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돈으로 사는가.
►명예로 사는가.
►권력으로 사는가.
아니면 오래 사는 것만으로 삶의 가치가 완성되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은 결국 생각하고, 느끼고, 사랑하고, 기억하고, 자기 삶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살아간다. 그렇다면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은 무엇일까. 나는 주저하지 않고 읽고 생각하는 능력,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독서와 글쓰기는 취미가 아니다 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본질적인 정신활동이다. 우리는 독서를 너무 쉽게 생각한다. “시간이 있으면 책을 읽는다.”
“공부하려고 책을 본다.”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나이가 들면 치매 예방을 위해 책을 읽는 것이 좋다.” 모두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독서의 본질을 설명할 수 없다.
독서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행위다.
책 한 권을 펼치는 순간 우리는 지금 여기의 나를 떠난다. 나는 다른 시대의 사람을 만나고, 다른 나라의 사람을 만나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세계를 경험한다. 때로는 죽은 지 수백 년이 지난 사람과 대화를 나눈다. 플라톤과 대화하고, 셰익스피어와 만나고, 도스토옙스키의 인간을 들여다보고, 한용운의 침묵을 생각하며, 윤동주의 별을 바라본다. 이것이 독서다. 그러므로 독서는 단순한 문자 해독이 아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놓인 시간과 공간의 벽을 허무는 정신적 만남이다.
나는 이 점에서 독서가 인간의 삶을 바꾸는 힘을 가진다고 믿는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것이 특정한 세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동에게도 독서가 필요하고, 청년에게도 필요하며, 중년에게도 필요하고, 노년에게도 필요하다. 어쩌면 인간은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책을 읽어야 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다만 나이에 따라 책을 읽는 이유가 달라질 뿐이다.
►어린아이에게 책은 세상을 발견하는 창문이다.
►청년에게 책은 자신의 삶을 설계하는 나침반이다.
►중년에게 책은 삶을 성찰하는 거울이다.
►노년에게 책은 지나온 삶의 의미를 다시 발견하는 등불이 될 수 있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독서의 생애적 가치이다.
1. 아이에게 책은 세상을 처음 만나는 방법이다. 한 아이가 그림책을 펼친다. 그 안에는 숲이 있고, 동물이 있고, 바다가 있고, 우주가 있고, 자기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아이는 책을 읽으며 단순히 단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는 나와 다른 생각과 감정과 삶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배운다.
이것은 인간교육에서 대단히 중요한 출발점이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영유아기의 발달을 건강과 언어·인지능력뿐 아니라 사회·정서적 발달과 연결된 생애의 중요한 토대로 보고 있다. 특히 보호자와 아이가 그림책을 함께 읽으며 상호작용하는 프로그램에서는 언어와 주의집중, 부모와 아이의 관계에 긍정적인 효과가 관찰됐다. 따라서 아이에게 책을 읽히는 것은 시험점수를 올리기 위한 교육만이 아니다. 그것은 한 인간의 내면에 세계를 만드는 일이다.
책을 많이 읽는 아이는 반드시 모든 과목에서 1등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좋은 책을 읽은 아이는 질문을 배운다. “왜 그럴까?”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질문이 인간을 성장시킨다.
독서의 진짜 힘은 정답을 많이 외우게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질문할 줄 아는 인간을 만드는 데 있다.
최근의 독서 연구에서도 독서에 대한 몰입과 즐거움은 어휘와 독해력뿐 아니라 학습과 웰빙의 여러 측면과 관련된 것으로 논의되고 있다.
그러므로 어린 시절의 독서는 지식교육 이전에, 인간교육이다.
2. 청년에게 책은 흔들리는 자신을 붙잡는 기둥이다
청년의 삶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불안하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누구를 사랑해야 할지 모르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도 확신하지 못한다. 취업, 경쟁, 인간관계, 사랑, 실패, 성공. 현대의 청년은 수많은 선택지 앞에 서 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불안하다. 이때 책은 말없이 인간에게 질문한다.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책은 정답을 주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중요하다. 좋은 책은 독자에게 정답을 강요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답을 찾도록 만든다.
