도 없이 살아가는 완벽한 인간은 없겠으나, 오늘날 우리 사회—특히 권력의 중심부인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변명의 향연은 이미 개인의 약점을 넘어서는 거대한 시대적 병리 현상이다.

 

얼굴에 아무런 표정도 없이, 자신이 내뱉은 거친 말과 탈법적 행위를 "자기주장의 와전"이나 "전달의 오류"로 포장하는 변명의 달인들. 그들은 말이 가리키는 대상과 현실 사이의 균열을 아무렇지도 않게 메우며 수치심을 잃어버렸다. 공적 언어가 사적 욕망의 도구로 전락하고, 말이 진실의 통로가 아닌 변명의 방패로 쓰일 때, 그 사회의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은 '갑질 공화국'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1: 언어의 배반 자기 합리화라는 아편과 공적 언어의 파산

 

그리스 아테네의 광장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를 '행위(praxis)'와 '언어(lexis)'의 결합으로 정의했다. 인간이 짐승과 다른 이유는 말을 통해 정의와 불의, 이로움과 해로움을 식별하고 공동체의 선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의 본질은 곧 '말의 품격과 책무'에 있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장소에서, 책임질 수 있는 진실의 말을 건네는 것이 정치적 인격의 핵심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정치는 어떠한가. 정치의 언어는 진실을 탐구하는 도구가 아니라, 상대를 악마화하고 자신의 허물을 위장하는 기술로 퇴화했다. 수많은 정치인이 법과 정의, 상식을 지키는 덕목을 멸시한다. 오히려 법의 허점을 이용하고 불법과 편법을 저지른 후, "정치적 탄압"이라거나 "국민을 위한 선택"이라는 그럴싸한 수사를 붙여 자의적으로 합리화한다.

과거 소크라테스는 제자들과 시민들이 법을 어기라고 권유했을 때조차 자신의 삶 전체로 법의 엄중함과 책임의 무게를 짊어졌다. 제자의 허물조차 스승인 자신의 책임으로 안고 독배를 들었던 그 위대한 성찰의 자세는 찾아볼 수 없다. 오늘날의 지도자들은 자신의 오류를 오롯이 상대 진영이나 시대의 탓으로 돌리는 '아전인수(我田引水)'의 꾼들로 가득 차 있다.

 

이들의 낯 두꺼운 자기 합리화는 사회 전체에 치명적인 아편으로 작용한다. 공정과 정의의 기준이 되어야 할 법이 권력자의 변명거리로 하락할 때, 무고한 백성들은 심각한 아노미(Anomie) 상태에 빠진다. 사회적 약속을 어긴 자가 승승장구하고 지도자의 탈을 쓰는 관성화된 도덕적 마비 현상. 이것이야말로 우리 민주주의가 소모적인 갈등과 불신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근본 이유다.

 

2: 디지털 매체 시대, 정보의 과잉과 이성의 마비

 

왜 현대인들은 이러한 변명의 정치에 쉽게 동화되고 휩쓸리는가? 그 원인의 중요한 한 축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반도체 시대로 넘어오며 폭발한 '정보의 속도와 과잉'에 있다.

오늘날 정보의 전파 속도는 빛의 속도에 버금간다. 제동 장치가 없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뉴스는 또 다른 뉴스로 끊임없이 덮이고, 대중은 깊이 있게 사유할 시간을 빼앗긴다. 어떤 진실이 규명되기도 전에 더 자극적인 변명과 유언비어가 공간을 점령한다.

이러한 정보 과다 유입은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이성(Reason)이란 본래 외부에서 들어오는 자극과 언어를 걸러내는 정밀한 '거름망'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정보의 파도 속에서 대중은 자기 판단의 신뢰성을 잃어버리고, 남이 외치는 선동적 주장에 쉽게 동화되어 버린다. 지조와 신념이 곧게 서 있지 않은 상태에서 정보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이리저리 쏠리는 '그네 현상'이 일상화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는 "귀는 퇴화하고 입만 커지는 불행한 사회"가 되었다. 타인의 고통을 경청하고 진실을 청취하는 귀는 닫혀버렸고, 스스로를 변명하고 상대를 비난하는 입만 비대해졌다. 언론과 정치가 합작하여, 벌이는 독선의 경연장은 의로운 자들의 자취를 감추게 만들고, 이성적 비판의 적정 수위를 깨뜨려 사회 전체를 가벼운 말장난의 장으로 만들고 있다.

 

3: 정신적 중심축의 부재 사상이 없는 현상과 도덕적 아노미

 

우리가 마주한 이 참담한 추세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바로 "한 시대를 풍미할 정신의 줄기, 즉 사상(Ethos)이 사라진 현상"이다.

