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문학의 영원한 화두, "독자는 무엇을 원하는가?″
강단이나 문학회에서 젊은 지망생들과 신규 작가들을 만날 때마다 빠짐없이 받는 질문이 있다."선생님, 독자가 원하는 글, 독자의 가슴을 뒤흔드는 글은 대체 어떻게 써야 합니까?"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잠시 말을 잊고 깊은 침묵에 빠지곤 한다. 그것은 단순한 기교나 테크닉의 문제가 아니라, 글을 쓰는 자의 생애 전체를 걸어야만 비로소 희미한 윤곽을 드러내는 '문학의 근본'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독자가 열망하는 글에는 단 하나의 정답이나 만능의 공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누군가 독자를 사로잡는 손쉬운 공식을 가르쳐주겠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문학을 상업적 계산으로 치환하는 오만이거나 허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공식은 없을지언정 '원칙'과 '방향'은 분명히 존재한다. 독자는 타인의 화려한 자랑거리나 텅 빈 언어의 유희를 소비하기 위해 책을 펼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고단한 삶을 위로받고, 잊고 있던 영혼의 순수함을 되찾으며, 비틀거리는 삶의 길목에서 참된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작가의 언어에 귀를 기울인다.
문학 작가란 과연 독자에게 무엇이어야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써야만 그들의 가슴속 깊은 곳에 스러지지 않는 참된 감동과 파문을 남길 수 있는가. 평생을 언어의 테두리 안에서 절차탁마(切磋琢磨)하며 고뇌해 온 나의 작은 경험과 성찰을 바탕으로, 이제 막 문학의 험난한 바다로 노를 저어 나가는 신진 작가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몇 가지 문학적 소명을 나눈다.
1. 수사학(修辭學)의 감옥을 깨뜨리고 '진정성(Authenticity)'으로 승부하라
신규 작가들이 범하기 가장 쉬운 첫 번째 오류는 '글을 잘 써야겠다'는 과도한 의욕이다. 그 의욕은 종종 현란한 미사여구와 난해한 암호 같은 수사학, 그리고 인위적으로 꾸며낸 서사로 나타난다. 사전에 있는 온갖 거창한 단어들을 끌어 모아 문장을 화려하게 치장하면 자신의 글이 깊어진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독자의 감각은 작가의 생각보다 훨씬 정교하고 예리하다. 화려한 수사의 위장 뒤에 숨겨진 알맹이 없는 허무함, 가짜 감정과 위선은 단 한 줄의 문장에서도 금세 폭로되고 만다. 글에 기교가 앞서고 진실이 빠져 있으면, 독자는 그 글에서 서늘한 기운만을 느낄 뿐 결코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
독자가 진정으로 열망하는 글은 '멋진 글'이 아니라 '진실한 글'이다.작가 자신의 가장 연약한 고백, 스스로의 아픔과 부끄러움을 마주하는 솔직함, 그리고 삶의 진흙탕 속에서 건져 올린 진솔한 눈물이 담겨 있을 때 독자는 비로소 무장을 해제한다. 문학에서의 진정성이란 단지 사실만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느낀 감정에 대해 단 한 치의 거짓이나 위장도 보태지 않는 정직함이다.
만해 한용운의 시나 육사 이육사의 시를 보라. 그들의 문장에 동원된 언어가 단순히 화려해서 오늘날까지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울리는가? 아니다. 자신의 목숨과 영혼을 언어 속에 온전히 불어넣은 '진정성의 무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신진 작가들이여, 언어를 꾸미려 애쓰기 전에 먼저 자신의 내면을 정직하게 들여다보라. 독자의 가슴을 울리는 최초의 화살은 언제나 작가 자신의 정직한 영혼에서 출발한다.
