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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의 이중성】『문화의 민주주의란』
조숙현 기자 | 승인 2020.03.27 04:00

최근 블랙리스란 말이 자주 언론에 올라오곤 한다. 물론 어느 정권에서나 명단이 자주 올라오곤 했지만 직접 당해보지 않고는 잘 모른다. 물론 지성이란 탈을 쓰고 매스컴이나 신문에 오르내리는 면을 자주 보곤 한다. 사실 어느 정권에서나 오피니언들이 가끔 식 좌우를 떠나 블랙리스트란 명단은 자주 들어왔던 터라 그다지 신경은 쓰지 않으나 그래도 이 사회를 균형감각으로 이끌어 달라는 오피니언들의 지성의 탈은 분명 자리 잡아야 할 것이다.

금요저널 주필/칼럼리스트/문화연구위원/이승섭평론가

특히 문화예술의 특성은 도움이 필요한 예술분야의 생명줄이 되기도 한다. 이탈리아의 메디치가 르네상스 시대의 정점을 이루는 사건은 분명하다. 다시 말해서 피렌체 공화국의 유력가문이며 부자였던 코지모 데 메디치가 당주였을 당시 프랑스 정부도 차관을 빌리러 올 정도의 부를 축적하였지만, 정치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예술과 학문에 거액을 들여 지원한 일화는 시대를 넘나드는 업적을 이루었던 것은 사실이다. 터키에 약탈당하는 그리스의 고서와 예술품을 수집하여 자기 집의 후원<後園>을 장식하는가 하면 여기서 유명한 미켈란제로, 레오라드로 다빈치, 도나텔로 등의 쟁쟁한 예술가들이 머물면서 작품 활동을 했지만 간섭함이 없이 다만 “좋군”이 전부였다고 한다. 그가 가난한 도나텔로를 무척 아끼는 나머지 일정한 수입을 위해 자기의 포도밭을 주었으나 신경이 쓰인다고 반환한 도나텔로 또한 위대한 정신의 에술가 였다고 보는 것이다.

그의 손자 로렌초 데 메디치에 이르러 르네상스의 전성기를 이룬 가문의 업적은 예술이 지원을 어떻게 하는가의 따라 갈림길이 달라진다는 모범적인 사례로 오늘날까지도 회자<膾炙>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른바 기업으로부터 모금하여 예술을 지원하는 메세나라는 명칭이 있었지만 미미한 꼬리뿐인 이름이 지금도 있지 않는가?

예술가는 수입이 없을 때 참담한 지경을 감내하면서 오로지 예술의 혼을 불태우는 작업을 계속하는 속성이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구걸을 일이 아니라 메디치 가문처럼 아무런 간섭없이 지원하는 일은 마치 가뭄에 단비 같은 창작열을 고취하는 일이기에 국가적으로도 의미가 다대할 것이다.

만약 세종대왕이 지금 살아서 정치를 하고 있다면 오늘의 한국문화예술이 어떻게 육성할 것인가 사뭇 궁금하다. 따지고 보면 감시대상명단에 원조는 김영삼 정부 출범과 동시에 시작되었다고 본다. 당시 청와대 교육문화사회수석의 임명된 김정남으로부터의 원조가 아닐까

혹독하고 엄혹한 군사정권시절에 억울한 일들이 줄줄이 엮어 인권을 억압한 당시를 지나면서 예술분야에도 민주화에 공헌한 일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이때부터 전교조의 횡포와 민주노총의 변질에 대한 길이 어긋나는 시발점이 되었다는 뜻이다.

이러한 기류가 김대중 정부에 와서 날개를 달게 되었고 80년대엔 순수와 참여라는 이분법의 대결이 점차 역전되는 시기로 접어들었다고 보는 것이다. 당시의 보수라는 중심의 예총의 인원을 8이라고 한다면 당시의 참여<민중>계열의 숫자는 2라는 인원비율의 큰 차이가 점차 역전으로 대우를 받는 시대로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기류가 노무현의 시대로 넘어 오면서 거의 등등한 혹은 역전의 기막힌 문화 점령군의 기세로 이어지게 되는 정점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나라 문화 상층부를 점령한 좌파예술그룹 = <창비>와 <문지>등의 일군의 부류들이 자기들만의 독식 잔치를 거의 이명박 정권까지 영향력을 행사 했다.