문학이 위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설 속 인물을 따라가면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경험한다. 시를 읽으면서 언어가 설명하지 못하는 감정을 만난다. 철학책을 읽으면서 당연하다고 믿었던 생각을 의심한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조금씩 자기 자신을 객관화한다. 나는 이것을 정신적 거리 두기라고 부르고 싶다.
자기 안에 갇혀 있을 때는 문제가 세상의, 전부처럼 보인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 알게 된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누군가도 사랑 때문에 울었고, 누군가도 실패 때문에 무너졌으며, 누군가도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평생 고민했다는 것을. 그 깨달음은 인간에게 이상한 위로를 준다.
“나만의 고통이 아니구나.” 그 순간 고통은 조금 다른 얼굴을 갖게 된다.
3. 중년에게 독서는 잃어버린 자신을 다시 찾는 일이다
중년이 되면 사람은 바쁘다. 직장에 매이고, 가족에게 매이고, 경제적 책임에 매인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남을 위해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이런 질문이 찾아온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젊었을 때의 꿈은 어디로 갔는가. ►내가 좋아했던 것은 무엇이었는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었던 사람인가.
이 질문을 다시 꺼내는 데 책이 도움을 줄 수 있다.
책을 읽는 시간은 세상으로부터 잠시 벗어나는 시간이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는 시간이다. 책장을 넘기다가 문득 한 문장을 만나 멈춰 설 때가 있다. “이 문장은 내 이야기인데?” 바로 그 순간 독서는 정보가 아니라 자기 발견이 된다.
최근의 성인 독서와 웰빙 연구를 종합한 리뷰에서도 독서는 일상의 스트레스에서 잠시 벗어나는 공간, 타인의 관점을 경험하는 기회, 기억을 되살리는 과정, 지적 자극, 집단적 의미 형성 등을 통해 자기 이해와 공감, 연결감 같은 웰빙 자원을 강화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나는 이것이 상당히 중요한 발견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돈이 없어서만 불행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릴 때도 불행해진다. 독서는 그 잃어버린 자아를 다시 불러오는 하나의 방법이다.
4. 노년에게 책은 기억을 깨우고 삶을 다시 해석하는 거울이다
그리고 마침내 노년이 온다. 사람들은 노년을 자꾸 ‘내려놓는 시기’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만 말하고 싶지 않다. 노년은 내려놓는 시간이면서 동시에 다시 바라보는 시간이다. 젊을 때는 앞을 바라본다. 그러나 노년에는 뒤를 돌아볼 수 있다. 그것은 약점이 아니다. 오히려 엄청난 자산이다.
70년을 살아온 사람의 기억은 책 한 권보다 두껍다.
그 안에는 전쟁과 산업화가 있고, 가난과 성공이 있고, 사랑과 이별이 있고, 가족의 탄생과 죽음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 귀중한 기억을 그냥 사라지게 내버려 둔다. 나는 그것이 너무 안타깝다.
노인의 기억은 개인의 기억인 동시에 시대의 기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년의 글쓰기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자기 인생을 기록하는 일이다. 자신의 삶에 문장을 부여하는 일이다.
어린 시절을 시로 써도 좋고, 첫사랑을 에세이로 써도 좋으며, 농촌에서 살아온 이야기를 산문으로 남겨도 좋다. 그것이 문학적으로 완벽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을 자신의 언어로 바라보는 것이다.
표현적 글쓰기에 관한 심리학 연구는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언어로 구성해보는 글쓰기가 정신적·신체적 건강에 도움을 줄 가능성을 오랫동안 탐구해왔다. 미국심리학회(APA) 역시 제임스 페니베이커의 연구를 소개하며 표현적 글쓰기가 삶의 어려움을 다루고 정신건강을 돕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음을 설명한다. 다만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며, 전문적인 치료를 대신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 가치는 분명하다.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다시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바라본다는 것은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가능성을 갖는다는 뜻이다.
