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 시평

[평론] 비스듬히 견디는 자의 묵시록, 혹은 상실을 깁는 침묵의 서사

— 이성두 시집 『별꽃은 피고 지고』 작품론

이분희 취재본부장 2026.10.22 10:57

 

시인 이성두 <5번째 시집>— 이성두 시집 『별꽃은 피고 지고』 작품론

1. 결핍의 자리에서 길어 올린 언어들

 

시는 언제나 결핍의 자리에서 피어난다. 존재의 균열을 들여다보는 일은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의 심연을 외면하지 않고 기꺼이 감내할 때 비로소 시적 진실은 모습을 드러낸다. 이성두의 다섯 번째 시집 『별꽃은 피고 지고』는 삶의 가장 깊고 어두운 동굴 속에서 길어 올린 서늘하고도 뜨거운 고백록이다. 화려한 수사나 과장된 슬픔으로 독자의 감정을 선동하지 않는다. 대신, 무너져 내리는 일상 속에서 침묵으로 시간을 깁고, 상실의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구원의 미학을 건져 올리는가를 묵묵히 증명해 낸다.

 

밤하늘의 별을 동경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땅에 바짝 엎드려 피어나는 작고 초라한 ‘별꽃’을 들여다보는 일은 철저한 자기 낮춤과 삶에 대한 지난한 애정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 시집을 관통하는 정조는 바로 이 별꽃을 닮아있다. 화려하지 않으나 강인하고, 비극적인 운명 앞에서도 결코 시선을 거두지 않는 질긴 생명력이다. 인간 존재의 유한성, 육체의 쇠락, 타자와의 단절, 그리고 운명처럼 주어진 고통스러운 일상을 대면하는 시인의 시선은 처절함을 넘어 종교적인 숭고함에 닿아 있다.

 

2. 시간의 풍화와 분열된 자아의 심연

 

인간은 누구나 시간의 궤적 안에서 서서히 마모된다. 이성두의 시에서 시간은 종종 되돌릴 수 없는 상실감과 맞닿아 있다.「낯선 아이」에서 시인은 낡은 사진첩 속 어린 자신을 대면한다. “사진 한 장 / 아이 하나 서 있는데 / 낯설어 / 끝내 말을 붙이지 못한다”는 진술은 단순히 과거에 대한 향수가 아니다. 세월의 풍화 속에서 변해버린 자신과, 그의, 간극을 메울 수 없는 실존적 무력감을 서늘하게 포착한 장면이다. “누가 부르던 소리 하나 / 허공에 남아” 자꾸 뒤를 돌아보게 만들지만, 결국 “말끝에서 젖는” 울음만이 남는다.

이러한 시간의 무상함은 육체의 쇠락을 확인하는 「최면」에서 더욱 철학적인 층위로 심화된다. 거울을 보며 “늙었다 / 늙었다”고 되뇌는 화자의 태도는 체념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날카로운 자의식이 번뜩인다. 시인은 “보이는 나는 거울의 것”이나 “바라보는 나는 내 안에 남았다”고 선언한다. 육체는 시간의 법칙에 순응하여 늙어가지만, 내면의 자아는 그 변화에 동의하지 않은 채 젊은 날의 감각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는 자각이다. 제 눈이 늙은 줄도 모른 채 화자에게 늙음의 최면을 거는 거울의 폭력성 앞에서, 시인은 자아의 분열을 감지하며 실존의 서글픔을 마주한다.

과거의 시간이 늘 비애로만 남는 것은 아니다. 화로」에서는 잃어버린 시간이 어머니의 온기로 치환된다. “서리 낀 문창 살 너머로” 몰려오는 겨울의 차가움과 “시린 속”의 허기는, 화로라는 구체적 사물을 매개로 “매운 불꽃”과 “붉고 알싸한 그리움”으로 타오른다. 고무장갑 낀 손으로 건네던 어머니의 ‘뜨거운 입맛’은 이제 말라버렸지만, 화로의 이미지는 차가운 현실을 견디게 하는 근원적 생명력으로 작용한다.

