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란 무엇인가’라는 해묵은 본질주의적 질문은 수정되어야 합니다. 시는 책장 속에 고정된 박제된 명사(Being)가 아니라, 인간의 의식과 사물이 격렬하게 충돌할 때 비로소 ‘발생하는 사건(Becoming)’이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이 마주하는 일상의 사물들은 오직 ‘쓸모’와 ‘기능’이라는 효율성의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컵은 물을 담는 도구이고, 길가의 낙엽은 청소해야 할 쓰레기일 뿐이기에 사물의 존재 가치가 오직 도구성으로만 재단되는 비극적인 기술 문명의 시대에, 평론가와 시인은 그 쓸모의 사슬을 끊어내는 실존적 해방가로 복귀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인이 사물을 응시하고 언어의 그물을 던지는 순간, 사물은 도구의 외피를 벗고 비로소 자신의 순수한 존재를 드러내면서 시는 우리가 사물에게 일방적으로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사물이 시인에게 건네는 존재의 고백이다.
그러므로 시를 쓴다는 것은, 세상 모든 소외된 존재들에게 제 이름을 찾아주는 가장 성스러운 명명식(命名式)이다.
2. 언어의 육체: 추상을 구체로 바꾸는 시적 연금술
시는 사유라는 보이지 않는 유령에게 ‘언어’라는 단단한 육체를 입히는 과정이며 아무리 고결한 철학과 신념이 평론가의 머릿속을 맴돌지라도, 그것이 감각할 수 있는 언어의 뼈와 살을 얻지 못한다면 독자의 심장에 도달할 수 없다는 예기이다..
존재론적 시학에서 언어는 단순한 소통의 기호가 아니며 그것은 피가 돌고 온기가 느껴지는 살아있는 생명체이다. “나는 고독하다”라는 추상명사는 독자의 마음에 단 1인치의 흠집도 내지 못하지만, “겨우내 얼었던 눈물이 처마 끝에서 툭, 하고 바닥을 치는 소리”라는 언어의 육체는 독자의 영혼을 서늘하게 만든다
베스트셀러의 필살기는 바로 이 ‘추상의 구체화’에 있습니다. 신(神), 고독, 구원이라는 거대한 존재론적 담론 들을 길가에 핀 찔레꽃 한 송이, 이른 아침 뚝배기에서 피어오르는 김, 혹은 어머니의 굽은 손가락이라는 정직한 육체의 언어로 환치시키는 것이며. 그 연금술을 통해 시학 제5부는 독자들에게 단순한 이론서가 아닌,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실존의 캔버스로 다가서게 된다.
3. 부재(不在)의 현존: 잃어버린 것을 부르는 주술
존재를 탐구하는 시학이 도달하는 가장 심오한 경지는 ‘부재의 역설’이며 시는 눈앞에 있는 매끄러운 현실을 받아 적는 일기장이 아니기에 오히려 이미 떠나고 없는 것, 상실한 것, 그러나 내 마음속에 여전히 시퍼렇게 살아 숨 쉬는 ‘부재하는 존재’들을 소환하는 주술인 것이다.
타계한 존재에 대한 그리움이나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진 청춘의 기억은 물리적 공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과학과 의학의 눈으로 보면 그것은 단지 ‘없음(Nothing)’ 그러나 시의 영역에서 그 부재는 그 어떤 실물보다 더 무겁게 우리를 누르는 강력한 ‘현존(Presence)’이 되는 것이다
앞서 우리가 고찰했던 “살얼음 맨발인 지금, 내 몸 가득 초록을 물들일 것”이라는 다짐처럼, 시인은 지금 당장 손에 쥐어지지 않은 봄을 이미 현재의 시간 속에 살게 만드는 초월적 힘을 가지기에. 부재하는 것을, 언어를 통해 지금 이곳으로 불러들이는 능력, 그리하여 인간의 유한한 삶을 무한의 영원성으로 연결하는 것이야말로 시가 가진 존재론적 구원의 음성인 것이다.
4. 에필로그: 여백으로 증명하는 정신의 엘리트
결론적으로 시는 신이 아니지만,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는 범인(凡人)에게는 길 위의 돌멩이와 다를 바 없는 무용(無用)의 존재이며 시를 모른다고 해서 거들먹거리며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세상이다. 그러나 진정한 정신의 엘리트는 그 무용함 속에서 우주의 원리와 무아지경의 엑스투시(Ecstasy)를 읽어내는 사람이 시인 그 자체이다.
오늘 집필하는 제5부의 문장들이 소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지 못해 방황하는 수많은 독자에게 “당신의 무너진 행간 속에 이미 한 편의 시가 살고 있다”는 구원의 선언으로 울려 퍼지기를 기대하며 여백의 무게를 견뎌낸 언어가 어떻게 육체를 얻고 우리 앞에 서게 되는지, 그 위대한 존재의 풍경화를 오늘 멋지게 완성하겠다는 생각이지만 모르겠다. 한번 마지막으로 6부에서 최종 마무리하는 것으로 한다.
2026. 07.
대중문화평론가/칼럼니스트/이승섭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