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 시평

【시(詩)를 향한 은유의 서곡(序曲)】

『아름다운 시간 여행 — 언어의 여백과 생명의 울림』

이분희 취재본부장 2026.10.28 08:54

 

 

[필자]

 

1. 소요(逍遙)의 여정, 삶이라는 미지의 길

 

인간의 삶이란 본질적으로 아득한 길을 따라 떠나는 하나의 여행이다.

여행에는 두 가지 길의 형태가 존재한다. 뚜렷한 이정표와 목적지를 두고 일상을 확인하며 나아가는 지상의 여행이 있는가 하면, 목적지조차 가늠할 수 없는 미지의 시공간을 향해 무작정 발걸음을 내딛는 어둠 속의 여행이 있다. 전자가 목적지의 방향을 감각할 수 있는 명징한 여정이라면, 후자는 확고한 장소의 보장 없이 오로지 자신의 내면과 맞닥뜨려야 하는 근원적 소요(逍遙)의 길이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걸어가는 생(生)의 길은 단 한 순간도 평탄하지 않다. 인간은 무수한 굴곡과 시련의 굽이를 지나며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찾아 나서는, 이른바 ‘끝없는 방황’을 운명적 여정(旅程)으로 부여받는다. 누구도 이 정해진 굴레를 피할 수 없기에, 삶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소요이자 숭고한 여행이다.

시는 바로 이러한 삶의 길 위에서 피어나는 가장 깊은 언어적 고백이다. 때로는 생의 아름다움을 청아하게 노래하기도 하고, 때로는 악착(齷齪)한 삶의 질곡을 견뎌내는 인내의 단조로 나아갈 때도 있으며, 더러는 기쁨과 행복이 고조된 환희의 가락을 물들인다. 어느 길을 선택하든 시인은 각자가 지닌 삶의 한계를 직시하며, 그 고뇌를 언어로 포착하는 일에 온 정신을 집중한다.

시인마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정형화된 규격으로 존재할 수는 없다. 시인은 저마다의 독특한 개성과 자아의 결을 바탕으로 ‘시화(詩化)’의 길을 걸어가기에, 그들이 낳은 표현의 맛과 향기는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시를 읽고 매료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시인이 고유하게 완성해 낸 맛깔스러운 개성을 감상하며, 저마다 다른 세계를 향해 뻗어 있는 지향(志向)에 깊은 문학적 감동을, 느끼는 것이다.

 

살아가는 환경의 결 또한 시인의 정서에 결정적인 족적을 남긴다. 복잡다단한 도시에 거주하는 이의 정서와 차분한 전원에서 삶을 일구는 이의 정서가 시로 구현될 때, 그 언어적 표정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환경이 시인의 감성에 흡수되고 다시 시적 언어로 승화되는 과정에서 표현의 묘미가 다르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자연은 인간의 본질적 모태이며, 이 자연을 어떻게 자신의, 몸으로 육화(肉化)하여 표현하는가에 따라 시적 기저가 달라진다. 도심의 메마른 환경이 주로 냉철하고 각진 상상력의 기저를 이룬다면, 전원의 물기 머금은 풍경은 생명력 넘치는 비옥한 상상력을 흡수케 한다. 그렇다면 오늘을 살아가며 시를 쓰고 노래하는 필자의 시는 과연 어떠한 결을 품고 어떠한 정서의 지평을 바라보고 있는가. 깊은 사유와 의문이 꼬리를 무는 지점이다.

