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섭 칼럼

[글은 마음의 통찰이다. 연재 10부작] 1부. 글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 문장은 손끝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깊이에서 시작된다

이분희 취재본부장 2026.09.18 09:15

 

[필자]

 사람은 왜 글을 쓰는가.

 

이 질문은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쉽게 지나쳐버린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고, 누구나 나름의 대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자신의 생각을 기록하기 위해 쓴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세상에 자신의 목소리를 남기기 위해 쓴다고 말한다. 또 누군가는 직업이기 때문에 쓰고, 누군가는 말로 다 하지 못한 마음을 글로 표현하기 위해 쓴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글쓰기에는 단순한 목적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어떤 근원적인 힘이 존재한다.

 

왜 우리는 굳이 쓰려고 하는가.

왜 지나간 일을 다시 기억하고, 이미 흘러간 시간을 붙잡아 문장으로 세우려 하는가.

왜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도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언어로 만들어 세상에 내놓으려 하는가.

나는 그 출발점에 ‘마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글은 손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마음에서 시작된다.

손은 단지 마음이 보내는 신호를 받아 적을 뿐이다.

문장은 키보드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서 오랜 시간 숙성된 생각과 감정이 언어라는 형식을 얻어 밖으로 나오는 순간 탄생한다.

그래서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문장을 만드는 행위가 아니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며,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다시 해석하는 일이다.

어쩌면 글쓰기란 인간이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가장 오래된 편지인지도 모른다.

 

1. 글의 시작에는 언제나 질문이 있다

모든 글에는 질문이 있다. 겉으로 질문의 형태를 갖추지 않았더라도 글쓴이의 마음속에는 어떤 물음이 자리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나는 왜 이것을 보고 마음이 움직였을까. 사람은 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가. 나는 무엇을 잃어버렸는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이 마음속에서 오래 머물 때 인간은 비로소 쓰기 시작한다. 따라서 글쓰기는 답을 말하는 행위 이전에 질문을 품는 행위다.질문이 없는 글은 정보를 전달할 수는 있지만, 독자의 마음을 오래 붙잡기는 어렵다. 반면 하나의 깊은 질문을 품은 글은 짧더라도 긴 여운을 남긴다. 문학이 오래 살아남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위대한 문학은 인간에게 완성된 답을 제공하기보다 인간이 끝내 해결하지 못한 질문을 다시 우리 앞에 가져다 놓는다.

 

① 사랑이 무엇인지, ② 고독이 무엇인지, ③ 죽음이 무엇인지, ④ 인간은 왜 살아가는지, ⑤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문학은 이 질문들을 수천 년 동안 되풀이해왔다. 시대가 변하고 언어가 변하고 인간의 생활방식이 변해도 질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질문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을 문장으로 붙잡는 사람이 작가다.

 

2. 글은 경험보다 먼저 마음에서 태어난다

 

사람들은 흔히 좋은 글을 쓰려면 많은 경험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경험은 글쓰기의 중요한 토양이다. 그러나 경험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글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같은 산을 오른 두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한 사람은 정상에 올랐다는 사실만 기록할 수 있다. ‘힘들었다.’ ‘경치가 좋았다.’ ‘정상에 도착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같은 산을 오르면서 자신의 지나온 삶을 생각할 수도 있다. 젊은 날의 꿈을 떠올리고, 잃어버린 사람을 생각하고, 지금까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볼 수도 있다. 같은 산이지만 두 사람에게 산은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차이는 산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라보는 마음에 있다. 그래서 글의 깊이는 경험의 양보다 경험을 바라보는 마음의 깊이에서 결정된다. 많이 살아온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깊은 글을 쓰는 것도 아니며, 짧은 삶을 살아온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얕은 글만 쓰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살아온 시간을 어떻게 바라보았는가이다. 삶은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만, 성찰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경험이 지나간 뒤 그것을 다시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픔을 아픔으로만 끝내지 않고 그 안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묻는 것. 실패를 실패로만 기억하지 않고 그것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생각하는 것. 사랑을 추억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그 사랑을 통해 인간을 어떻게 이해하게 되었는지 돌아보는 것. 바로 그 지점에서 경험은 문학이 된다.

 

3. 마음은 보이지 않지만 문장은 마음을 보여준다

 

마음은 보이지 않는다.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문장을 통해 한 사람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다. 어떤 단어를 선택하는가. 어떤 장면에서 오래 머무는가. 무엇을 아름답다고 말하는가. 무엇에 분노하는가. 무엇을 끝내 말하지 못하는가. 이 모든 것 속에 한 인간의 내면이 드러난다. 그래서 문장은 마음의 흔적이다. 사람은 자신이 살아온 만큼의 문장을 쓴다. 이것은 단순한 문체론적 명제가 아니다.