5. 독서는 뇌를 깨우지만, 우리는 그것을 너무 늦게 배운다
특히 노년의 독서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인지기능이다.
독서는 단순히 눈으로 글자를 보는 일이 아니다. 문장을 이해하고, 앞의 내용을 기억하고, 뒤의 내용을 예측하며, 인물과 사건을 연결하고, 자신의 경험과 비교해야 한다. 말하자면 독서는 뇌의 종합적인 활동이다.
14년 동안 64세 이상 지역사회 거주 노인 1,962명을 추적한 종단연구에서는 독서 빈도가 높은 사람들에게 장기간의 인지기능 저하 위험이 더 낮게 나타났다. 연구진은 교육수준 등 여러 요인을 조정한 뒤에도 이러한 연관성을 보고했다. 이 결과를 가지고 “책을 읽으면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치매는 복합적인 질환이고, 독서 하나로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있다.
인지적으로 활발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노년의 뇌 건강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2024년 《Lancet》 치매위원회 보고서 역시 치매 예방을 개인의 단일 행동이 아니라 여러 위험요인을 관리하는 생애 전반의 문제로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독서를 그 생애 전반의 건강한 인지활동 가운데 하나로 바라볼 수 있다. 나는 여기에서 중요한 철학적 결론을 얻는다. 뇌도 쓰지 않으면 삶의 일부가 닫힌다.
◆ 읽고, 생각하고, 기억하고, 질문하고, 말하고, 쓰는 것. 이 모든 것이 인간의 정신을 계속 움직이게 한다.
6. 그런데 왜 우리는 독서와 창작을 ‘부가적인 것’으로 생각하는가
여기에서 나는 우리 사회에 묻고 싶다. 왜 독서와 창작을 늘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하는가. 학교에서는 입시 때문에 책을 읽고, 직장에서는 업무 때문에 책을 읽고, 노년에는 치매 예방을 위해 책을 읽는다.
이것은 너무 좁은 독서관이다.
책은 시험을 위한 것도 아니고, 치매를 위한 것만도 아니다.
“책은 삶을 위한 것이다.”
창작 역시 마찬가지다.
시를 쓰는 사람이 모두 시인이 될 필요는 없다. 에세이를 쓰는 사람이 모두 작가가 될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이 자기 생각을 문장으로 만들어본다는 사실이다. “나는 오늘 무엇을 느꼈는가.” “내가 살아온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 때문에, 행복했고 무엇 때문에 아팠는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순간 인간은 이미 창작을 시작한다. 그래서 나는 글쓰기를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7. 독서와 창작은 사람과 사람을 다시 연결한다
독서의 또 하나의 힘은 공동체다. 혼자 책을 읽을 수도 있지만, 함께 읽을 수도 있다. 독서 모임에서 한 문장을 놓고 서로 다른 생각을 이야기한다. 한 사람은 그 문장을 사랑이라고 말하고, 다른 사람은 상실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사람은 희망이라고 말한다. 누가 맞는가. 반드시 한 사람만 맞는 것이 아니다. 문학에는 하나의 정답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인간은 타인을 이해하는 법을 배운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도 틀린 것이 아닐 수 있구나.”
이것은 민주사회에서 대단히 중요한 능력이다. 독서는 개인의 지적 능력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관점을 받아들이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 어린이의, 경우에도 독서와 독서 즐거움은 공감, 사회적 행동, 심리적 적응과 관련된 연구들이 축적되어 있다. 예컨대 대규모 종단자료를 활용한 한 연구에서는 7세 무렵의 즐거운 독서가 11세 때의 친 사회적 행동 및 주의·과잉행동 문제와 연관되어 나타났다. 결국, 책은 사람을 책 속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나가는 문을 열어준다.
8. 그래서 도서관은 책을 보관하는 건물이 아니라 ‘삶을 연결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우리 지역사회의 도서관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도서관에 책만 많다고 좋은 도서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들어와야 한다.
