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섭 칼럼

【경계의 벽은 어디까지인가?】

— 이성과 감성의 통섭(統攝), 그리고 대통합의 정치학을 위하여

이분희 취재본부장 2026.10.14 08:56

 

[필자]

머리말: 우리가 그어 놓은 경계선, 그 모호함의 숲에서

 

모든 사유와 사리, 윤리와 제도에는 경계선이 존재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늘 선(線)을 그어왔다. 남성과 여성의 행동 양식을 가르는 사회적 규범, 해와 달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며 오가는 천체의 운행, 심지어 인간 내부에서 터져 나오는 눈물과 울음 사이의 미세한 간극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모든 존재는 저마다의 경계 위에 서 있다.

그러나 이 경계라는 것은 본디 고정된 절벽이 아니다. 유동하는 삶의 흐름 속에서 경계는 유기적으로 교차하는 접점이자, 끊임없이 넘어섬을 열망하는 분기점(Bifurcation Point)이다. 장자(莊子)가 말했듯 '이것'과 '저것'의 구분이 명확해지는 순간 자아와 타자의 대립이 시작되고, 그 사이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모호함의 숲이 무성하게 자라난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국가적·사회적 위기의 본질은 바로 이 '모호함의 숲'을 직시하지 못한 채, 서로가 그어 놓은 경계의 벽을 더욱 높고 견고하게 쌓아 올리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인간관계의 도덕적 한계에서부터 국가를 운영하는 국정과제에 이르기까지, 경계를 자정(自淨)하고 통제할 인내의 동력이 고갈되어 가고 있다.

 

제1장: 언어의 무기화와 진영의 가두리 — 피로에 빠진 대중

 

행동심리학과 언어학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말과 행동은 결코 우연히 분출되지 않는다. 그것은 늘 내면에서 미세한 예령(豫令)을 울리며 다가오지만, 성찰하지 못하는 개인과 집단은 그 신호를 감지하지 못하고 타성에 젖어 든다.

현대 한국 정치와 사회 담론을 지배하는 언어의 특징은 '거리에 대한 권태'와 '진영논리의 맹목성'이다. 어떠한 일정한 행동과 이념적 언어가 수년간 반복되면 대중은 극심한 권태와 피로감을 느낀다. 마치 교실에서 한 시간이 지나면 집중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허리를 비틀며 흥미를 잃어버리는 학생들처럼, 국민들은 날마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언어에 심신이 지쳐 있다. 실효성은 하강 곡선을 그리고, 정치와 사회를 향한 신뢰는 이미 반토막이 난 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사회의 기득권층과 당상관(堂上官)이라 불리는 위정자들은 어떠한가? 그들은 이러한 대중의 '권태 신호'를 감지하기는커녕,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지극히 이기적인 사유와 '네 편과 내 편'이라는 이분법적 진영의 가두리 양식장에 국민을 가두어 두고 있다.

 

'Boundary(범위)'나 'Border(경계)'라는 단어의 미세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단어 모두 '이웃과 만나는 지점'이라는 근본적 의미를 품고 있다.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연기(緣起)의 이치처럼, 내가 그어 놓은 경계의 표정이 선하면 선한 인과의 과보(果報)를 맞이할 것이요, 배타와 악함으로 대하면 결국 그 악함의 얼굴을 마주하게 될 뿐이다.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과 어떤 표정으로 대면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에, 우리는 대립의 담벼락 위에 날카로운 유리조각을 박아 넣는 우를 범하고 있다.

 

제2장: 이성과 감성의 변증법 — 차가운 논리와 뜨거운 공감의 유기적 통섭

 

본문에서 가장 깊게 성찰해야 할 핵심 명제는 바로 "이성과 감성의 관계"이다. 오랫동안 서양의 근대 철학은 이성을 상위에 두고 감성을 제어해야 할 통제의 대상으로 보았다. 하지만 이러한 사유 방식은 수많은 폐단을 낳았다. 차가운 이성만으로 무장한 정치는 냉혹한 배제의 논리로 전락하고, 반대로 이성 없는 맹목적 감성은 대중선동(Demagoguery)과 광기의 늪으로 사회를 밀어 넣는다.

"감성은 이성의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동시에 "이성은 감성의 조력 없이는 단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불구가 된다." 이 명제는 참으로 탁월한 통찰이다.

 

우리가 말하고 진리를 탐구하며 제도를 설계하는 것을 '이성'이라 한다면, 그 제도를 움직이게 하고 타인의 고통에 눈물 흘리게 하는 엔진은 바로 '감성'이다. 지도자의 정치가 목적하는 바, 즉 '국민의 안녕과 평화'라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이성이 제시하는 철저한 논리와 계산 위에 감성이 가져다주는 따뜻한 공감과 배려가 반드시 결합해야 한다.

감성의 조력을 받지 못하는 차가운 이성은 상대를 설득하지 못하고 오직 굴복시키려 할 뿐이다. 반대로 이성의 이끌림을 받지 못하는 폭주하는 감성은 사회적 경계석을 무너뜨려 혼란을 야기한다. 오늘날의 언론과 정치권은 매일같이 유동하는 감정의 과잉 상태를 소비하며, 정작 이성적인 통합의 결과물은 전혀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아주 짧은 판단의 순간, 오랜 경험의, 촉수가 뇌수에 순간적인 명령을 내려 호오(好惡)의 감정을 드러내지만, 그것은 정교한 논리나 이성적 성찰의 산물이 아닌 찰나의 이기심일 때가 많다.