사회나 공동체가 건강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시대를 관통하는 중심 사상과 윤리적 기둥이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서구식 개인주의의 급격한 유입과 전통적 가정 공동체의 해체 속에서, 우리는 정작 스스로를 바로잡을 인문적 정신의 가치관을 제대로 세우지 못했다. 과도기적 혼란이 수십 년간 이어지면서 도덕적 기준은 모호해졌고, 어른의 정당한 꾸중에도 "당신이 뭔데 간섭하느냐"라는 무지한 여론과 반발이 당당하게 먹혀드는 도덕적 마비가 상식처럼 뿌리내렸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과거 독재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던 세력마저 권력의 중심에 들어선 이후, 자신들이 싸웠던 그 후안무치한 태도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특권으로 환산하며, 현재의 불법과 탈법을 "정의를 위한 과거의 연장선"이라는 가당찮은 논리로 변명한다. 민주주의를 이끌어야 할 주체들이 오히려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사유화하고 불쌍하게 만드는 비극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중심 사상이 비어버린 자리를 차지한 것은 오직 '승자독식의 정치공학'과 '속물근성'뿐이다. 수단을 정당화하며 법과 약속을 무시하는 자들이 승리하는 구조가 공고해질수록, 공동체의 미래를 예언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진실이 숨어버린 암흑의 판도 속에서 언어는 마침내 진정성을 상실하고, 한낱 기만적 소통의 도구로 가벼워지고 있다.

 

4: 교육과 사유의 회복 이성의 거름장치를 가동하라

그렇다면 비대해진 변명의 눈덩이가 지배하는 이 암울한 시대를 우리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그 출발점은 단연 '교육의 본질 회복'과 '실존적 자각 운동'에 있다.

오늘날의 교육은 타인을 딛고 올라서야 하는 과도한 승자독식의 경쟁 체제에 몰두한 나머지,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금도(襟度)와 도덕적 이성을 가르치는 데 실패했다. 이제라도 교육은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거친 변명과 거짓 선동을 걸러낼 수 있는 '이성의 거름장치'를 대중의 마음속에 세워주어야 한다.

 

이성이 가동될 때 비로소 언어의 오염이 멈추고 말의 무게가 되찾아진다. 남이 던져주는 자극적인 언어에 쉽게 휩쓸리지 않고, 스스로 사유하고 판단하는 독립된 개인이 늘어날 때 정치권의 후안무치한 변명 수사학은 비로소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우리는 소크라테스가 보여주었던 인문적 헌신의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 타인의 잘못을 나의 아픔으로 끌어안고, 말에 앞서 삶과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는 위정자와 지식인이 드물어진 이 시대에, 백성 스스로가 깨어나 '의로운 정치가'와 '의로운 언론'을 요구하는 엄중한 주체가 되어야 한다.

 

결론: 침묵의 진실을 되찾아 언어의 무게를 세우는 일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은 만고의 진리다.

오늘도 각종 매스컴에 등장하여 현란한 혀로 자기변명을 늘어놓는 말 장사꾼들의 모습을 볼 때, 우리 가슴에 밀려오는 것은 서글픈 실소와 우울감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우울함에 마냥 주저앉아 입을 닫고 시선으로만 세상을 관조할 수는 없다. 역사의 적정 수위(水位)를 유지해 온 것은 결국 요란한 변명의 말들이 아니라, 그 밑바닥을 지탱해 온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고요하고 단단한 '양심의 평형수'였기 때문이다.

 

언어의 비중이 점차 가벼워지고 진정성이 소멸, 해가는 시대일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언어의 실존적 침묵과 성찰'이다. 말을 줄이고 사유를 깊게 하는 일, 거짓과 변명의 소음 속에서 진실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일, 그리고 내뱉은 한마디의 말에 자신의 삶 전체를 걸 수 있는 책무감을 회복하는 일이야말로 이 병든 사회를 치유하는 유일한 처방이다.

 

시인의 눈으로 세계를 마주하고 사상가의 깊이로 시대를 성찰하자.

입만 커지고 귀가 퇴화하는 암흑의 시대를 건너, 마침내 언어가 변명의 들러리가 아닌 진실의 거울로 되돌아오는 그날까지, 우리는 말의 무게를 바로 세우는 절박한 자각의 길을 멈추지 않아야 할 것이다.

 

2026. 08.

 

대중문화평론가/칼럼니스트/이승섭 시인

[어느 한적한 카페에서]

 

수원본부장 손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