한 사람의 문장은 그가 살아온 시간과 경험, 가치관과 상처, 사랑과 고독이 응축된 하나의 정신적 지문과 같다. 문체는 흉내 낼 수 있다. 유행하는 표현도 배울 수 있다. 다른 작가의 문장을 연구하고 세련된 어휘를 익힐 수도 있다. 그러나 삶의 깊이까지 빌려올 수는 없다. 결국 자신의 문장은 자신이 살아온 자리에서 나온다. 그래서 오래 글을 쓰다 보면 문장은 글쓴이를 배신하지 않는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어느 순간 그 사람의 마음이 드러난다. 그것이 글쓰기의 정직함이다.

 

4. 문학은 표면이 아니라 그 너머를 바라보는 일이다

 

문학은 보이는 것을 쓰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보이는 것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를 묻는다. 한 사람이 웃고 있다면 왜 웃고 있는지 묻는다. 한 사람이 침묵하고 있다면 그 침묵 속에 무엇이 있는지 생각한다. 누군가 떠났다면 떠난 사람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남겨진 사람의 마음을 바라본다. 꽃이 피었다면 꽃의 아름다움만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그 꽃이 피고 지는 시간 속에서 인간의 삶을 생각한다. 이것이 문학적 시선이다. 문학은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고, 일상에 질문을 던지며, 평범한 장면에서 인간의 보편적인 삶을 발견한다.

그래서 문학의 깊이는 특별한 사건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아주 평범한 장면을 얼마나 깊게 바라볼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창문에 떨어지는 빗방울 하나에서도 지나간 시간을 생각할 수 있고, 저녁 무렵 골목을 걷는 노인의 뒷모습에서 인생의 황혼을 발견할 수도 있다. 문학은 세상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세계를 새롭게 보게 한다. 그것이 문학이 가진 통찰의 힘이다.

 

5. 글쓰기는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일이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처음에는 세상을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결국 자신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사회를 비판하다가 자신의 가치관을 발견하고, 타인의 삶을 이야기하다가 자신의 상처를 발견하며, 지난날을 회상하다가 지금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글은 밖으로 향하지만 결국 안으로 돌아온다. 이것이 글쓰기의 역설이다.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글을 쓰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을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글쓰기는 자기 발견의 과정이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보다 무엇에 아파하는지가 더 분명하게 드러날 때도 있다. 자신이 무엇을 주장하는지보다 무엇을 끝내 포기하지 못하는지가 문장 속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때로는 자신도 몰랐던 내면의 상처가 한 문장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진정한 글쓰기는 자기 과시가 아니다. 오히려 자기 대면이다. 자신에게서 도망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일이다.

 

6. 좋은 글은 지식보다 마음을 먼저 움직인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글을 읽고, 수많은 문장을 접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문장은 기억되지 않는다. 왜일까. 정보는 머리에 남을 수 있지만, 마음을 움직인 문장은 삶에 남기 때문이다. 좋은 글은 독자에게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독자가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나도 이런 적이 있었는데.’ ‘나도 저 사람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나는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을 독자의 마음에 남긴다면 그 글은 이미 자신의 역할을 다한 것이다. 문학적 글쓰기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글은 독자의 생각을 대신해주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시작하게 해야 한다. 정답을 닫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질문을 열어야 한다. 그래서 좋은 문장은 끝났는데도 끝나지 않는다.

책을 덮은 뒤에도 마음속에서 계속 살아 움직인다.

 

7. 통찰은 오래 바라보는 사람에게 온다

 

통찰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래 바라본 사람에게 찾아온다. 한 사람을 오래 바라보고, 한 사건을 오래 생각하고, 한 문장을 오래 붙잡고, 자신의 삶을 오래 돌아볼 때 그 안에서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의미가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이것이 글 쓰는 사람에게 필요한 가장 중요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빨리 판단하지 않는 것. 쉽게 단정하지 않는 것. 한 번 더 생각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생각조차 의심해보는 것. 사유란 결국 자기 확신과 싸우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 정말 옳은가. 내가 틀렸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는 어떤 사정이 있었는가.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같은 의미일까. 이 질문을 반복할수록 시선은 넓어지고 마음은 깊어진다. 그리고 그 깊이가 결국 문장으로 나타난다.

 

8. 글은 삶을 다시 살아보는 방법이다

 

인간은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 그러나 글을 통해 지나간 시간을 다시 바라볼 수는 있다. 어린 시절의 어느 날을 기억하고, 젊은 날의 꿈을 떠올리고, 잃어버린 사람을 생각하고, 한때의 실패를 다시 꺼내어 바라보면서 우리는 과거를 현재의 눈으로 다시 해석한다. 그 과정에서 과거는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하나의 의미가 된다. 그래서 글쓰기는 삶을 두 번 사는 일인지도 모른다. 한 번은 실제 삶으로 살아가고, 또 한 번은 문장으로 돌아가 다시 살아본다. 그때 우리는 과거의 자신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다.