 

이 점에서 정치적 감성은 의식의 줄을 개인이나 파당의 이익이 아닌, '나라와 백성'이라는 거대한 공동체에 묶어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국가라는 배는 경박한 파도에 뱃전이 출렁이는 위험을 안게 될 것이며, 때를 놓쳐 출항이 늦어지면 결국, 역사라는 바다에서 외면당하고 말 것이다.

 

제3장: 지도력의 부재와 '경계석'의 비극 — 2020년의 경고, 오늘날의 초상

 

지혜로운 지도자의 존재 이유는 어디쯤에서 변화의 경계점을 마련하고 다음 수순(手順)을 주문해야 하는가를 정확히 아는 데 있다. 국정을 운영함에 있어 한 가지 정책과 슬로건을 지나치게 오래 끌면 사회적 효율성은 급격히 떨어지고 반발심만 커진다. 지도자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대의 요구를 읽고, 갈등을 용해하며, 변화의 차원을 한 단계 높여야 하는 '판을 읽는 기사(棋士)'여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2020년에 기록했던 점을 소환하는 것은 필자가 경고했던 사태가 몇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조금도 개선되지 않은 채 오히려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온 세계가 경제적 불확실성, 지오폴리틱스(Geopolitics)의 냉혹한 갈등, 사회적 분열로 살얼음판을 걸어가고 있다.

이웃 나라들조차 자국의 이익을 위해 철저하게 자국 우선주의라는 경계석을 촘촘히 치고 있는 이 위중한 시국에, 나라를 이끄는 위정자들은 백성을 안심시키기는커녕 이질적인 이념 대결과 '적폐'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단죄의 언어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자유의 분배를 외면하고 자기만의 영역만을 옳다고 주장할 때, 정치는 '독선(Dogmatism)의 함정'에 빠진다. 나는 거대한 대화형 '큰 그릇'이고 상대방은 포용할 수 없는 '조그만 그릇'이라는 오만함을 버리지 못하는 한, 정치는 승화되지 못하고 무뢰배들의 저급한 힘겨루기로 전락하게 된다.

언제까지 "네 편, 내 편"을 가르며 나라를 분열시킬 것인가? 지도자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위해 국민의 불안을 자극하고 분열을 동력 삼아 연명하는 동안, 나라의 근간은 휘청거리고 발전의 기회는 저멀리 달아나고 있다.

 

제4장: 적폐의 언어를 넘어 통합의 미학으로 — 리더십의 본질

 

어느 나라든 역사적·지리적 경계석은 존재하며, 그 경계석 안에는 저마다의 문화와 가치, 즉 귀중한 보물들이 숨겨져 있다. 진정한 리더십은 이 경계석을 서로를 향해 던지는 투석전의 무기로 쓰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보물을 교환하고 서로를 빛나게 하는 '교역의 다리(Bridge)'로 탈바꿈시키는 기술이다. 이제는 보복과 청산의 상징이었던 '적폐'라는 배타적 언어를 바람에 날려 보내야 할 때다. 위정자들은 손을 내밀어 백성을 끌어안고, 소리 없이 다가오는 국민들의 행동과 언어 속 절규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정치(政治)의 본래 의미는 무엇인가?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이념의 대립을 용광로처럼 녹여내어 하나의 통합된 에너지로 승화시키는 행위이다. 지금 태풍과도 같은 위기의 파도가 저기 눈앞에 다가오고 있는데도, 정치적 기능은 전혀 작동하지 않은 채 봉합은커녕 상처를 더 벌리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비극적 양상이다.

권력을 쥔 자, 집권자가 먼저 기득권을 내려놓고 포용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 상대를 국정 운영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이성과 감성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정치적 메커니즘을 복원해야 한다. 씨앗을 뿌리고 정성을 가꾸어야 할 계절에 날마다 밭을 뒤엎고 가시덤불만 심는다면, 백성들은 어떤 결실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마침내 그 밭을 버리게 될 것이다.

 

맺음말: 백성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거치기 위하여

 

"진영의 대립 앞에 위기의 파도가 다가오는 속도가 보이는데도, 봉합하기는커녕 어떤 기능도 작동되지 못하는 현실이 참으로 걱정스럽다."

2020년 7월에 적었던 이 탄식은, 안타깝게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현실적 절규가 되어 되돌아왔다. 가뭄 속에서 깨달은 작가의 소박한 언어라 스스로 낮추어 말했으나, 이 글에 담긴 경고는 시대의 징후를 읽어낸 예리한 통찰이었다.

국민(백성)은 정지해 있는 물이 아니다. 때로는 조용히 흐르지만, 위정자가 오만하고 경계를 넘어 독선에 빠질 때 배를 뒤집어버리는 거대한 파도(巨浪)로 변한다. 위정자들과 정치 지도자들이여, 제발 눈을 뜨고 귀를 열라. 자신들만의 작은 울타리와 경계석을 허물고, 이성과 감성이 함께 흐르는 통합의 길로 나아가라.

 

거센 역사의 파도를 헤쳐나가기에 우리 사회의 지혜와 역량이 이토록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아직 희망의 불씨가 남아 있는지 다시금 묻지 않을 수 없다. 더 늦기 전에, 소리 없이 다가오는 백성들의 위대한 언어에 귀 기울이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대하며 에필로그 한다.

 

2026. 10.

 

대중문화평론가/칼럼리스트/이승섭

[무의식의 시]

 

이분희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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