 

2. 은유의 길 건너기 — 여백과 함축의 미학

 

시(詩)는 본질적으로 비유(比喻)와 은유(隱喩)의 예술이다. 산문이 사건과 의식을 길게 늘이고 펼치는 서술(敍述)의 기법을 채택한다면, 시는 확연히 다른 방향을 지향한다. 시의 핵심 명제는 응축(凝縮)이라는 ‘줄임의 미학’에 존재한다. 수식의 군말을 감히 쳐내고, 오로지 줄기와 뿌리만을 남겨놓는 언어적 도약이야말로 시적 절제이다. 이미지의 뼈대를 어떻게 산뜻하고 투명하게 건져 올릴 것인가에 시인의 재능과 예술적 성패가 매여 있다. 늘이고 펼치는 일이 산문의 몫이라면, 비워내고 축약하여 함축(含蓄)의 여백을 만드는 일이야말로 시가 지닌 최고의 미덕이다.

이는 동양화의 여백이 갖는 미학과 통한다. 서양화가 캔버스 위에 색을 칠하고 또 덧칠하는 채움과 정치(精緻)한 구성을 통해 화가의 의식을 정밀히 표현하는 예술이라면, 동양화나 시는 채움보다는 비움, 즉 여백과 함축을 방도(方途)로 삼아 독자에게 묵직한 의미의 여운을 전달하는 고급스러운 여유를 지닌다. 그렇기에 시를 짓는 일은 산문의 그것보다 한층 까다롭고 지난(至難)한 기교를 요구하며, 그 첫 번째 문을 열어젖히는 열쇠가 바로 은유와 비유의 도구이다.

 

시적 전개에는 리듬, 이미지, 비유, 상징, 인유, 패러디 등 다채로운 구조적 내포(內包)가 동원된다. 이러한 장치들이 내면에서 풍성하게 일렁일 때 시적 언어는 비로소 지평을 넓히고 고급화의 길로 나아간다. 시인은 결국 자기 정신의 정제와 고급화를 지향하는 예술적 도정 위에서 language-use(언어 운용)의 응축을 가장 먼저 단련해야 한다. 생동감 넘치면서도 온화한 내면의 기품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언어적 감각이야말로 독자에게 비할 데 없는 신선함을 안겨준다.

 

겨울과 봄 사이 봄 눈 녹듯

메마른 둥지 헤치고 이곳 저곳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간지러움 긁으면 긁을수록 더욱 가려운,

아으, 미치고 환장할 가려움이여

 

— 〈겨울과 봄 사이〉 중에서

 

겨울이라는 계절은 본래 삭막함과 침묵, 사물들이 잠들어 있는 정적인 이미지로 단정되기 쉽다. 그러나 어둠과 차가움의 겨울을 지나 여명의 봄날로 다가갈수록, 생명체들은 "이곳저곳"에서 스멀거리며 고개를 든다. 시인은 그 경이로운 생명의 탄생을 "간지러움"이라는 지극히 생생한 감각으로 부추겨낸다. 이러한 표현의 묘미는 직관적이고 리얼리티한 여운을 대동하며 시가 갖는 여백의 미학을 극대화한다.

특히 위 시에서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마무리의 탄식이다. "아으, 미치고 환장할 가려움"이라는 시어는 일견 정제되지 않은 비시적(非詩的) 언어로 보일 수 있으나, 문맥적 적절성을 기준 삼는다면 이는 시 전체의 숨통을 트이게 하는 결정적 화룡점정(畫龍點睛)의 역할을, 수행한다.

독목(禿木)의 앙상한 가지와 겨울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뚫고, 부스럼딱지처럼 여기저기서 피어나는 "선연한 눈빛"의 생명체들. 그것을 바라보는 시인의 가슴에는 솟구치는 생명에 대한 찬탄과 환희가 벅차오르는 것이다.

자연과 생명의 동역학을 포착한 또 다른 예시를 살펴본다.

 

앞산이 서운산이 각혈하는 어느 소리꾼의

득음인 양 긴 여운을 담아 오늘 아침 초대장을 보내 왔다

그리고 산을 안고 오는 각혈을 품으란다.

웅장한 소리꾼의 각혈을 그리란다.

