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눈물을 잊은 시대, AI와 인간의 자아에 대하여]

<들어서며: 어떤 작가의 묵직한 질문에 답하며>

수원본부장 손옥자 2026.05.18 20:15

 

[금요저널 주필 이승섭]

[눈물을 잊은 시대, AI와 인간의 자아에 대하여]

 

<들어서며: 어떤 작가의 묵직한 질문에 답하며>

 

얼마 전, 평생을 문학과 대중문화의 최전선에서 글을 읽고 써온 한 노련한 발행인으로부터 가슴을 치는 질문 하나를 받았다. 이작가 요즘 젊은이들이 AI로 글을 써도 정말 괜찮은 걸까?

만약 인간이 눈물을 모른다면, 그 자아는 메마르게 되는 것 아닌가?”

 

이 질문은 단순히 ‘새로운 도구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기술적 논의를 훌쩍 뛰어넘는다. 그것은 기계가 인간의 언어를 완벽하게 모사하는 시대에, 우리가 인간으로서 지켜내야 할 최소한의 영토가 어디인가를 묻는 존재론적 질문이다. 작가의 눈으로, 그리고 글을 쓰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이 고귀한 질문에 담담히 나의 답을 적어 내려가고자 한다.

 

1. 마찰 없는 글쓰기, 그 달콤한 퇴화

 

우리가 마주한 첫 번째 문제는 AI 글쓰기가 고통과 마찰을 생략한다는 점에 있다.전통적인 글쓰기는 언제나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머릿속의 어렴풋한 감정과 사유를 단어라는 좁은 틀에 가두기 위해 밤을 새워 고민하고, 적절한 어휘를 찾지 못해 원고지를 찢거나 커서를 깜빡이며 괴로워하는 시간. 우리는 그 시간을 ‘산고(産苦)’라 불렀다.

그러나 AI는 이 산고를 단 몇 초 만에 해결해 준다. 주제어 몇 개를 던지면 막힘없는 문장, 완벽한 비문 없는 논리, 그럴듯한 서사가 폭포처럼 쏟아진다. 청년들은 이 ‘마찰 없는 매끄러움’에 매료된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함정이 있다. 인간의 자아와 고유성은 매끄러운 고속도로 위가 아니라, 울퉁불퉁한 자갈길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순간에 비로소 형성된다. 글을 쓰기 위해 겪는 고통스러운 지체(Delay)의 시간 동안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이것이었던가? 내 마음 밑바닥에 있는 진짜 감정은 무엇인가?

AI에게 글쓰기를 아웃소싱하는 순간, 청년들은 이 치열한 자아 발견의 기회를 잃어버린다. 고민 없이 얻은 세련된 문장은 자기 삶의 고백이 아니라, 기계가 평균값으로 계산해 낸 ‘타인의 목소리’일 뿐이다. 마찰이 사라진 글쓰기 환경에서 청년들의 자아는 단단해질 기회를 잃고 점점 표면화된다.

 

2. 눈물을 모르는 인간, 자아는 메마를 수밖에 없다

 

과연 이 던진 나의 질문에 “인간이 눈물을 모르면 자아가 메마를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 나는 확신을 담아 답하고 싶다. 그렇다, 눈물을 잃은 인간의 자아는 반드시 메마른다.

여기서 ‘눈물’은 단순히 안구에서 흐르는 염분 섞인 액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 중 가장 극적인 비언어적 고백이다. 우리는 언제 눈물을 흘리는가?

►타인의 숭고한 고통에 깊이 공감할 때 (측은지심)

►내 삶의 거대한 슬픔이나 상실을 온몸으로 마주할 때 (애도)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거대한 자연이나 예술적 아름다움을 마주할 때 (경외)

 

즉, 눈물은 ‘언어의 한계 상황’에서 터져 나오는 영혼의 엑기스다. 논리와 이성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한계점에서, 자아가 외부 세계와 격렬하게 반응할 때 흐르는 것이 바로 눈물이다.