아이들이 와야 하고, 청년이 와야 하고, 중년이 와야 하며, 어르신이 와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서로 만나야 한다. 아이들은 어르신의 이야기를 듣고, 어르신은 아이들의 생각을 듣는다. 청년은 중년의 경험을 듣고, 중년은 청년의 새로운 시선을 배운다. 한 권의 책이 세대를 연결하는 것이다. 여기에 글쓰기까지 더한다면 더욱 강력해진다.
◆ 읽고, 쓰고, 말하고, 듣는 공동체.
나는 이것이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야 할 지역문화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농촌 지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도서관이나 주민공동체 공간에서 ‘시니어 글쓰기 교실’을 열고, 아이들과 어르신이 함께 책을 읽고, 마을의 오래된 이야기를 기록하고, 청년들이 그 이야기를 영상이나 디지털 콘텐츠로 다시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독서는 개인의 취미에서 지역문화로 발전한다. 그리고 한 사람의 기억이 마을의 기록이 된다.
9. 읽는 사람은 걷게 되고, 걷는 사람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여기에서 아주 현실적인 문제가 하나 더 있다. 독서는 몸을 움직이지 않는 활동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좋은 독서문화가 사람을 집 밖으로 나오게 한다고 생각한다. 도서관에 가기 위해 걷는다. 책을 빌리러 간다. 독서 모임에 참여한다. 글쓰기 수업에 간다. 친구와 책 이야기를 한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서로의 글을 읽는다. 이것은 단순히 독서가 아니다.
생활의 리듬을 회복하는 일이다. 특히 노년에게는 이 작은 외출이 중요하다.
몸을 움직이고,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정보를 접하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 독서가 육체운동을 직접, 대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독서공동체와 도서관이라는 공간은 사람을 일상적인 사회활동으로 이끌 수 있다. 나는 이 연결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 읽기 → 외출 → 걷기 → 만남 → 대화 → 생각 → 쓰기.
이 하나의 선순환이 만들어진다면 독서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삶의 방식이 된다.
10. 결국 독서와 창작의 목적은 ‘더 오래’가 아니라 ‘더 잘 사는 것’이다
우리는 오래 사는 시대에 살고 있다. 100세 시대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그런데 나는 질문하고 싶다. 100세까지 무엇을 하면서 살 것인가.
단순히 심장이 뛰고 있는 것만으로 좋은 삶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삶에는 길이뿐 아니라 깊이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깊이를 만들어주는 것이 생각이고, 생각을 깊게 만드는 것이 독서이며,
생각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 창작이다. 그러므로 독서와 글쓰기는 인간의 생애 전체를 관통하는 문화적 건강관리라고 할 수 있다.
㈀ 어린아이에게는 세상을 넓혀주고, ㈁ 청년에게는 방향을 찾게 하며, ㈂ 중년에게는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 노년에게는 삶의 의미를 다시 발견하게 한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한 권의 책이 인생의 시기마다 다른 얼굴로 인간을 만난다. 그래서 나는 독서를 인생의 동반자라고 부르고 싶다.
그리고 창작은 그 동반자와 나눈 대화를 자기 언어로 기록하는 일이다.
11. 이제 우리는 ‘독서복지’를 생각해야 한다
나는 이제 우리 사회가 독서를 개인의 취향으로만 방치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① 독서는 교육이고, ② 독서는 문화이며, ③ 독서는 공동체이고,
독서는 정신건강의 자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지방자치단체도 독서정책을 단순한 도서관 운영에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
읽기와 쓰기가 결합된 생활문화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 어린이 독서 프로그램, Ⓑ 청년 인문학 프로그램, Ⓒ 중년의 삶 쓰기, Ⓓ 시니어 자서전 쓰기, Ⓔ 세대통합 독서 모임, Ⓕ 마을의 역사 기록하기.
이것을 도서관과 주민센터, 복지관, 평생학습관, 학교와 연결한다면 어떨까.
나는 상당히 큰 사회적 효과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는 사람은 질문하게 되고, 질문하는 사람은 생각하게 되고, 생각하는 사람은 타인의 삶을 이해하게 되고,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사람은 공동체를 더 따뜻하게 만든다. 이것이 독서가 사회를 바꾸는 방식이다.