 

Ⓐ 왜 그렇게 선택했는지, Ⓑ 왜 그렇게 아파했는지, Ⓒ 왜 그때는 보지 못했던 것을 지금은 볼 수 있는지.

 

글은 시간의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작은 배와 같다. 이미 지나가 버린 순간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 순간을 바라보는 시선은 바꿀 수 있다. 그리고 때로는 그것만으로도 삶은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9. 결국 글의 출발점은 가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나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자. 글의 출발점은 단순한 자아가 아니다.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시선이다. ‘나는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나는 왜 이렇게 생각하는가.’ ‘이 감정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자신을 바라보는 자신. 나는 이것이 글쓰기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쏟아내는 것과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며 그것을 문장으로 형상화하는 것은 다르다. 전자는 감정의 표현일 수 있지만, 후자는 사유의 시작이다. 문학은 감정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감정에 머물지도 않는다. 감정을 바라보고 그 의미를 발견한다. 슬픔을 슬픔으로만 쓰는 것이 아니라 그 슬픔이 인간에게 무엇인지 묻는다. 외로움을 외로움으로만 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왜 외로운 존재인지 질문한다. 사랑을 사랑으로만 쓰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통해 인간이 무엇을 갈망하는지를 들여다본다. 그 순간 개인의 감정은 문학적 의미를 얻는다.

 

10. 글은 마음에서 시작되어 인간에게로 간다

 

결국 글의 출발점은 마음이다. 그러나 글은 마음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자신의 마음에서 출발한 글이 타인의 마음에 닿을 때 비로소 하나의 문학적 사건이 만들어진다. 내가 겪은 외로움이 누군가의 외로움과 만나고, 내가 품었던 질문이 누군가의 질문과 만나며, 내가 지나온 삶의 한 장면이 누군가의 기억을 깨울 때, 글은 개인의 기록을 넘어선다. 한 인간의 경험이 다른 인간의 경험과 연결되는 것이다. 이것이 문학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다. 나는 혼자 썼지만 혼자 끝나지 않는다. 내 마음에서 태어난 문장이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 건너간다. 그곳에서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그러므로 글쓰기란 결국 인간과 인간 사이에 놓는 하나의 다리다. 문장은 그 다리를 건너가는 언어다.

 

맺음말 글은 마음의 깊이만큼 깊어진다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글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나는 다시 말하고 싶다. 글은 손끝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책상 위의 종이에서도 시작되지 않는다. 키보드의 자판에서도 시작되지 않는다. 글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시작된다. 어떤 경험이 오래 마음에 남았을 때, 어떤 질문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때, 어떤 사람의 눈빛이 오랫동안 기억될 때, 어떤 상처가 시간이 지나도 완전히 아물지 않을 때, 어떤 아름다움을 보고 말로 표현하고 싶을 때,

인간은 비로소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마음을 오래 바라보는 과정에서 경험은 성찰이 되고, 성찰은 통찰이 되며, 통찰은 마침내 문장이 된다. 그러므로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문장을 배우기보다 자신의 마음을 오래 바라볼 필요가 있다. 세상을 많이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본 것을 깊이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만난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많은 책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읽은 문장이 자신의 삶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글은 삶 밖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삶 속에서 만들어진다. 그리고 삶을 깊이 바라보는 사람의 문장에는 그 삶의 흔적이 남는다. 나는 그래서 글을 마음의 통찰이라고 부른다.

 

마음이 깊어질수록 문장은 깊어진다. 삶을 오래 바라볼수록 문장은 사람에게 가까워진다. 그리고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볼수록 글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어쩌면 우리가 평생 쓰고 있는 것은 수많은 글이 아니라 단 하나의 문장인지도 모른다. ‘나는 누구인가.’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기억하고, 사랑하고, 상처받고, 방황하고, 다시 살아가며, 마침내 그것들을 문장으로 남긴다. 그렇다면 글쓰기는 단순히 문장을 만드는 일이 아니다.

 

글쓰기는 살아온 나를 바라보고, 아직 살아갈 나를 발견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긴 여정의 첫 문장은 언제나 마음에서 시작된다. 글은 마음에서 태어난다. 그러나 그 글의 마지막 목적지는 마음이 아니다. 한 사람의 마음에서 태어난 문장이 다른 사람의 마음에 닿을 때, 비로소 글은 생명을 얻는다. 그것이 문학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끝내 글을 쓰는 이유일 것이다.

 

2026. 09.

 

대중문화평론가/칼럼니스트/이승섭

[해돋이]

 

 
이분희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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