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글쓰기의 존재론]

― 인간은 왜 쓰는가, 그리고 글은 어떻게 인간을 완성하는가

조숙현 2026.07.19 15:43

 

 

[필자]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수많은 흔적을 남기며 살아간다. 발자국은 바람에 지워지고, 목소리는 시간 속에서 사라지지만, 글은 시간의 풍화를 견디며 존재를 증명한다. 그래서 글쓰기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존재의 증명이며, 인간이 자기 자신을 세계 속에 남기는 가장 오래된 방식이다.

 

말은 공기 속에서 흩어지지만, 글은 침묵 속에서도 살아남는다. 인간의 육체는 언젠가 흙으로 돌아가지만, 한 줄의 문장은 수백 년의 시간을 건너 다른 시대의 독자와 대화를 이어 간다. 공자의 『논어』도, 플라톤의 『국가』도, 단테의 『신곡』도, 셰익스피어의 희곡도 모두 글이라는 형식을 통하여 시대를 넘어 존재를 지속해 왔다. 결국 글쓰기란 시간에 저항하는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이며, 죽음을 넘어서는 정신의 형식이다.

우리는 흔히 글을 정보 전달의 수단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글쓰기의 본질은 전달이 아니라 발견에 있다. 인간은 글을 쓰면서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게 된다. 머릿속에서 떠다니던 관념은 문장으로 옮겨지는 순간 논리를 요구하고, 감정은 언어를 만나면서 비로소 형태를 얻는다. 그러므로 글은 생각의 결과가 아니라 생각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쓰기 이전의 사유는 안개와 같고, 문장으로 정리된 사유는 비로소 하나의 세계가 된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를 "존재의 집"이라 하였다. 이 명제는 글쓰기의 존재론을 가장 압축적으로 설명한다. 인간은 언어 안에서 사고하고, 언어를 통하여 존재를 이해하며, 언어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그렇다면 글쓰기는 존재의 집을 짓는 일이다. 문장 하나는 벽돌 하나와 같고, 단락 하나는 기둥 하나와 같으며, 한 권의 책은 한 인간의 정신이 머무는 집이 된다. 결국 글쓰기는 책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건축하는 일이다.

 

글을 오래 쓰다 보면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문장은 작가를 속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화려한 수사와 장식을 동원하더라도 사유가 빈약하면 문장은 금세 무너진다. 반대로 꾸밈없는 문장이라도 그 안에 깊은 사유가 담겨 있다면 독자의 마음은 오래 머문다. 좋은 문장은 기술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살아온 삶과 견뎌 온 시간, 그리고 끝없는 성찰에서 비롯된다. 문장은 인간의 인격이 남긴 지문이며, 정신이 만들어 낸 가장 정직한 초상이다.

많은 사람들은 글을 잘 쓰기 위해 표현을 배운다. 물론 표현은 중요하다. 그러나 표현은 꽃이고, 사유는 뿌리이다. 뿌리가 약하면 꽃은 오래 피지 못한다. 그래서 진정한 글쓰기는 문장을 아름답게 만드는 기술 이전에 인간을 깊게 만드는 과정이어야 한다. 독서와 사색, 경험과 성찰이 오랜 시간 축적될 때 문장은 자연스럽게 깊이를 얻는다. 결국 문체는 기교가 아니라 삶의 밀도이다.

 

글쓰기는 또한 자기 자신과 끝없이 대화하는 행위이다. 사람은 타인에게는 쉽게 거짓말을 할 수 있어도 백지 앞에서는 좀처럼 자신을 속일 수 없다. 문장을 쓰다가 여러 번 지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은 표현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진심과 마주하기 때문이다. 글은 세상을 향해 쓰는 것 같지만, 실은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을 향해 쓰는 고백이다. 그래서 글을 오래 쓰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부족함을 먼저 발견하게 된다. 글쓰기가 인간을 겸손하게 만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는 글을 노동이라기보다 수행(修行)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수행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반복과 인내 속에서 조금씩 자신을 다듬어 가는 과정이다. 절차탁마(切磋琢磨)가 옥돌을 깎아 보석으로 만드는 일이라면, 글쓰기는 자신의 정신을 끊임없이 다듬는 절차탁마의 연속이다. 한 편의 글은 수십 번의 퇴고를 거쳐야 하고, 하나의 사상은 수년의 침묵을 견뎌야 한다. 그래서 작가의 시간은 세상의 시간보다 훨씬 느리다. 그러나 느림 속에서만 깊이는 만들어진다.

 

오늘날 우리는 이전 어느 시대보다 많은 글을 쓴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은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생각의 깊이는 점점 얕아지고 있다. 짧은 문장은 넘쳐나지만 오래 남는 문장은 드물다. 즉각적인 반응은 많지만 깊은 성찰은 줄어들었다. 이것은 글쓰기의 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침묵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좋은 문장은 침묵 속에서 태어난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쓸 수는 있어도 남길 수는 없다.

글을 쓰는 사람은 언제나 독자를 의식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독자를 의식하는 순간 글은 자유를 잃는다. 독자의 환호를 기대하면 문장은 유행을 좇고, 평가를 두려워하면 사유는 자기검열에 갇힌다. 진실한 글은 독자를 만족시키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실한 글을 쓰면 독자가 그 글을 찾아온다. 위대한 문학은 독자의 요구를 따라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작가의 진실한 내면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종종 글을 씨앗에 비유한다. 씨앗은 땅속에서 오랜 시간을 견딘 뒤에야 싹을 틔운다. 글도 마찬가지다. 어떤 문장은 쓰는 순간보다 십 년 뒤에 비로소 그 의미가 드러난다. 작가는 씨앗을 심을 뿐이며, 그것을 꽃피우는 것은 시간이다. 그러므로 작가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조급함이 아니라 기다림이다.

 

한 권의 책은 종이의 두께로 평가되지 않는다. 그것은 한 인간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가를 보여 주는 정신의 연대기이다. 독자는 문장을 읽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삶을 읽는다. 그래서 좋은 책은 읽는 사람을 변화시키기 전에 먼저 쓴 사람을 변화시킨다. 글쓰기는 독자를 교육하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교육하는 행위이다.

결국 글쓰기의 존재론은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인간은 왜 쓰는가.나는 그 답을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인간은 유명해지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기 위해 쓴다.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정신을 남기기 위해 쓴다. 글은 존재를 과시하는 수단이 아니라 존재를 성찰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위대한 작가일수록 문장을 통하여 세상을 지배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무지를 고백하며 더 깊은 진실을 향해 나아간다.

 

오늘도 나는 한 줄의 문장을 쓰기 위해 수많은 문장을 버린다. 그 버려짐 속에서 문장은 더욱 단단해지고, 그 침묵 속에서 존재는 더욱 선명해진다. 글쓰기는 끝없는 미완성을 향한 여행이다. 완성된 문장은 있을지 몰라도 완성된 작가는 없다. 그러므로 글을 쓴다는 것은 한 권의 책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한 인간을 완성해 가는 일이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글쓰기는 기술이 아니라 존재이며, 직업이 아니라 삶이고, 기록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가장 고귀한 수행이 된다. 글은 종이에 남는 잉크가 아니라, 한 인간이 끝내 포기하지 않은 사유의 흔적이며, 시간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존재의 빛이다.

 

2026. 07.

 

대중문화평론가/칼럼리스트/이승섭 시인

 
조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