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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Human】【파라다이스란】
조숙현 기자 | 승인 2020.05.23 05:10

자고나니 휴먼<사람>이 그리웠다

금요저널 주필/문화연구위원/이승섭수필가

왜인지 모르지만 바라보았던 치매 노모의 얼굴에서 한밤을 지새우고 난 뒤 머니가 된 나는 누구를 만나야 되는데~ 하니

휴먼(당신들)이 문득 생각이 나는 것은 과연 왜였을까?

고사 성어에 고기가 물을 만나야 비상한다고 하지 않던가? 아하 , 무릎을 탁치며 그래 바로 이거야 하며 Ego가 생성했다. 이재서야 해석이 되는 듯하다.

사는 일이 그렇게 신기와 이상과 환상과 결합된 무리가 이끌고 가는 늘 상상의 풍선 따라 높이 처다 보며 사는 줄 알았다. 물론 상상의 힘에 이끌려 이어져 왔음도 사실이다.

빛나는 로맨스도 친근했고 애절한 사랑의 로망도 추측하는 세월도 많았었다.

그러나 항상 허무하게도 속는 줄 알면서도 속고 속아 사는 것이라 체념을 뱉으면서도 또 다른 두리번거림을 지속하는 바보의 행진을 해왔지 않았나 하는 필자의 생각이다.

휴먼? 사람 당신들은 잠자고 있는 나를 깨우게 했어

산다는 것 누구나 꿈꾸고 권리를 가지는 것

누구나 유추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러나 세상사 어디 희망가만 부를 수 있겠는가?

오히려 절망 가만 자주 읊조리게 되는 아픔의 순간이 더 많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이다

자! 돌아보자

지난날들의 표상이 어떤 모습들로 흉상 되어 바라들 보는지

아니면 웃는 모습의 날들이 더 많은지

나는 후자일 것이다

왜냐하면 내면의 감추어진 자아가 늘 관조가 아니며 현실만 보고 사는 것이었기에 낙담하고 비판이 에고 속에 자리 잡고 있었기에 후자의 모습이 더 많은 품목이었던 것 일게다

명색이 글쟁이들이라서 그러한지 제막식을

못했음에도 앞을 보는 혜안에 있을 때 그저 나는 부끄럽게 잠시 동안이나마 윤동주100주년 제막식 거행이 되지 않아 되물었던 대답에 괜 시리 왔구나. 했던 좁디좁은 소갈머리가 되었지

않았는가? 그 누구도 내 마음을 모른다 할지라도 이재사 실토하고 고백 한다

잠시라도 그런 사고와 내면의 ego를 후회를 한다.

나는 대부분 슬픔과 낙마의 벌판을 넘은 화려하고 넉넉함보다는 초조함과 조바심이라는 현실 앞에 아픔과 고통과 신음으로 비빔밥이 된 눈물과 통곡의 계곡이 깊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유추로 가름해본다.

하여 휴먼 당신들이 생각난 것 일게다

순수하고 서로 공유하며 상대를 배려하는

당신들의 행거지에서 더욱 자아가 살아난 것 일게다.

이 또한 돌아보면 너무 아름다움이 펼쳐지는 이른바 융기의 케년(Canyon)이 전개되는 것이 돌아보는 일의 몫이 되었기 때문 일게다.

그 랜드 케년이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듯 험난한 휴먼인생 여정도 돌아보면 아름다운 삶의 감동을 주는 이름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미래 전진기지가 무슨 성과를 달성하는가의 마지막 구축이 문제일 것이다

예술을 한다는 글쟁이들은 이런 아픔과 슬픔을 위로하고 길을 인도하는 음악이 될 때 임무가 달성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의 고백의 엮음을 어떻게 감동적으로 전시할 것인가의 디스플레이라는 뜻이다

휴먼의 쇼윈도에 진열된 상품이라면 모든 것 가고 걱정은 하 많음이라

늘 싸이는 하루 갔다 왔다 지나는 하루 신명 잃고 근심 걱정이 무늬가 되어가고

이미 뇌성 잃은 마음이 돌아보는 휴먼이 모두 허무의 풍경화일 뿐 이었는데 아닌 것을 발견한 것이다 바로 휴먼 당신들이 있었기에 Ego가 바뀐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휴먼<사람> 속에서 남남이든, 친구이든

형제이든 내 돌아보는 눈에는 수채화일 뿐 인데 그래도 살아간다는 것은

아름다움으로 노래하는 예술이 필요한 소이(所이)일지도 모르지만 돌아보니 내 삶의 줄기도 관객이 없는 그림이라 그래도 사람팔자 뒤웅박이라 그 누가 알겠는가?

먼 훗날 어느 독자가 대박처럼 광맥을 줄 것인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휴먼(당신들)이 필자도 더욱 안아 줄 터이니 더욱 안아주어 주시게나. 누가 알겠는가?

아마도 신명이 나 굿판이라도 벌일지 -

금요저널 주필/칼럼리스트/이승섭시인

다 뒤웅박 팔자라 내 팔자소관이라 치부하지만 모두 자승자박이었음을 내 자신 돌아보고 과유불급은 아니었는지 뼈를 도려내는 는 각성과 내 자신 탄핵을 해보리라

시작이라고 반이라고 하지 않든가.

휴먼<사람>의 시선들이여

함께 공유하면서 함께 가보시지 않겠는가?

물론 때로는 즐겁다 때로는 슬픔이 오가는 교차의 전부를 조망<眺望>해 본다면 결국 우울한 슬픔에 물감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마음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그러한 휴면이 없기도 하겠지만 개인적 혼자서 깊이 필자를 볼 때면 사는 일이 고해<苦海>요 탄식이 궁극에 만나는 마지막 설명일 때 차라리 침묵으로 지나는 현자들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 속에는 모두가 내포되어 설명이 불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필자 또한 비평을 하며 시를 그리며 수필, 칼럼, 등 병행하고 있지만 세밀하게 말하면 시인이다 비평가다 수필가라는 명칭에 갇히고 싶지는 않다. 휴먼과 함께 공유하면서 실상에 내면에 들어 있는 내 삶은 오늘에 이르러 휴먼을 알게 되었을까 하는 부관참시 하는지도 모르겠다. 바로 자승자박 모두 내 탓이라는 점에서는 -

무게를 내려놓고 살아있다는 의미의 일부라 여기면서 매듭을 남기련다.

2020. 05. 24.

금요저널 주필/칼럼리스트/이승섭 작가

하동 탄소 없는 마을

조숙현 기자  thesejongtv@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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