2. '자기 몰입'을 넘어 타인을 향한 '깊은 공감(Empathy)'으로 나아가라
문학의 시작은 '나'라는 개인의 내면을 탐구하는 일이지만, 문학의 완성은 '타인'이라는 거대한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일이다. 많은 초심자들이 글을 쓸 때 자신이 느낀 감정과 격정에 지나치게 몰입한 나머지, 독자를 소외시키는 실수를 저지른다. 자신이 얼마나 슬픈지, 자신이 얼마나 억울하고 고통스러운지를 일기장처럼 늘어놓는 글은 작가 자신에게는 카타르시스가 될지언정, 독자에게는 고역이 될 뿐이다.
독자가 원하고 감동하는 글은 작가 개인의 사적인 경험이 '인류 보편의 공감대'로 승화된 글이다. 작가의 아픔이 독자 자신의 아픔으로 읽히고, 작가가 흘린 눈물이 독자가 지나온 삶의 슬픔을 씻어주는 기적이 일어날 때, 문학은 비로소 그 거룩한 소임을 다한다.
이를 위해 작가는 나라는 갇힌 틀을 깨고 나와 세상을 향해 타자의 시선을 가져야 한다. 길가에 버려진 작은 잡초 하나, 지하철역 구석에서 고개를 숙인 고단한 가장의 어깨, 상처 입은 영혼들의 침묵 속 탄식에 깊이 귀를 기울여라. 타인의 비극을 자신의 아픔으로 끌어안는 숭고한 공감 능력이 없이는 결코 독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작가는 세상을 향해 열린 가장 예민한 안테나여야 한다. 독자는 자신들이 차마 언어화하지 못했던 삶의 고통과 기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미묘한 감정들을 작가가 대리하여 정교한 언어로 벼려내 주기를 열망한다. 타인의 삶을 깊이 사랑하고 이해하려는 따스한 시선, 그것이야말로 독자를 끌어당기는 문학의 강력한 자력(磁力)이다.
3.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는 '문학적 벼림'과 통찰력
독자들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본질적인 이유는 '새로운 눈'을 얻기 위함이다. 매일 반복되는 평범하고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 속에서 독자들은 삶의 의미를 상실하고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 이때 작가는 익숙한 풍경 속에서 낯선 진실을 발견해 내는 '문학적 벼림'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남들과 똑같이 보고,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서술하는 글은 독자에게 어떠한 지적·감성적 자극도 주지 못한다. 모두가 무심코 지나치는 평범한 사물과 사건 속에서 삶의 깊은 이치와 비유를 건져 올리는 통찰력, 그것이 작가의 존재 이유다.
이처럼 작가의 깊은 성찰을 거쳐 재해석된 세상은 독자에게 커다란 지적 분출과 감동을 안겨준다. 독자는 작가의 글을 통해 "아, 내가 무심코 지나쳤던 내 삶의 일상이 이렇게 아름답고 숭고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신규 작가들은 절대로 조급하게 펜을 들지 말아야 한다. 하나의 현상을 깊이 관조하고, 사물의 본질이 드러날 때까지 오랫동안 묵상하는 '기다림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작가의 안목이 깊어질수록, 그 글이 독자에게 주는 울림의 깊이 또한 비례하여 깊어지는 법이다.
4. '여백의 미(美)'와 절제 — 독자가 들어올 자리를 비워두라
글을 쓸 때 모든 것을 다 설명하려는 조급함은 글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주요 원인이다. 주제를 독자의 머릿속에 강제로 주입하려 들거나, 감정을 지나치게 과잉 발산하여 독자의 몫까지 작가가 다 울어버리는 글은 깊은 여운을 남기지 못한다.
동양화의 핵심이 '여백'에 있듯, 위대한 문학 작품의 힘은 '절제'와 '비움'에서 나온다. 작가란 자신이 하고 싶은 모든 말을 쏟아붓는 사람이 아니라, 꼭 해야 할 최소한의 언어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조용히 비워둘 줄 아는 '절제의 장인(匠人)'이어야 한다.
독자가 감동을, 받는 결정적인 순간은 작가가 모든 것을 서술했을 때가 아니다. 오히려 작가가 침묵한 그 '여백의 공간'으로 독자 자신의 삶과 경험, 상상력이 들어와 작가의 글과 상호작용을 일으킬 때다. 작가는 판을 깔아주는 사람이며, 그 판 위에서 작품을 완성하는 것은 결국 독자의, 몫이다.
