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섭 칼럼

[언어의 정밀함과 영혼의 화학: 시(詩)는 왜 치밀한 과학인가]145

— 황금찬과 채수영의 유훈, 그리고 뷔용의 어둠 속에서 건져 올린 시적 이치

이분희 취재본부장 2026.09.03 09:12

 

[필자]

I.

서론
: 언어의 피돌기와 미학적 연금술

 

시는 흔히 막연한 감정의 발산이나 자의적인 상상력의 유희로 오인되곤 한다. 그러나 정통 문학의 미학적 지평에서 바라볼 때, 시는 그 어떤 학문보다 치밀하고 엄정한 구조를 지닌 '언어의 과학(Science)'이다.

한 편의 완성된 시를 구축하는 과정은 냉철한 이성의 정밀함과 뜨거운 감성의 온도가 극적으로 결합하여 새로운 정신의 형태를 창조해 내는 미학적 연금술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수학이 무결점의 숫자를 통해 세상을 구성하는 정교한 법칙을 증명하듯, 시는 시어(詩語)라는 최소 단위의 결합을 통해 존재의 진실을 증명한다. 낱말과 낱말의 단순한 병렬은 시가 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생명체의 혈관 속에 피가 순환하듯, 언어와 언어가 유기적인 '피돌기의 구조'를 형성하고 치열한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제3의 미학적 의미를 획득할 때 비로소 시적 이미지로 환생한다.

 

단순한 현실의 묘사를 넘어, 개별 이미지들이 물리적 결합을 이루고 그 결과가 '화학적 도약'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울창한 이미지의 숲이 완성된다. 따라서 시의 성주(城主)는 감상주의에 빠진 가벼운 언어에게는 결코 성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오직 냉철한 이상과 따스한 감성을 동시에 소유한 자, 언어의 치밀성을 이해하고 고독의 무게를 기꺼이 견뎌내는 시심(詩心)을 가진 자에게만 그 견고한 문을 허락하는 것이다.

 

II. 이천 문사원의 유훈: 스승 황금찬과 채수영 박사의 가르침

 

필자가 2008년 이천 문사원에서 한국 시단의 거목이었던 황금찬 시인과 문학의 깊은 이치를 설파하셨던 채수영 박사로부터 창작의 사유를 배울 때, 가슴 깊이 받들어 품은 원형적 질문은 바로 '시인의 마음과 함량'에 관한 것이었다.

스승들께서는 수없이 강조하셨다. 시가 단순히 문장의 기교에 머물지 않고 사랑과 구원의 노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창작자 내부의 '마음'이라는 모티브가 일정한 도덕적·미학적 함량에 도달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마음의 그릇이 비어있거나 야박한 자는 언어의 기술자가 될 수 있을지언정 결코 시의 중심에 다다를 수 없다.

 

"시인은 세상의 온도를 측정하는 온도계이자, 어둠 속에서 빛을 정류해 내는 프리즘이어야 한다.“

 

이천 문사원에서 들었던 스승들의 경구는, 시가 단순히 개인의 기분을 배출하는 통로가 아니라 존재를 투시하고 세상을 껴안는 사유의 정밀한 기계여야 함을 일깨워주었다. 시인이 갖추어야 할 마음의 함량이란, 세상의 외로움과 슬픔, 그리고 존재론적 비극성을 외면하지 않고 온몸으로 받아내어 정화할 수 있는 '영혼의 인내심'을 의미한다.

 

III. 어둠의 감옥과 프리즘: 프랑소와 뷔용의 역설

 

시는 어디에서 탄생하는가. 시가 작동하는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15세기 프랑스의 도둑 시인 프랑소와 뷔용(François Villon)의 비극적 생애와 서사적 궤적을 둘러볼 필요가 있다. 뷔용은 어둡고 차가운 감옥이라는 극단적인 절망 속에서 자신의 대표작인 『유언시집(Le Grand Testament)』을 썼다.

그의 시 전반부는 간수에 대한 저주, 배반당한 사랑에 대한 회한, 그리고 생의 무상함에 대한 탄식으로 가득 차 있었으나,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어머니, 친구, 그리고 자신을 지나쳐 간 인연들을 향한 해학과 야유, 그리고 진실한 사랑의 감정으로 승화된다. 참혹한 어둠 속에서 솟아나온 그 언어들은 훗날 프랑스 서정시의 위대한 개척 점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뷔용은 출옥한 이후 시를 버렸으며,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신비의 그림자로 사라졌다. 왜 그는 감옥 안에서 그토록 찬란한 빛의 시를 쓰고, 불빛이 환한 세상으로 나와서는 시의 눈을 감아버렸는가.

