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섭 칼럼

[문학칼럼] 시인(詩人)이라는 칭호의 무게

— ‘집[家]’을 넘어 ‘사람[人]’에 이르는 문학의 도덕률

강해심 취재본부장 2026.08.15 09:11

 

[필자]

Prologue: 언어의 직조 속에 숨은 의문 — 왜 ‘시가(詩家)’가 아니라 ‘시인(詩人)’인가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문학적 칭호 속에는 오랜 세월 축적되어 온 인간관과 미학적 서열, 그리고 각 장르가 요구하는 존재론적 책임이 짙게 배어 있다.

문학의 여러 갈래를 둘러보면 흥미로운 언어적 불균형을 목도하게 된다.

소설을 쓰는 이에게는 ‘소설가(小說家)’라 부르고, 수필을 쓰는 이에게는 ‘수필가(隨筆家)’, 비평이나 희곡을 쓰는 이들에게는 각기 ‘평론가(評論家)’나 ‘극작가(劇作家)’라는 칭호를 부여한다.

이들은 모두 ‘집 가(家)’ 자를 접미사로 품는다.

그러나 오직 시를 쓰는 이에게만큼은 ‘시가(詩家)’라는 말 대신 ‘시인(詩人)’이라는, ‘사람 인(人)’ 자의 직설적이고도 무거운 명칭을 고집스럽게 붙여준다.

사전적 정의를 들여다보아도 시인은 ‘시를 잘 짓는 사람’ 정도로 단순하게 기술되어 있고, 간혹 문맥에 따라 ‘시가(詩家)’라는 표현이 동의어로 혼용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어째서 문학이라는 거대한 한 지붕 아래에서 오직 시에게만 ‘전문가’나 ‘집안의 구성원’을 뜻하는 ‘가(家)’를 넘어 ‘인간 그 자체’를 상징하는 ‘인(人)’의 자리를 내어준 것인가?

단순히 한자 구성상의偶然(우연)인가, 아니면 시라는 장르가 인간 존재의 본질과 직결되어 있다는 오랜 문화적·철학적 합의의 결과인가.

이 의문은 단순히 언어학적 유희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 문단과 시인들이 상실해 버린 ‘시 정신’의 본향을 되찾는 철학적 규명이자, 글을 쓴다는 행위에 내포된 도덕적 엄숙성을 환기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1. ‘[]’사람[]’: 기술적 성취와 존재론적 도덕률의 차이

 

한자어에서 ‘가(家)’는 일정한 영역의 학문이나 기술, 혹은 예공(藝工)의 경지에 이른 전문가 집단을 의미한다.

소설가, 수필가, 건축가, 화가처럼 특정 분야의 기술과 양식을 연마하여 하나의 ‘소우주(家)’를 구축한 이들에게 붙는 명칭이다.

이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장르적 완숙도와 서사적 구성력, 혹은 대상에 대한 정밀한 분석과 묘사력이다.

반면 ‘인(人)’은 기술적 숙련도나 기능적 전문성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날것의 인간성, 즉 도덕적·인격적 주체로서의 삶 자체를 의미한다.

소설은 허구의 인물과 세계를 창조하여 우회적으로 진실을 전달하므로 작가 개인의 인품과 작품 속 서사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아도 미학적 성취를 이룰 수 있다.

그러나 시는 다르다.

시는 허구의 가면을 쓸 수 없다.

시는 시인의 심상과 영혼, 그리고 인품이 가장 정제된 형태로 투영되는 언어의 응축체다.

따라서 시인이라는 칭호에 붙은 ‘인(人)’ 자는, 시가 단순히 언어를 조련하는 ‘제작(Craft)’의 영역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삶과 언어가 하나로 합치되는 ‘도덕적 실천(Action)’의 영역이어야 함을 암묵적으로 명령하고 있다.

즉, 시인은 문학이라는 집안의 수많은 구성원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 인간사의 도덕적 엄숙함과 가치를 가장 최전선에서 고백하고 책임져야 하는 ‘가장(家長)적 존재’이자 ‘인간성 그 자체의 대변자’여야 한다는 뜻이다.

 

2. 동서양 시론(詩論)에 투영된 만듦행함’, 그리고 응축의 정신

 

이러한 명칭의 무게는 동서양의 문학사와 어원학을 종합적으로 고찰해 볼 때 더욱 명확한 근거를 얻는다.

서양의 시론: Poiesis에서 Dichtung으로

서양에서 시를 뜻하는 서구어들, 예컨대 영어의 ‘Poem’이나 ‘Poetry’는 고대 그리스어 ‘포이에시스(Poiesis)’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포이에시스의 본래 의미는 ‘무언가를 만들다(to make)’, ‘행동하다(to do)’라는 자발적 창조 행위였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고대 서양인들에게 시란 단순히 문장을 ‘제작’하는 기교에 그치지 않고, 가치 있는 윤리적 삶을 ‘실행’하는 역동적 행위였다는 사실이다.

이후 독일어권에서는 시를 ‘디히퉁(Dichtung)’이라 불렀는데, 이는 ‘응축하다’, ‘밀도 높게 만들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독일의 실용주의적이고 철학적인 특성이 반영된 이 개념은, 시가 삶의 가장 본질적인 진실만을 고도로 압축한 결정체임을 보여준다.

삶의 진실이 압축되려면 그 바탕이 되는 시인의 삶 자체가 진실해야 함은 당연한 이치가 된다.

동양의 시론: 지(志)와 의(意), 그리고 기(氣)의 통섭

 

동양의 고전 철학 역시 시를 단순한 기술이 아닌 인격과 도덕의 최고 발현으로 보았다.