 

— 〈가을 풍경〉 전문

 

가을의 깊은 수렁으로 접어드는 단풍과 산야의 풍광을 "각혈하는 소리꾼"으로 은유한 대목은 대단히 강력하며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소리꾼의 '각혈'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오랫동안 한과 세월을 삭이며 수련해 온 고통의 흔적이자, 마침내 도달한 '득음(得音)'의 결정체이다.

시인은 가을 산이 불타오르는 단풍의 장관을 소리꾼의 피 토하는 득음의 경지로 환치(換置)시킴으로써, 독자에게 단순한 풍경 감상을 넘어선 숭고한 생명의 고통과 완성을 상상하게 만든다. 자연이 보낸 초대장을 받아 들고 소리꾼의 각혈을 직접 화폭에 담아내듯 시로 그려내는 과정은, 시가 지닌 함축의 무궁한 깊이와 선명한 은유의 힘을 유감없이 증명해 보인다.

 

3. 의미의 전개와 상상력의 은근미(隱謹美)

 

세상의 모든 사물은 고유한 존재 이유와 의미를 지닌 채 인간의 의식과 관계를 맺는다. 소설이 사건의 서사적 구조를 통해 인물과 세계의 얽힘을 그려낸다면, 시는 정교한 이미지와 은유를 통해 사물의 숨결을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생동감의 예술이다.

시에서 '의미'는 결코 겉으로 드러나 깃발을 흔드는 직접적인 방식이어야 해서는 안 된다. 시의 의미는 은근히 감추고 숙이면서 사물의 속살을 수줍게 드러내는 ‘은근미(隱謹美)’를 품어야 한다. 이는 우회하는 듯하지만, 결코 멀리 돌아가는 길이 아니며, 사물과 아주 가까운 곳에서 은유라는 화려하면서도 고담(枯淡)한 의상(衣裳)을 입혀 깊은 정서적 울림을 자극하는 과정이다.

시어(詩語)를 선택하는 일의 어려움은 정해진 공식이 없다는 데 있다. 오로지 시인의 맑은 뇌수(腦髓)와 미적 경험, 그리고 벼려진 상상력이 결합할 때 비로소 신선한 의미가 발원한다. 의미란 독자에게 감동을 전달하는 일차적인 관문이며, 이 관문을 통과하며 뿜어져 나오는 신선한 기운은 마침내 독자의 감동과 눈선(淚腺)을 깊게 자극한다.

 

지금 온몸으로 밤을 노래하는 너

홀연히 들어 날 아득한 세상

별 자리로 이끌며 새벽을 낳는가

왜 그리 호젓한 음악을 틀어 놓는가

무엇이 안타까워 무엇이 외로워

이슬 맞으며 노래를 부르는 너

함께 노래를 부르자꾸나

 

— 〈한 밤의 귀뚜라미 노래〉 중에서

 

이 구절에서 핵심적인 미학을 이루는 시어는 바로 "온몸으로"이다. 작은 귀뚜라미 한 마리가 온몸을 떨며 밤을 노래하는 고통과 몰입의 과정을 지나칠 때, 비로소 "새벽을, 낳는가"라는 탄성이 터져 나온다. 고진감래(苦盡甘來)의 내면화이다.

이 구절에는 시인의 정서적 균형감과 미학적 안정성이 돋보인다. 예술에 있어 미(美)란 사물의 개념과 본질에 적합한 형태를 획득할 때 비로소 ‘현실화된 이상(理想)’으로 우뚝 서게 된다. 자연의 물상에 시인의 내면을 대입하여 가장 적절한 은유로 재현해 낼 때, 시인은 사물 속에서 또 다른 자기자신의 본모습을 발견하게 독자 역시 그 깨달음의 공간에서 깊은 감동을 공유받는다.