시적 절제와 압축, 서사에서의 대담한 생략은 글에 강력한 긴장감과 깊이를 부여한다. 독자에게 생각할 여지를 남겨라. 스스로 느끼고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여백을 선사하라. 작가의 언어가 절제되면 될수록, 독자의 가슴속에서 피어나는 감동의 울림은 더욱 커지게 된다.
5. 문학의 근본은 '작가의 인격(人格)'에 뿌리를 둔다
글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다.문학의 기술이나 문장력은 꾸준한 훈련과 독서, 절차탁마의 과정을 통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그러나 글에 담기는 궁극의 깊이와 격조, 그 글이 품고 있는 영혼의 온도는 결코 테크닉으로 조작할 수 없다. 그것은 오직 글을 쓰는 작가의 인격과 삶의 태도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의 mínimos의 품격조차 갖추지 못한 자가 쓰는 글, 타인을 업신여기고 등단 연차나 명찰의 크기만을 자랑하며 오만에 빠진 자가 쓰는 글은 아무리 화려한 문장으로 포장한다 한들 독자의 가슴에 참된 울림을 주지 못한다. 오만한 글에는 차가운 냄새가 나고, 겸손하고 따뜻한 영혼이 담긴 글에는 사람을 살리는 향기가 난다.
작가의 인격이란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가식적인 허세나 거들먹거림이 아니다.
이러한 인격적 바탕이 다져질 때, 비로소 그 작가의 언어는 세상을 치유하고 타인의 영혼을 보듬어 안는 '생명력'을 얻게 된다. 글과 삶이 따로 놀지 않고, 문장과 인격이 하나로 일치하는 작가—독자들은 바로 그러한 작가의 글에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내어주며 무한한 신뢰와 존경을 보낸다.
6. 에필로그: 신진 작가들에게 바치는 당부 — 순수의 깃발을 내리지 마라
글을 쓴다는 것은 외롭고 고독한 길이다. 밤을 지새우며 언어의 한계 앞에서 괴로워하고, 때로는 빈 종이 앞에서 자신의 빈약함을 자책하는 날들이 수없이 반복될 것이다. 혹여 남들보다 등단이 늦어지거나, 세상의 주목을 즉각 받지 못한다 해서 조급해하거나 자만심과 자괴감의 덫에 걸리지 말기를 바란다. 몇 년도에 등단했는가 하는 명찰은 종이 조각에 불과하며, 문학의 길에는 영원한 선배도 후배도 없이 오직 끊임없이 정진하는 '원로(學徒)'만이 존재할 뿐이다.
독자가 원하는 글을 쓰고 싶다면, 먼저 독자를 진심으로 사랑하라. 당신이 쓰는 단 한 줄의 문장이 고단한 밤을 지새우는 누군가에게 작은 촛불이 되기를, 절망의 끝에 선 누군가에게 다시 살아갈 온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펜을 들어라.
문학의 근본은 거창한 구호나 화려한 명성에 있지 않다.내 주변의 소중한 이들에게 따뜻한 온기를 전하고, 내가 발딛고 있는 현실을 진실하게 적응하며, 글과 인격을 하나로 구가(謳歌)하는 순수한 열정 속에 문학의 본질이 존재한다.
세상이 당신을 조금 어리석거나 미련한 작가라 부른들 어떠한가.수사학의 위장을 벗어던지고, 타인을 향한 깊은 공감과 겸손한 인격의 옷을 입고, 당신만의 순수한 깃발을 높이 들어라. 그렇게 절차탁마하며 써 내려간 당신의 글은, 마침내 독자의 가슴속 깊은 곳에 스러지지 않는 거대한 영혼의 폭포가 되어 영원히 피어날 것이다.
2026. 08.
[대중문화평론가/칼럼니스트/이승섭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