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칼럼

【상대성 이론의 비극】 : 파우스트의 탄식

[길 잃은 이성과 향기를 잃은 시대의 자화상]

수원본부장 손옥자 2026.05.11 17:33

 

[필자의 한가한 시간]

1. 파우스트의 이성, 혹은 인간의 구원

괴테의 『파우스트』는 지식의 정점에서 허무를 만난 한 지식인의 처절한 생존 기록이자, 신의 영역에 도전했던 인간 의지의 보고서이다. 중세의 마술이 신의 법칙을 훔치려는 비밀스러운 시도였다면, 괴테가 그려낸 파우스트의 갈망은 단순한 탐욕을 넘어 '인간 자아의 완성'이라는 숭고한 비극을 담고 있다.
통속극이나 민중본 속의 파우스트는 결국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빼앗기며 지옥으로 떨어지는 파멸의 길을 걷는다. 하지만 괴테는 달랐다. 그는 파우스트에게 끝없는 탐욕과 지식욕만이 아닌, 인간의 자아 완성을 위한 불굴의 도전 정신을 부여했다. 신의 경지에 이르려는 욕망을 현실 속 인간들과 접목하고, 그 안에서 구원의 가능성을 모색했던 것이다. 이 방대한 서사는 그가 죽기 1년 전에야 비로소 완성되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섭렵하고도 "늙어버린 지금,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탄식하던 파우스트의 절망은 오늘날 우리에게 '이성(Reason)'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객관과 주관 사이에서 길을 잃은 이성은, 때로 우리를 합리적인 길로 인도하지만, 때로는 정치와 이념이라는 갈래 길 속에서 우리를 오리무중의 상태로 몰아넣는다.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극단적인 편중과 이념의 대립은, 어쩌면 냉철한 객관성을 상실한 '길 잃은 이성'의 단면일지도 모른다. 진실조차 상대적인 것이 되어버린 이 비극의 시대에, 우리는 다시금 파우스트의 탄식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2. 사람에게서는 저마다의 냄새가 난다

인간은 저마다 고유한 인품의 향기를 지닌다. 이를 지성이라 부를 수도, 혹은 가식과 거짓이 뒤섞인 비릿한 악취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와 오래 교류하며 그가 발산하는 내면의 향기를 자연스럽게 맡게 된다. 다시 만나고 싶은 향기로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기심의 함정에 빠져 악취를 풍기며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존재한다.
공동체 안에서 진정으로 선량한 이들은 대개 자신을 앞세우지 않고 침묵한다. 의사 결정의 문제에 당면하면 그들은 공동의 선을 위해 자신의 몫을 양보하며 침묵으로 지나가는 경우가 다반사다. 반면에 자기를 앞세우는 사람은 항상 끈질기게 자기 욕망의 길을 확보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사욕을 완성하기 위한 모사의 치부는 언제나 진행형이다.
하지만 진리는 더디더라도 결국 제 자리를 찾기 마련이다. 시간이 흐르면 불합리의 그물막이 벗겨지고, 마침내는 외면당하는 일이 정도(正道)로 자리를 잡게 된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거울 논은 자신을 반추하며 내면의 오물을 건져 올리는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인간은 이성의 성을 굳게 지키려 해도 항상 반대의 길을 만드는 유혹에 직면한다. 죽는 날까지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하는 사명은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3. 오만한 지성과 추악한 허세: 지식인의 타락을 묻다


나는 정치가나 교수들에게서 '이기의 욕망'을 가장 많이 목격한다. 정치적인 이기주의, 학문적인 오만함은 당연한 일인 양 합리화되곤 하지만, 학문이 아닌 인간적인 오만은 결코 지식인의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남을 업신여기는 교수가 전부는 아닐지라도, 그 오만의 비율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높게 나타날 것이다. 특히 학문적 성과보다 보직이나 권력을 앞세우며 정도와 상관없이 걷는 이들일수록 그 치기(稚氣)는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정치와 학문은 정도(正道)를 향한 탑이어야 한다. 이는 도의적인 정치와 학문 속에 인간의 인격조차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열성으로 국민을 섬기고 연구에 몰두하는 자세에서 비로소 가치 있는 성과는 태어난다. 자리나 염탐하고 시기하며 질투하는 길에는 결코 정치와 학문의 길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이들의 철학이 '최선의 열심'과 '지성(至誠)'인 경우가 허다하다.
권력을 쥐었다고 국민을 무시하거나, 당략에만 앞장서며 연구는 하지 않고 허세를 부리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목불인견(目不忍見)'의 고통이다. 그들이 내뿜는 냄새는 가장 추악하고 더럽다. 빈껍데기뿐인 허세는 거짓이나 이권, 청탁 등 남을 밟아 만족을 세우는 방향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천박하고 경박한 이들이 높은 자리에 올랐을 때 벌어지는 비극을 우리는 주위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이성의 판단보다 감정이 앞서고, 내로남불과 선동으로 현실을 호도하는 광기는 백성의 한 사람으로서 자괴감만 들게 한다.

4. 에필로그: 향기로운 삶을 향한 고백

사람의 내음은 향기로워야 한다.
글을 쓰는 나 자신 또한 '작가'라는 이름의 욕심 아래, 나도 모르는 악취를 풍기며 살아가는 미물은 아닌지 늘 스스로를 검열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주의는 현실의 비극을 견뎌내게 하는 유일한 버팀목이다. 합리적 공유와 타인을 향한 배려가 실종된 사회가 얼마나 황량한지를 우리는 이미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이성의 논증들이 사람들이 갈망하는 궁극적인 가치를 내놓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으로 남겠는가.
향기로운 사람이 되는 일, 그것이 우리가 이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 지켜내야 할 마지막 자존심이자 내일의 희망이다. 괴테는 파우스트를 통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는 구원받는다"고 노래했다.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는 파우스트의 이성은 항상 뒤에서 천천히 생각하며 다가오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성이 잠시 마법의 유혹에 빠져 비틀거릴지라도, 다시금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거울을 닦는다면 우리는 반드시 그 구원의 빛에 도달할 것이다.
앞으로 나에게 주어진 임무가 있다면, 그것은 말을 줄이고 줄여 간결하게 행동하며 일상의 길을 걷는 것이다. 초라한 변명 대신, 살아있다는 의미를 부여하며 피할 수 없는 현실을 인내와 배려로 감내하고자 한다. 비난보다는 이해를, 오만보다는 겸손을 선택하는 그 좁은 길이, 결국 우리를 가장 아름다운 향기가 나는 사람으로 인도할 것이라 믿는다.
세상은 여전히 시끄럽지만, 그 소음의 행간을 뚫고 피어나는 작고 낮은 향기들에 귀를 기울여본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 숨 쉬어야 할 진정한 이유이자, 이 소란스러운 시대에 내가 글을 마치는 단 하나의 진실한 고백이다. 

 

2026. 05. 

 

대중문화평론가/칼럼라스트/이승섭

[나태주 시인과]

 

수원본부장 손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