공자(孔子)는 일찍이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할 수 없고, 정치를 논할 수 없다(불학 시 무이 언)”고 하였다.

공자에게 시는 단순한 문학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바르게 닦아(禮治) 궁극의 덕(德治)에 이르게 하는 정서적·도덕적 도구(工具)였다.

시를 아는 것이 곧 바름(正)을 아는 정치의 출발점이었던 것이다.

동양 시론의 정수인 《시경(詩經)》 대서(大序)에는 다음과 같은 명문이 전한다.

[“시자 지지소지야, 재심위지, 형언위시(詩者 志之所之也 在心爲志 發言爲詩)”]

(시란 마음이 가는 바이다.

마음속에 있으면 '뜻(志)'이 되고, 그것이 언어로 발현되면 '시(詩)'가 된다.)

 

여기서 마음의 지향점인 ‘지(志)’와 마음의 정제된 뜻인 ‘의(意)’는 동일한 존재론적 근원을 지닌다.

고려시대의 대문호 이규보(李奎報)는 그의 저서 《백운소설(白雲小說)》에서 “부시 이의주(夫詩 意爲主)”, 즉 “무릇 시란 '뜻(意)'을 으뜸으로 삼는다”라고 밝히며 기술보다 시인의 고결한 정신과 의지가 시의 본질임을 분명히 했다.

또한 최자(崔滋)는 《보한집(補閒集)》에서 시의 근원을 한 걸음 더 깊이 파헤쳤다.

“시는 '기(氣)'를 위주로 하나, 기는 '성(性)'에서 발하고, '의(意)'는 기에 의거하며, 말은 '정(情)'에서 나오고 정은 곧 의(意)이다.”

이처럼 동양의 전통 시론은 시를 시인의 성품(性), 정서(情), 그리고 인격적 기운(氣)이 사유의 의지(志·意)와 결합하여 터져 나오는 진솔한 고백으로 보았다.

요컨대 시는 인간 심지(心志)의 가장 진실한 표상이자, 시인의 인품과 성정이 단 한 치의 속임수도 없이 연출되는 영혼의 자서전인 것이다.

 

3. 왜 시인은 도덕적 무게를 견뎌야 하는가

 

시인은 허구를 바탕으로 세계를 재구성하는 소설가와 달리, 자신의 내면과 세상을 가장 헐벗은 맨살로 직면하는 사람이다.

시 한 편에는 시인의 일생 동안 축적된 삶의 궤적, 성찰의 깊이, 그리고 인품의 결이 그대로 드러난다.

거짓된 삶을 사는 이가 고결한 시를 쓸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설령 언어의 기교로 잠시 눈가림을 할 수는 있을지언단, 언어의 울림과 진정성까지 흉내 낼 수는 없다.

그러므로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엄격한 도덕률을 부과하는 일이다.

예의와 성찰, 그리고 진실함을 갖추지 못한 언어는 시가 아니라 한낱 '말장난'이나 '지적 유희'에 불과하다.

시인은 존재 그 자체로 시적 진실을 입증해야 하는 운명을 지닌 이들이며, 시인이라는 칭호는 곧 “당신의 삶은 당신이 쓰는 시만큼 진실한가?”라는 엄중한 질문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4. 오늘의 문단을 바라보는 참담함: 상실된 시 정신과 정치적 난장(亂場)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 시단과 문단의 현실은 시인이라는 명칭이 지닌 숭고한 도덕적 무게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또다시 문단의 선거철이 다가온 모양이다.

이쪽저쪽에서 날아드는 이메일과 메시지 속에는 자신을 자랑하는 온갖 과장된 프로필과, 세력을 형성하여 줄을 세우려는 정치적 계산만이 가득하다.

누구 편에 서야 한다느니, 내가 이사장이 되어야 한다느니 하며 주고받는 말 폭탄과 언어의 비열함은, 문학을 향했던 순수한 열정을 처참하게 짓밟는다.

가슴과 정신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기득권의 자리를 탐하며 지엽적이고 말단적인 일상의 에피소드로 서로를 희롱하고 모함하는 모습에 조마조마한 우려와 깊은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사람’이 되라고 붙여준 ‘시인’이라는 칭호를 가슴에 달고서, 어찌 가장 비인간적인 정치공작과 명예욕에 눈이 멀어 문단을 난장판으로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시 정신을 잃어버린 시인은 이미 시인이 아니며, 도덕적 가치를 상실한 문학 단체는 한낱 사적 욕망의 집합체로 전락할 뿐이다.

 

5. Epilogue: 다시, ‘사람[人]’의 자리로 돌아가며

 

문학은 인간사의 가장 소중한 희로애락과 영혼의 상처를 보듬는 그릇이다.

그중에서도 시는 인간의 마음을 정화하고 도덕적 바름을 지켜내는 마지막 보루여야 한다.

시단과 문단에 필요한 것은 화려한 프로필이나 권력의 자리가 아니다.

스스로를 낮추며 타인과 시대를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숭고한 정신이다.

시인이 먼저 ‘집[家]’이라는 기술적·문파적 틀을 깨고 나와, 참된 ‘사람[人]’으로서의 도덕적 원형을 회복할 때 비로소 우리 문단도 하나로 뭉쳐 세상에 진정한 울림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문단이 모든 사리사욕을 내려놓고,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본분과 순수한 시 정신으로 다시 하나 되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시인이 시인다워지고, 문단이 문단다워지는 그날을 간절히 소원하며, 이 비통하고도 간절한 고언(苦言)의 붓을 놓는다.

 

2026. 08.

 

대중문화평론가/칼럼니스트/이승섭

 

[무전 여행 중]

 

강해심 취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