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노한 2030 '호민(豪民)'의 경고
조국을 사랑한다는 것은 때론 진부(陳腐)한 수사학일 수도 있고, 가슴 뜨거운 맹목적 사랑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진부하다는 핀잔 속에는 이미 누구나 인정하는 '당연한 진리'가 숨 쉬고 있기에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말이다. 우리가 세상만사의 신산(辛酸)함을 겪고 난 뒤, 동서양을 막론하고 결국 고향을 향해 시선을 돌리는 수구초심(首丘初心)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다. 이는 아담과 이브의 시작에서부터, 아니 인간이 태어난 최초의 공기와 산천을 뇌리에 각인하고 평생을 안도하며 살아가는 생태적이고도 유전적인 본능이다.
유아기 때 맛본 어머니의 음식 맛을 평생 잊지 못하듯, 부모에 대한 애증이 교차할지라도 결국 핏줄의 그리움으로 회귀하는 것처럼, 조국이라는 이름 역시 우리 영혼의 밑바탕에 안정감을 주는 가장 완벽한 상징이다. 그렇기에 자기가 태어난 나라를 진심으로 위하고 사랑하는 애국(愛國)은 거창한 이념 이전의 순리요, 보편적 정서다. 부모를 거역하고 조국을 배신하는 이율배반이 칭송받을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이 지켜야 할 정상적인 이해의 도를 넘어선 패륜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금의 한국 정치를 돌아보라. 이 보편적인 상식과 애국의 정서가 과연 위정자들에게 존재하는가. 백성의 안녕을 최우선으로 삼고 좌중(座中)하며 신중해야 할 정치꾼들은 오직 권력 탐욕에 눈이 멀어 끼리끼리 작당하는 일로 영일(營日)이 없다. 사사건건 반대를 위한 반대만 일삼으며, 여당일 때의 잣대와 야당일 때의 잣대가 손바닥 뒤집히듯 바뀐다. 자신들의 이익과 패거리가 아니면 가차 없이 난도질하는 그들의 흔들리는 잣대는 시정잡배와 다를 바가 없다. 개인 간에 돈을 떼먹는 사기꾼보다, 국민을 상대로 말을 바꾸며 국가의 근간에 악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정치꾼들의 죄질이 훨씬 치명적이고 무겁다. 정치는 항상 바르게 다스려야 한다는 '정자정(政者正)'의 좌우명을 망각한 자들이 어찌 지도자요, 지식인이라 칭할 수 있겠는가.
더욱 개탄스러운 것은 이 낡은 패거리 정치에 기생하는 거대 기득권 카르텔의 민낯이다. 전 정권의 비호 아래 귀족노조라 불리며 대대를 이어 취업을 세습하고 고액 연봉을 누리는 민노총과 전교조의 행태를 보라. 그들은 정부 위에 군림하려 파업을 일삼고, 국가 경제의 근간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탄력근무제조차 거부하며 오직 자신들의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욕망만을 추구한다. 코로나19의 터널을 지나며 죽지 못해 하루하루를 버티다 극단적 선택까지 내몰렸던 자영업자들의 피눈물이 그들 눈에는 정녕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투잡, 쓰리잡을 뛰며 발버둥 쳐도 번듯한 일자리 하나 구하지 못해 좌절하는 젊은이들의 아우성을 짓밟고, 대체 누구를 위한 집단행동을 한단 말인가.
이러한 참담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마침내 분노한 2030 세대의 거센 반격, 즉 새로운 '호민(豪民)'의 탄생을 목도하고 있다. 과거 허균은 『성소부부고』의 「호민론」에서 백성을 세 부류로 나누었다. 묵묵히 법을 지키며 살아가는 항민(恒民), 포악한 관리에게 시달리며 원망만 하는 원민(怨民)은 두렵지 않으나, 남모르게 딴마음을 품고 틈을 엿보다가 시대의 모순이 극에 달했을 때 분연히 일어나는 백성, 즉 '호민'을 가장 두려워해야 한다고 갈파했다.
평소에는 침묵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날카로운 심판을 내리는 영민한 백성, 이것이 바로 이 나라를 지켜온 진정한 호민의 정신이며 민주주의의 원리다. 지금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2030 청년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라. 그들은 "우파도 좌파도 없다"고 외친다. 낡은 이념의 허울을 벗어던지고 "우리의 잃어버린 참정권, 생존권을 되찾겠다"며 기득권의 심장부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
이 무서운 호민들의 분노, 청년들의 절박한 외침을 지켜보며 기성세대인 우리는 뼈저린 교훈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세상에 거저 주어지는 평화는 없으며, 우리가 공기처럼 누리고 있는 '자유민주주의'라는 고귀한 가치 역시 결코 공짜로 얻어지지 않는다는 냉엄한 진리다.
우리의 현대사를 돌이켜 보라. 엄혹했던 시대, 무식하지만 용감했던 지도자, 자신의 욕망을 채운 교활한 위정자, 서민을 자처했던 이들까지 수많은 대통령이 명멸했지만, 이 나라를 이만큼 잘살게 만든 것은 결코 그들의 탁월한 정치력 덕분만은 아니었다. 굴곡진 험로마다 묵묵히 땀 흘려 일하고, 세금을 성실히 납부하며, 경제가 파탄 났을 때 장롱 속의 돌반지를 아낌없이 내어놓았던 위대한 국민들의 컨센서스가 이룩한 피땀 어린 업적이다. 국가가 누란의 위기에 처할 때마다 십자가를 짊어진 것은 언제나 이름 없는 민초들이었다.
이제 시대의 시곗바늘을 뒤로 돌리려는 부끄러운 기득권 세력과 패거리 정치는 청산되어야 한다. 우리 기성세대는 낡은 진영 논리를 과감히 던져버리고, 생존과 정의를 위해 일어선 저 청년들의 든든한 방패가 되어주어야 시대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다. 패거리 정치꾼들과 귀족노조는 각성하고, 국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 올인해도 모자랄 판에 더 이상 찬물과 고춧가루를 뿌려서는 안 된다.
자유는 행동하며 쟁취하는 자의 몫이다. 거리의 폭력적 선동 정치와 집단 이기주의를 접고, 상생과 공생의 협치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튼튼한 경제를 바탕으로 한 진정한 통일의 역사가 그 찬란한 문을 열어젖힐 것이다. 패거리 정치의 종식을 선언하며 들고일어난 작금의 2030 세대야말로 이 나라의 진정한 주인이자, 시대를 일깨우는 위대한 호민이다. 백성은 정치를 훌쩍 앞서가고 있다. 정치가들이여, 언제까지 백성의 뒤통수만 바라보며 끌려갈 것인가. 진정으로 두렵고 두려워할 일이다.
2026. 06.
대중문화평론가/칼럼니스트/이승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