여기서 우리는 시 창작의 거대한 역설을 목도한다. 시는 상황이나 장소의 문제가 아니다. 시인이 자신의 전 정신을 집중하여 사물의 정중앙을 꿰뚫어 보는 '프리즘의 투시력'을 작동시킬 때 비로소 완성된다. 뷔용에게 감옥은 육신의 갇힘이었으나 사유가 극대화되는 집중의 공간이었고, 그 어둠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했기에 그의 회한과 슬픔은 서정시라는 빛으로 분산될 수 있었다.

어떤 시인은 시끄러운 시장통에서도 시를 쓰고, 어떤 시인은 고요한 음악 속에서 시를 대면한다.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픔과 그리움, 그리고 일상의 체험을 용해하여 언어로 환원해 내는 시인의 내면적 치밀성이 중요한 것이다.

 

IV. 수사와 꾸밈을 넘어선 무결점의 조련: 원로와 신인의 경계

 

시를 '과학'이라 부를 수 있는 또 다른 근거는 바로 텍스트의 구조적 완결성과 무결 점성에 있다. 오랜 경륜을 쌓은 거장의 작품과 지적 경험이 숙성되지 않은 신진 시인의 작품이 갈라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존재한다.

신진 시인의 글에서는 흔히 과도한 수사와 감정의 과잉, 그리고 시선을 끌기 위한 인위적인 장식들이 나열되곤 한다. 그러나 언어들의 결합이 미학적 개연성을 얻지 못할 때, 그 꾸밈은 시의 안정성을 깨뜨리는 '절뚝거리는 언어의 유희'이자 털털거리는 장애 요인으로 전락한다.

 

 

구분

과도한 감상의 시 (신진의 오류)

사이언스로서의 시 (거장의 명징함)

언어 구사

화려한 형용사와 과장된 수사의 나열

불필요한 감정이 덜어낸 절제된 핵심 시어

이미지 결합

자의적이고 파편화된 물리적 병렬

화학적 반응을 통한 제3의 미학적 의미 도약

서사적 구조

감정의 폭발로 인한 구조적 불균형

이성과 감성의 완벽한 조화를 통한 무결점성

독자의 울림

찰나의 자극 후 사라지는 일회성

영혼의 깊은 곳을 뒤흔드는 지속적 울림

 

비평가들이 오랜 습작과 몰입, 그리고 광범위한 독서와 경험의 소화를 강조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수많은 책과 인생의 비극을 소화해 낸 원숙한 시인의 언어는 흠결이 없다. 사물과 경험을 적재적소에 배합하는 장인 정신(Craftsmanship)이 결합할 때, 시적 풍모는 비로소 거친 흔들림을 멈추고 독자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는 정밀한 미학적 구성을 갖추게 된다.

 

V. 결론: 어둔 터널을 지나, 숲으로 향하는 노랫가락

 

필자 역시 지나온 삶의 궤적 속에서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는 듯한 우울의 그늘과 정신적 아픔, 그리고 어리숙한 고독의 시간들을 수없이 겪어왔다. 그러나 미치지 않고서는 참된 시인이 될 수 없고, 존재의 깊은 아픔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미학적 시각을 완성할 수 없다는 역설을 깨달으며, 무수한 정신적·물리적 책들을 파고들었다.

돌아보면 그 모든 어둠의 시간은 나를 파괴하는 형벌이 아니라, 언어의 치밀성을 벼르고 시의 사이언스를 완성하기 위한 거룩한 숙성의 통로였다. 나를 이끌어 준 황금찬 스승과 채수영 박사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그리고 어둠 속에서 빛을 포착하려 애썼던 치열한 독서와 습작의 나날이 없었다면 필자 역시 언어의 겉껍데기만을 만지는 자로 남았을 것이다.

 

시는 무한한 미학의 선율이다. 시의 밭을 일구는 일은 성실과 노력을 바탕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의 밭을 헤쳐나가는 작업이다. 참된 시인은 슬픔과 쓸쓸함의 한가운데 서 있을 때조차 마음 깊은 곳에 잃지 않는 밝은 표정과 웃음기를 품고 세상을 향해 다가가는 자다.

자신의 아픔을 정밀하게 다듬어 타자의 슬픔을 껴안는 거대한 숲을 이루는 것. 그리하여 언제나 노랫가락의 길을 따라 그 신선하고 따스한 문학의 숲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냉철한 이성과 뜨거운 감성이 완벽하게 결합된 ‘시의 사이언스(Science of Poetry)’가 우리에게 건네는 궁극의 구원이자 결론이다.

 

2026.09. 재 조명

 

 

[대중문화 평론가/칼럼니스트/이승섭]

[무전 여행 ]

 

이분희 취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