 

3. 단절된 세계와 절단의 미학

 

이성두의 시 세계를 흠결 없이 직조하는 또 다른 축은 소외와 단절에 대한 예민한 감각이다. 세상과의, 원활한 접속이 차단된 자의 내면 풍경은 「문」에서 극대화된다. “문은 닫히지 않았다 / 다만 나를 위해 열린 적이 없었다”는 첫 연의 고백은 뼈아프다. 물리적인 문은 열려 있으나, 그 문을 통과하여 타자와 소통하거나 세상의 중심에 개입할 수 없는 주체의 소외감이 철저하게 그려진다. “누구는 들어오고 / 누구는 나가고 / 나는 끝내 / 앉아만 있다”는 관찰자적 체념은, 종국에 이르러 “속옷마저 찢고 싶”은 극단의 폭발적 충동으로 치달으며 억눌린 내면의 비명을 가시화 한다.

 

이러한 단절감은「절단의 이면」에서 물리적이고 공간적인 상상력으로 뻗어 나간다. 가위로 종이를 오려내는 행위는 세상과의 단절을 상징한다. 잃어버린 가지 반쯤 비어 있는 거울 속의 어깨 등 결여된 이미지들이 나열된다. 그러나 이 시의 진정한 깊이는 절단된 이후의 성찰에 있다. 잘라낸 것이, 과연 불필요한 바깥쪽이었는지, 아니면 가장 소중한 자신의 ‘안쪽’이었는지를 묻는 시적 질문은 관계와 자아의 본질을 통째로 흔든다.

그러나 시인은 단절의 공간에 갇혀 통곡으로만 일관하지 않는다. 빈칸」을 보면, 단절을 수용하고 그것을 새로운 소통의 여백으로 승화시키는 태도가 등장한다. “잃어버린 말들 / 서로의 빈칸에 끼우면” 어느새 “말하지 않은 여백까지 / 가만히 채워진다”고 시인은 적고 있다. 빈칸을 억지로 언어로 채우려 들지 않고, 찻잔을 비우는 행위와 침묵 속에서 관계의 본질을 회복하는 넉넉함은 상실의 시대를 건너는 시인만의 고유한 처세술이다.

 

4. 삶과 살의 경계, 기울어진 수평선이 품은 사랑의 윤리

 

이 시집의 가장 묵직하고도 비극적인 절정은 단연 투병 중인 아내를 향한 시선에서 피어난다. 8년이라는 기나긴 시간 동안 병상에 누운 아내의 육체를 곁에서 지켜보는 남편의 시선은, 단순한 연민을 넘어 종교적 숭고함의 경지에 이른다.

「판결과 판독」에서 법정의 판결과 병원의 판독이 교차하는 서늘한 몽타주는 인간 실존의 무력감을 여실히 보여준다. “거기는 삶을 들여다보고 / 여기는 살을 들여다본다”는 구절에서 시인은 지나온 과거의 죄업(삶)과 병상에 누운 육체의 질병(살)을 기막히게 등치 시킨다. ‘삶’과 ‘살’이라는 단 한 글자의 차이 속에 인간 존재의 모든 업보가 응축되어 있다. 어떤 판결과 어떤 병명이 떨어질지 모르는 절박한 대기실 앞에서, 시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는 “잠든 호수에 떨어지는 한 방울”처럼 고요하고도 간절한 기도뿐이다.

 

그가 이 잔혹한 운명을 견디는 방식은 세상에 대한 저항이나 기적을 바라는 허황된 요행이 아니다.「기울어진 수평선」에서 시인은 아내의 병명 ‘사경증(斜頸症)’을 세상의 불균형으로 확장 시킨다. 몸이 비틀린 아내를 억지로 바로 세우려 하지 않고, 도리어 “세상은 이미 그대처럼 기울어져 / 나 또한 비스듬히” 걷겠다고 선언한다. 사랑하는 이의 고통을 타자화, 하거나 대상화하지 않고, 그 고통의 기울기에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동기화하는 것. 비마저 한쪽으로 내리는 그 기울어진 수평선 위를 기꺼이 함께 걷겠다는 다짐은, 이성두가 당도한 가장 거룩하고도 슬픈 사랑의, 윤리학이다.