AI는 결코 눈물을 흘릴 수 없다. 억만 개의 눈물 관련 데이터를 학습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시를 쓸 수는 있겠지만, 단 한 방울의 슬픔도 스스로 느끼지 못한다. 가슴을 쥐어짜는 lump(목이 메는 느낌)를 모른 채 쓰인 문장은 차가운 코드의 나열에 불과하다.

만약 청년들이 스스로 눈물 흘려보지 않고, 타인의 눈물에 공감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AI가 조제해 주는 감정의 레시피에만 의존해 글을 쓴다면 어떻게 될까? 그들은 슬픔조차 효율적으로 소비하려 들 것이다. 고통의 무게를 스스로 견디지 않고 AI에게 ‘대신 슬퍼해 주어 세련되게 요약해 달라’고 요청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고통을 직시하지 않고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지 않는 자아는 얇아지고 건조해진다. 그것이 바로 자아의 사막화, 즉 '메마름'이다. 눈물은 사막 같은 삶을 적시는 유일한 오아시스이며, 자아를 부드럽고 생명력 있게 유지해 주는 영양분이다.

 

3. 상상의 나래논리: 기술 문명 속 '신인류'의 탄생에 대하여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주 대담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자. 어쩌면 우리는 머지않은 미래에 새로운 형태의 '기계적 자아'를 지닌 인류를 목도하게 될지도 모른다.

만약 청년들이 슬픔, 분노, 기쁨 같은 모든 원초적 감정의 해석을 AI에 맡겨버린다면, 인간의 뇌와 영혼은 점차 단순화될 것이다.과거 인류는 사랑의 열병을 앓을 때 편지를 쓰며 밤을 지새웠고, 그 과정에서 자기 성찰을 이룩했다. 그러나 미래의 청년들은 AI에게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을 낭만적인 고백 메시지를 써줘"라고 입력하고, 상대방 역시 AI로 "그 고백에 적당히 튕기면서도 세련되게 수락하는 답장을 보내줘"라고 답할 것이다.

이 상상이 가리키는 파국은 명확하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인데 정작 인간의 영혼은 개입하지 않고, 기계와 기계가 대화를 나누며 그 껍데기만을 인간이 향유하는 기이한 세상이다.

 

이렇게 자란 세대의 자아는 깊이를 상실한 채 2차원 평면처럼 얇아질 것이다. 그들은 상처받지 않기 위해 감정을 회피하고, 눈물 흘리지 않기 위해 삶과 거리를 두며, 모든 복잡한 사유를 기계에 대행시키는 '무균실의 인간'이 될지도 모른다. 눈물을 흘리지 않는 문명은 고통은 없겠지만, 동시에 진정한 구원도 환희도 없는 공허한 유토피아가 될 것이다.

 

4. 맺으며: 우리는 어떻게 '사막화'를 막을 것인가?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AI라는 신기술을 배척하는 러다이트 운동이 아니다. 오히려 "기술이 비대해질수록, 인간다운 마찰을 고의로 늘리는 태도"가 필요하다.

글을 쓰는 청년들에게 우리는 이렇게 말해주어야 한다."AI를 사용해라. 그러나 첫 문장을 쓰기 전, 너의 가슴이 쿵쾅거리는지 먼저 느껴라. AI가 써준 글을 읽으며 네 눈시울이 붉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직 네 글이 아니다. 그 문장들 사이에 네 눈물 한 방울, 네 땀 한 방울을 섞어 넣는 마찰을 기꺼이 감수해라.“

 

인간의 영혼은 상처받고 곪았다가, 눈물로 씻겨 내려가며 다시 새살이 돋는 치유의 순환을 통해 성장한다. AI는 상처받지 않으므로 성장도 없다. 청년들이 이 상처받을 권리, 그리고 눈물 흘릴 특권을 기계에 빼앗기지 않기를 바란다.

인간의 자아는 오직 스스로 울어본 자만이 지켜낼 수 있는 가장 거룩한 성전이기 때문이다.

눈물 없이는 성장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해두고 나가려 한다.

 

2026. 05.

 

대중문화평론가/칼럼니스트/이승섭

[필자의 한가한 시간]


[무의식의 시]

 

 
수원본부장 손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