맺으며 —
인생을 살리는 한 권의 책, 나는 오래전부터 문학을 바라보면서 한 가지 질문을 품어왔다. 문학은 인간에게 무엇인가. 이제 나는 조금은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문학은 인간에게 인간 자신을 돌려주는 일이다. 독서는 다른 사람의 문장을 통해 나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고, 창작은 발견한 나 자신에게 다시 목소리를 주는 일이다. 그래서 독서와 창작은 단순한 지식 습득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회복이다. 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아이에게 책 한 권을 건네는 것은 세상을 보여주는 일이고,
청년에게 책 한 권을 건네는 것은 길을 보여주는 일이며,
중년에게 책 한 권을 건네는 것은 잊었던 자신을 만나게 하는 일이다.
그리고 노년에게 책 한 권을 건네는 것은
“당신의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라고 말하는 일이다.
더 나아가 빈 종이 한 장을 건네며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당신의 이야기를 써보십시오.”
그 순간 사람은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 본다.
실패도 이야기가 되고, 상처도 문장이 되며, 사랑도 시가 되고, 기억도 역사가 된다. 나는 이것이 인간이 가진 놀라운 힘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과거를 바꿀 수 없다. 그러나 과거에 부여하는 의미는 바꿀 수 있다.
그리고 그 의미를 바꾸는 가장 인간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읽고 쓰는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말하고 싶다.
아이에게 책을 읽혀라.
청년에게 책을 건네라.
중년에게 다시 읽을 시간을 주어라.
노년에게 책과 원고지를 건네라.
그리고 모든 세대가 함께 읽고,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쓰게 하라.
그것은 단순한 문화사업이 아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일이며, 세대를 연결하는 일이고, 고립을 줄이는 일이며, 정신을 깨우는 일이고,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다.
우리가 건강을 이야기할 때 몸만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복지를 이야기할 때 돈만 이야기해서도 안 된다.
우리가 장수를 이야기할 때 수명만 이야기해서도 안 된다.
건강한 삶이란 몸과 정신과 관계와 의미가 함께 살아 있는 삶이다.
그리고 그 삶의 한가운데 책이 있을 수 있다. 책은 병원도 아니고 약도 아니며 그러나 책은 인간에게 질문하게 한다. 창작은 치료제가 아니지만,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언어로 표현하게 한다. 도서관은 병원이 아니지만, 사람을 집 밖으로 불러내고 다른 사람과 만나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독서와 창작을 ‘인생을 살리는 문화’라고 부르고 싶다. 사람은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다. 사람은 의미를 먹고 산다. 사랑을 먹고 살고, 기억을 먹고 살며, 이야기를 먹고 산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가장 오래 보존해주는 것이 책이다.
책을 읽는 사람은 세상을 한 번 더 산다. 책을 쓰는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한 번 더 산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우리가 한 사람에게 책 한 권을 건네는 것은 종이와 활자를 건네는 일이 아니다. 그 사람에게 또 하나의 세계를 건네는 일이며, 또 하나의 생각을 건네는 일이고, 어쩌면 또 하나의 인생을 건네는 일이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독서와 창작의 힘이다. 그리고 이 힘은 특정한 세대의 것이 아니다. 아이에서 노인까지, 배운 사람에서 배우지 못한 사람까지, 남자와 여자, 도시와 농촌,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
인간이 살아 있는 한, 읽을 수 있고, 생각할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쓸 수 있다. 그러므로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가 오기 전까지 우리에게는 아직 쓸 문장이 남아 있다. 삶이 끝날 때까지 읽자. 삶이 끝날 때까지 생각하자. 삶이 끝날 때까지 쓰자.
어쩌면 그것이 인간이 인간답게 늙어가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이며, 동시에
인생을 다시 살아내는 가장 인간적인 길인지도 모른다.
2026. 09.
대중문화평론가/ 칼럼리스트/이승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