 

이러한 윤리적 태도는 「접속」에서 일상의 ‘기도’로 치환된다. “그 시간에 들어와 있다는 것도, 기도다 / 날마다의 영원이 쌓이는 / 거기 머무는 것도 기도다”라는 구절은, 거창한 종교적 의식이 아니라 고단한 돌봄의 일상 자체가 구원을 향한 참회록임을 보여준다. 끊어내고 싶어도 “아침이면 잡초처럼 돋아나는” 현실의 굴레 속에서, 화자는 다시금 흩어진 “손끝을 모은다.” 아내의 병상 옆을 지키는 닫힌 생활을 끝없는 구도의 길로 받아들인 자만이 쓸 수 있는 처절한 순명(順命)의 시다.

 

5. 채굴된 허무와 어둠 속에서 타오르는 생명의 구애

존재의 본질과 죽음의 언저리를 파고드는 시인의 눈에 세상 사람들의 세속적 욕망은 허무한 광대극에 불과하다.「채굴」에서 소문을 좇아 돈과 사랑이, 심지어 문학이라는 광맥을 향해 곡괭이를 찍어대는 인간 군상의 모습은 탐욕의 민낯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허공에 곡괭이를 찍으며 맹목적으로 달려들던 그들의 결말은 “천장이 무너지는” 파국이다. 욕망이 성취되는 순간 그것이 도리어 무서운 형벌(눈물 같은 보석)이 되어 머리 위로 떨어지는 모순을 시인은 냉철하게 경고한다.

 

반면, 세속의 욕망을 비워낸 시인이 진정으로 갈구하는 원초적 생명의 박동은 「구애」의 붉은빛 속에서 은밀하게 타오른다. 새벽을 가르는 고양이 울음과 소쩍새 울음은, 날것의 생명력이자 본능의, 발현이다. 병상을 지키느라 유폐된 삶을 사는 시인의 내면 깊은 곳에도 이 거부할 수 없는 생의 감각이 꿈틀거린다. “입술 붉히는 매화”와 “어둠이 붉다”라는 강렬한 색채의 대비는,모든 것이 소멸해 가는 차가운 겨울의 한가운데서도 생명을 향한 본능과 억눌린 정념이 활화산처럼 타오르고 있음을 증명한다.

 

6. 맺음말 : 별꽃처럼 묵묵히, 지상에 뿌리내린 기도의 궤적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시를 쓰는가. 예술이 도달해야 할 궁극의 지점은 어디인가. 이성두의 시집 『별꽃은 피고 지고』는 이 묵직한 질문에 대한 가장 정직한 해답을 보여준다. 시는 세상을 향한 승리의 찬가나 지식인의 오만한 선언이 아니라, 깊은 절망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자가 흘리는 따뜻한 피의 기록이어야 한다.

이성두의 시는 화려하지 않다. 난해한 관념의 유희로 독자를 시험하지도 않는다. 그의 언어는 피 묻은 현실의 바닥에 두 발을 굳건히 딛고 있다. 닫힌 방 안에서 앓아누운 아내의 숨소리를 들으며, 기울어진 세상을 원망하는 대신 스스로 비스듬히 몸을 낮춰 아내의 손을 꽉 쥐는 한 남자의 조용하고도 거대한 투쟁기다.

자신의 가장 아픈 상처를 투명한 언어로 직조해 낸 시인의 용기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 이토록 비극적인 세계를 기꺼이 끌어안고 침묵으로 시간을 깁고 있는 시인의 뒷모습은 먹먹하고도 눈부시다. 바람 부는 들녘에 위태롭게 흔들리면서도 끝내 어둠을 밝히는 '별꽃'처럼, 그의 벼려진 시편들이 상처 입은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서 오래도록 피고 지기를 바라면서 고통의 순간을 시로 승화시키는 이성두의 휴머니즘을 높고 자랑스럽게 빛나고 모든, 독자들 같은 임계점에서 고달픈 삶을 이어가는 우리들에게 너무도 큰 울림을 주는 시집이라고 찬양 하면서 에필로그 한다.

 

2026. 10. 22.

 

대중문화평론가/칼럼니스트/이승섭

[이성두의 5번째 시집(별꽃은 피고 지고)]

 

이분희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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