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떡볶이 너머‘힙당동’… 신당동의 세 얼굴 ‘ · ·Hip’보고서 발간

무속 신앙에서 현대적 골격, 트렌디한 청년문화로의 진화 과정 기록

이승섭 연합취재본부 2026.07.07 13:07




서울시청 (서울시 제공)



[금요저널] 서울역사박물관은 조선시대 도성 밖 마을에서 근현대 도시로 이제는 청년문화의 중심지로 거듭난 중구 신당동의 역사·문화를 집대성한 2025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보고서 ‘신당동:··Hip’을 발간했다.

최근‘힙당동’ 이라는 별칭과 함께 감성적 카페·소품숍, 독창적 디자인 작업실이 들어서며 청년 세대가 새롭게 주목하는 지역인 신당동.

이곳의 매력은 최근의 유행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중층적 장소성을 지니고 있다.

조선시대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여있던 공간이 일제강점기와 광복을 거치면서 현대적 도시 구조를 확립, 서울에서 개성이 강한 동네로 진화했는지 그 궤적을 촘촘히 되짚었다.

신당동이라는 이름 안에는 ‘신을 모시는 집’을 뜻하는 ‘신당’ 이 숨어있다.

조선시대 광희문 밖은 도성 내 시신이 밖으로 나가는 통로이자, 병자를 구휼하던 ‘동활인서’ 가 위치했다.

도성 안 거주가 금지된 무당들은 동활인서에 소속되어 집단 마을을 이뤘으며 산 자의 병을 고치고 죽은 자의 넋을 달래는 치유의 공간으로서 그 기원을 새겼다.

갑오개혁 이후 ‘귀신 신’ 자는 ‘새 신’ 자로 바뀌었지만, 무당개울·무당다리·무당고개 등의 지명에는이 땅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본 보고서는 근대화라는 이름 아래 지워지기 전 신당이 품었던 ‘치유와 위로의 공간’ 으로서의 원형을 추적했다.

일제는 인구 과밀 문제 해결을 위해 조선도시경영주식회사 등을 통해 신당동 일대에 교외 주택지 ‘문화촌’을 조성하고 근대적 주거지로 재편했다.

조성 이전 신당동은 도성 밖 구릉지이자 울창한 숲, 공동묘지, 화장장이 뒤섞인 지역이었으나, 대규모 묘지 이장 사업과 격자형 도로망 확충이 추진되며 개발 기반이 마련됐다. 1930년대 말 제작된 경성안내도에도 신당정 일대를 가로지르는 전차 노선과 도로망이 나타나 있어, 도심 접근성을 끌어올리려던 당시의 청사진을 보여준다.

1930년대 조성된 앵구주택지와 장충단 주택지 같은 ‘문화촌’은 당대 최신 주거 트렌드였던 ‘전원도시’ 이념을 담았으며 일본인과 조선인 신흥 중산층을 위한 세련된 주거지로 빠르게 자리 잡았다.

광복과 6·25 전쟁은 신당동을 다시 뒤흔들었다.

해외 귀환 동포와 전쟁 피란민들이 도성 밖 첫 동네인 신당동 구릉지로 몰려들며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난개발의 위기에 직면했던이 지역은 ‘신당 토지구획정리사업’을 거치며 현대적 가로망과 주거 기반을 다졌다.

이때 다져진 도시의 뼈대는 지금도 신당동의 골격으로 남아 있다.

[Hip] 네 갈래의 골목, 그리고 세계를 끌어들이는 ‘힙당동’

신당동의 골목들은 행정가가 인위적으로 구획한 공간이 아니다.

광복 이후 거친 현대사 속에서 먹고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상인들이 부딪치며 형성한 ‘치열한 삶의 응축물’ 이다.

보고서는 신당동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네 곳의 특화거리를 입체적으로 담아냈다.

먼저 곡물상들이 밀집하며 형성된 쌀가게 골목인 ‘싸전거리’ 와, 1950년대 마복림 할머니가 고추장과 춘장을 섞은 독특한 양념으로 시작해 신당동의 대명사가 된 ‘떡볶이거리’ 가 대표적이다.

이에 더해 1950~60년대 판자촌 시절 주민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개미처럼 성실히 살아갔다는 뜻이 담긴 ‘개미골목’, 19세기 말까지 철공소 100여 곳 이상 밀집했으며 1907년 군대해산으로 쇠퇴기를 맞이했다가, 일제강점기에는 대장간 천국으로 불릴 만큼 철공업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철공소거리’까지 함께 담아냈다.

특히 이번 조사는 아날로그와 도제식 교육에 머물러 있던 신당동 봉제·의류 가공 산업에서 기술 혁신을 통해 패러다임 변화를 이끄는 신당동의 청년 세대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냈다.

로제패턴실의 여혜은 대표는 “한국의 패턴사들은 실력이 좋은 편이기 때문에 패턴업의 미래를 위해 제가 생각한건 3D하고 AI 쪽을 연결시켜서 활용하면 미래가 있다고 봐요. 효율성을 높여주고 진짜 사람이 머리와 감각을 써야 되는 것은 패턴사들이 하고 있죠. 이런 변화된 형태로는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며 현장의 변화를 전했다.

이와 함께 최근 신당동에는 서양권 관광객의 방문이 부쩍 늘고 있다.

신당동의 대표 상권인 떡볶이거리의 ‘마복림 할머니집’ 관계자에 따르면, 떡볶이거리는 일본·중국 등 아시아권 관광객이 주를 이루지만, 최근 해외 콘텐츠를 통해 신당동이 알려지면서 서양권 관광객의 방문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신당동의 압도적인 접근성이 자리하고 있다.

이번 조사는 현재 신당동에서 상권을 이끌고 있는 대표들의 인터뷰를 통해이 같은 입지적 강점을 생생하게 확인했다.

뮤지컬 펍 ‘쇼플릭스’의 곽현걸 대표는 동대문과 가까운 입지가 외국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핵심 요인이었다고 밝혔으며 패션 브랜드 ‘언더마이카’의 최승혁 대표 역시 편리한 지하철 교통망과 동대문과의 인접성이 일본·중국·미국 등 다양한 국적의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원동력이라고 전했다.

또한, 신당동 상권의 대표 주자인 ‘주신당’의 장지호 대표는 평일 방문객의 약 40%가 외국인이라며 다소 생소할 수 있는 한국의 십이지신 콘셉트 공간이 서양인들에게 큰 관심을 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병구 서울역사박물관장은 “신당동은 조선의 무속 신앙부터 근현대의 주거·상업적 역동성, 그리고 현재 청년들과 외국인이 열광하는 트렌디함까지 서울이라는 도시의 극적인 변화상을 단 하나의 동네에 압축해 놓은 거대한 박물관”이라며 “이번 보고서 발간을 통해 무심코 걷던 신당동 골목길 이면에 켜켜이 쌓인 깊은 역사적 가치를 온전히 바라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승섭 연합취재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