다시 말한다면 우리나라 문화와 일부 사회현상에 소수<小數><좌파>가 다수<多數><우파>를 이끌고 가는 불합리의 거대한 문화 권력의 시대가 지금까지 지배를 해왔다고 보는 견해가 맞을 것이다. 이 정점에서 창비가 자리했고 군림<君臨>했다는 엄연한 모순이 사실인 것이다.

박정부에 와서 이런 적폐의 대한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누가 뭐래도 사실일 것 같다.

《창비》라는 거대한 출판, 문화 권력이 많은 정부 지원을 받았고 특혜를 누린 것은 부정할 수 있을지 – 백00씨는 가감 없이 말해야 할 것이다.

비유를 한다면 어느 교수가 지적했듯 재벌 삼성그룹에 정부 돈을 지원하는 것과 같은 이치의 불균형에 대한 문제는 밝혀져야 할 일이다. 지금까지 《창비》가 정부로부터 받은 수혜를 따지면 곧 알게 되는 문화지원 독식의 문제는 밝혀질 것이다.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 거의 동일한 일이 비일비재 문제 =

민주노총의 인원과 대척그룹의 노조와의 숫자나 전교조선생이 아닌 숫자 분포 또한 좌파 예술 그룹의 숫자 분포와 아주 유사한 점에서 불균형의 문제가 한국사회의 전반적인 편견과 억지 혹은 이중성 아니면 비민주라는 간판으로 진행형이었음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정말 솔직히 말한다면 가장 민주라는 말을 많이 쓴 그룹은 가장 비민주적인 독선의 간판을 걸고 오로지 “개구리 떼가 노는 연못”을 연출한 것이 지금까지의 우리 사회의 풍경이라는 주장은 가히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필자는 이점에서 80년대 이후 민중문학은 문학성이 없고 정치 에피소드로 명맥을 이어온 사람들의 문학 행위를 비판했다.

문인은 오로지 작품으로 그의 사상을 말하는 점에서 자유가 주어이지 정치적인 메시지로 문학을 포장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지론이다.

때문에 당시 김지하 선생의 문학은 문학성이 없는 혹은 고은선생조차도 그런 함정에서 허우적 거린 사실은 지적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야기라는 譚詩나 인물 시로 편벽된 역사 쓰기는 엄정한 문학의 어긋난 길일지 모르겠다. 또한 두 분은 1985년 『애린』 『전원시편』등 문학 원점으로 돌아간 것까지 낮추는 일이 아닐까?

오로지 문학은 문학 속에서 발언하는 일 =

톨스토이나 튜르게 네브의 문학은 러시아 농민혁명의 도화선임을 예로 든다면 설명이 쉬어지지 않을까 한다.

아직도 우리 현대사 문학은 늦지 않았다.

이런 불균형의 문제는 간과 되면서 진행되는 일은 잡아 주어야 한다.

정치나 경제 분야와는 달리 문화라 하는 것은 아니 문학이라 하는 것은 한번 잘못 들어가면 오랫동안 영향력이 지속되는 점에서 문학의 일방적인 독주는 이제 틀을 잡아 주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적시할 것은 어느 국가나 이른바 감시대상 조짐의 일들은 있었다는 사실이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모스크바 외곽의 오두막에서 은둔하면서 집필한 유일한 장편이자 노벨상의 <닥터 지바고>는 사회주의 작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작가 동맹과 소련 당국으로부터 끊임없는 감시를 받았고 1987년에야 블랙리스트의 족쇄에서 벗어 날 수가 있었다.

또한, 출판 금지된 <암 병동>과 <연옥 1번지>를 쓴 솔제니친도 탄압을 받아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했고, 탄압의 검은 누명의 굴레를 벗어난 작가였다.

금요저널 주필/문화연구위원/칼럼리스트/이승섭평론가

어둡고 심각했던 과거의 잘못을 무조건 덮고 오늘의 허물만을 과도하게 비난하는 일은 바로잡아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심각하게 숙고하고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사려가 필요한 소이<所以>가 오늘의 아우성 =

너무 일방적으로 몰아가는 매스컴의 민낯은 현실을 말해 주는 것 같아 어디에 줄을 서야 할지

부끄럽기만 하다.

2020. 03. 27.

금요저널 주필/문화연구위원/칼럼리스트/이승섭작가

60년만에 되찾은 수원시 만석거

조숙현 기자  thesejongtv@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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