 

4. 갈증과 물의 변증법 — 어둠을 뚫고 피어나는 빛

 

시는 자연의 순리와 등가(等價)를 이룰 때 비로소 타당한 합리성을 얻고, 세상의 진리와 상통하게 된다. 여기서 합리란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적 상식이며, 인간이 오랜 시간 축적해 온 도덕적 기준과 맥을 같이 한다. 다만 이 기준은 고정불변의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시대의 흐름과 삶의 궤적에 따라 유연하게 움직이는 가변적 진리여야 한다. 인간 존재 자체가 절대적인 논리에 갇힌 수동적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에는 늘 ‘갈증’이 존재한다. 갈증이 유발될 때 물을 갈구하게 되고, 목마름이 해소되면 인간은 이내 또 다른 유토피아와 새로운 차원의 욕망을 향해 나아간다. 역사와 예술은 이러한 갈증과 해소의 끊임없는 변증법적 이행 속에서 발전해 왔다.

그렇다면 급변하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시인에게 ‘갈증’이란 무엇인가. 살아있기에 피어나는 생명에 대한 요구이자, 더 높은 본질을 열망하는 자아의 고백이다. 생체 내부에 순환의 기운이 멈추거나 결핍이 발생할 때 갈증의 농도는 극에 달하듯, 시인의 내면 역시 영혼의 결핍을 느낄 때 강렬한 시적 갈증을 일으킨다.

 

어둠이 태풍처럼 몰려와 거대한 몸짓으로

위협하지만 지극히 작은 촛불 하나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 빛의 그림자일 뿐

헛것에 넋 나가 탕진한 젊음이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는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를

화두처럼 붙잡고 습한 음지

굼벵이처럼 붙잡고 새어 나오는

신음소리 숨죽여 견뎌온 어둠의 시간들

— 닿지 못할 먼

별 꿈꾸며

뜬눈으로 밤새는 목마른 동물이다.

 

— 〈어둠의 빛〉 중에서

 

시인은 어둠을 단지 절망이나 허무로만 규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둠의 빛을 잉태하는 모태이자 또 다른 진전을 예약하는 부화의 공간으로 본다. "지극히 작은 촛불 하나"에 거대한 어둠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듯, 인간의 삶은 어둠으로 둘러싸여 있기에 비로소 빛을 향한 고귀한 열망을 품게 된다.

동굴과도 같은 "습한 음지"에서 새어 나오는 신음소리를 참아내며, 닿지 못할 먼 별을 꿈꾸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목마른 동물". 시인은 갈증의 늪 한가운데서 절망을 뚫고 탈출하려는 강렬한 의지의 물살을 일으킨다. 얼어붙은 겨울 강물 밑바닥에서 생명의 소리가 환생하여 마침내 찬란한 봄(春)을 암시하듯, 시인의 고독한 갈증은 마침내 빛과 생명의 환희로 승화된다.

 

5. 에필로그 — 자연의 청량함과 생동하는 은유의 숲

 

시(詩)란 결국 시인이 지닌 감수성의 섬세한 표정이자 온화하고 질박(質朴)한 순수 정서의 결정체이다. 시인이 어떤 정서를 주류로 삼고 삶을 다스려 왔는가는 그가 낳은 시의 표정을 통해 투명하게 드러난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시인의 정서가 청아함을 유지할 수 있는 까닭은 언어의 이면에 맑고 청량한 자연의 요소가 온전히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생동하는 은유의 숲속을 거니는 신선함, 어둠을 뚫고 빛을 추구하는 생명의 약동, 그리고 목마름을 적셔주는 물과 같은 자연의 서정성이 모여 시심(詩心)의 흥취(興趣)를 고조시킨다.

특히 자연의 정경 속에 '소리(음향)'의 감각을 절묘하게 개입시켜 시적 깊이를 더하는 작업은 필자만의 독특한 득의(得意)로움이자 시문학이 지닌 참된 가치일 것이다. 아름다운 시간 여행의 길목에서, 오늘 이 글을 접하는 모든 독자가 생동하는 은유의 숲에 거하며 자연과 생명이 피워내는 고귀한 언어의 울림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6. 10.

 

대중문화평론가/칼럼니스트/이승섭

[(장승포항 야간경관]

 

이분희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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