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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매<遇昧>한 직진】〚공유하고 양보하는 정치〛
최미자 기자 | 승인 2020.01.17 04:00

인간은 무엇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묻고 생각을 해본다면 해답은 모두 다를 것이다. 세월이 흐르는 대로 사는 인간도 있으며 또는 자기의 목표를 설정하여 외길을 걷는 사람 아니면 누구를 의지하고 그 사람을 동경하면서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전자와 후자 모두 의미가 크게 다르겠지만 살아가는 일상은 모두가 엇비슷할 것이다.

금요저널 주필/문화연구위원/칼럼리스트/이승섭작가

허나 삶의 가치를 묻는 해답이라면 신념과 의지를 갖고 목표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의 경우는 높은 가치관과 뚜렷한 목표 설정이 있기에 살아가는데 신명이 나고 삶의 점수를 받을 것이라 보는 것이다.

물론 의지와 신념의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일 것이다. 소통의 흐름은 서로간의 소통이 고르게 전파력을 가질 수 있다. 소통은 막히는 것이 아니라 동, 서, 남, 북으로 갈 수 있는 길이 많다면 신념의 줄기는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공유하고 공감하게 된다.

우리는 문학 역사를 들여다보면 이광수선생, 최남선선생은 문학인들의 존경과 우러름을 받는 인물인 반면에 춘원은 끝까지 자신의 소신을 지키지 못하고 일제에 굴복한 결과로 그의 문학 이론은 훼손된 것뿐만 아니라 불명예를 가졌다.

그가 존경했던 안창호나 심지어 톨스토이와는 다르게 평가를 받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독립선언문문을 쓴 육당은 34인으로서의 사인을 `나는 학자로 남고 싶다´는 명분으로 거절 했을 때 이미 지조와 신념이 없는 사람으로 일탈(逸脫) 되었던 것이다.

반면 끝까지 저기의 소신을 지킨 이육사나 한용운의 경우와 다른 평판의 길은 결국 삶의 방법을 운위 하는 일과 같을 것이다. 비근한 예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왜냐하면 살아가는 길이 곧 생각이고 그 생각이 모아져 일생의 가치를 나타내는 이름으로 끝까지 남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건이 따르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A.토스카니니는 ´ 신념은 의지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 라고 설파한 것도 신념과 의지를 말한 것이리라, 그러나 아무리 굳은 신념이라도 품고만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아무튼 대상(代償)을 치르더라도 죽음을 걸고서라도 반드시 자신의 신념을 발표하고 실행한다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가 비로소 최초의 신념에 생명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라는 말에 긍정의 박수를 치게 된다. 행동이 없는 신념은 결국 죽은 사람과 같은 것이라면 행동의 양식은 곧 정신의 가치를 피력하는 일로 진전, 전진이 되어야 한다.

인간의 행동에는 시련이 따라올 것이다. 이 검은 그림자는 늘 떨어질 줄 모르는 흡인력으로 다가 오는 걸음 소리가 없지만 때론 두려움을 줄 수도 있어 항상 깨어 있음을 요청하는 메세지는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어야 한다. 이런 긴장은 수시로 문을 두드리면서 앞만을 가리키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자칫 간과(看過)하고 지나칠 수 있기 때문에 앞을 주시해야 할 의무가 있기에 긴장의 끈이 따라 붙는다는 점도 발생 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신념과 의지는 일정한 방향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되는 것이다.

이리 저리 휘둘리는 생각의 흐름이 아니라 가야 할 곳을 정하고 그 곳에 이르려는 생각이 공고할 때 정신의 길에 밝은 불이 켜져야만 비로소 기능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때문에 신념과 의지력은 정신의 불을 켜는 일과 다름이 없는 비유일 것 같다.

나라는 존재는 끝까지 나의 주인공이고 나를 유지하는 책임을 가져야할 때 의무가 빛나는 가의 여부를 결정하는 길이 달라진다는 것은 곧 소신의 문제로 압축되는 것이다.

사실 지킨다는 것은 수성(守城)의 일이지만 성을 지키는 장수는 오히려 공격하는 장수보다 더 어려울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공격은 다양한 방법이 동원 되지만 지키는 일은 오로지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고 더불어 어렵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수성할 것인가의 여부는 곧 성공적 방어냐 아니면 함락인가의 갈림만이 있을 수 있고 다른 여지가 없기에 여기서 승리라는 말에 대한 갈림 곧 공격에서 성공 했다면 영토의 확장을 기할 수 있지만 반대로 수성의 임무에 실패 했다면 모든 것을 바쳐야 하는 패전의 운명을 감내할 때 비극이 따라올 것이다.

그러나 고집과 아집은 신념과 의지력은 분명히 다른 것이다. 보편적으로 정당성을 획득하는 가치일 경우에는 소신, 신념, 의지력이 되지만 그렇지 못했을 때엔 쓸데없는 고집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되기 때문인 것이다.

점점 한살 한해 두해 나이가 먹어 가면 고집이 왕성해지고 사리 분별이 어둡게 되는 이치는 정당성에 대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항상 소통의 문제 앞에 신념과 의지력은 노출 된다는 인식이 중요한 것이다.

다시 말해 정상적인 판단이 기초 했을 때 비로소 옳은 길을 말하고 선택하는 기준이 된다는 상징성의 문제가 실현되는 일이 된다. 인간은 어느 때나 밝고 환한 정신이 아니라 때로 우매(遇昧)한 구름이 가리는 경우가 다분하고 그럴 때 그릇된 선택이 닥아 온다는 경계심이 필요한 것이라는 것이다.

고)황금찬선생/이수아평론가/이승섭주필

 결국 의지와 신념은 문학에서도 중요한 줄기이고 필요한 메뉴라는 뜻으로 해석하고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고민하는 일이 다름 아닌 표현의 주요 과제라는 의자와 신념은 정리 될 것이다.

인간은 늘 의지와 신념 없이 속이고 속으며 배신하는 일들이 비일 비재 하고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하는 모습을 보면 역겹다고 할까, 신념, 의지도 없이 부역하는 것을 보면 한심하기 그지 없다.

자기 말에 책임을 지지 못하는 말장난을 하는 것이 그네들의 입지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치인들이 국민을 따라 오는 시대, 참으로 이해 불가이다. 서로 양보하는 미덕이 부족한 요즘 시대에 서로가 공유하고 양보하는 신념, 의지로 우리 시대를 열어 가면 어떨까?

2020. 01. 17.

금요저널 주필/문화연구위원/칼럼리스트/이승섭 작가

최미자 기자  thesejongtv@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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