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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법의 시대인가】『변증법의 강변』
이승섭 기자 | 승인 2019.09.17 05:00

민주주의는 이성과 자정 능력이 있으며 상생할 수 있을 때 꽃을 피우는 것이라 한다.

이성이 꽃이 피우고 다수가 지배하는 판세를 만들고 상대의 의견을 받아들일 때라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작금의 시대는 어떠한가.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아집과 상대를 무시하는 패권적인 사고가 판을 치고 선동하고 억지를 포장하는 불합리에 이제 신물이 날 정도가 아닌가.

사실 불통이 앞서가는 시대 독선이 판을 치는 시대 속에서 살고 있는 듯하다.

나는 옳고 너는 타도의 대상임을 억지로 강변한다면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양비론이 팽팽해질 때 사회는 정치적인 색체의 따라 독선과 불합리의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며 암울한 미래만 있을 뿐이다.

금요저널 주필/회장 이승섭 시인

언제부터인가 자유민주주의는 사라지고 편법과 거짓만이 앞세우는 정치를 볼 때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현상이다. 빈자일등(貧者一燈)의 민심의 촛불이 혁명이라는 본질의 호도가 되며

이른바 선동 지도자라는 사람들의 눈치 보기는 이미 도를 넘었고 마치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시민권을 가진 자들이 다수결 원칙에 정치적 결정을 했던 방법이 촛불혁명정부라는 함성을 지르고 있다.

참으로 우려스럽다. 대중은 이성보다는 감정이 지배하는 경향으로 흐르고 선동의 위험이 내재되어 그 선동이 중심세력을 이루고 권력을 쟁취하려는 위선자들의 위험이 증대하는 점에서다.

어찌 보면 국민은 이런 선동가들에 의해 의사(意思)의 길을 만들어 줄뿐이다.

노동계, 문학진영, 교육진영 등 유체이탈화법으로 모두가 한국사회를 지배한다면 악착(齷齪)한 그룹들이 중심처럼 행동하고 권력 패권을 잡으려는 암담함 지경이 진행형인 것도 사실인 것 같다.

과연 순수로 시작했던 어디로 가고 기득권 세력이 되어 정치를 하고 있는 면면을 볼 때 민중세력에 제도적인 장치는 없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민중은 어찌 보면 이러한 현상을 선동가에게 의사(意思)의 길을 헌납하는 우직스러운 일들을 쉽게 깨닫지 못하는 이유에서는 도무지 이해 할 수가 없다.

정치는 이런 불합리를 바로잡는 일이 정책이 되어야 하지만 사회의 일방적인 통행에 어쩜 가는 길이 더욱 짧아지지 않을까 하는 현실에 안타까울 뿐이다.

불균형의 가치는 오래가지 못한다. 이른바 보수와 진보라는 구별이지만 이런 극단적인 구분이라 합리성을 갖는 것은 아닌 것이다.

왜 그런고 하니 이솝우화가 실험되고 증명된 북한을 정책으로 아량을 베풀었지만 독재의 사슬을 벗기는커녕 기울어지는 북한을 회생하는 역할의 핵을 도왔으니 이는 문제가 되도 한참을 기준을 넘는 아니 아무 소득도 없는 계산서에는 허무할 뿐이다.

금요저널 주필/회장 이승섭평론가

신주처럼 떠받드는 세력이 되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아무 말도 못하는 현실에 아직도 한국자유민주주의는 잣대가 없으며 기준이 없다는 뜻에 한심할 뿐이다.

작금에 홍위병들의 폭거가 지금도 자행한다는 것에는 부인하기 어려울 것 같다.

문학적으로 볼 때도 독점과 아집으로 이 현실을 이끌어 나간다면 정말 민란이 일어날 듯 하다. 황색 저널리즘과 소리꾼들과 짝짝 쿵으로 호도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악의 축(軸)으로 매도하는 일이 현실정인 것이다.

홍위병들의 전횡은 까맣게 묻어두고 바로잡으려 하고 있지만 방법과 수단이 아닌 것이다.

정치계나 교육, 노동의 현장 또한 눈치 보기의 전전긍긍으로 지나고 있지만 이것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다수의 국민들은 그저 말없이 끌려가는 일이 대다 수인이라는 것을 왜 알지 못하는가.

지금의 현실을 이 정권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며 국민의 의한 국민의 정치를 해야 할 것이라는 것을 직시하여야 한다.

국민은 어쩔 수 없이 정치적인 행위 속에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하겠지만 비극의 도가 높아질수록 불만은 증폭하여 제도의 변화를 갈구하는 형태로 호소하는 일과 누적의 병폐 앞에서는 지도자를 불신하거나 변화의 수순 -

혁명을 선택하는 은밀한 일이 행동으로 이어질 때 매듭은 풀 수가 없는 것이다.

크레인 브린톤의 『혁명의 해부』에서 혁명의 최초 단계의 논문에는 소요, 갈등, 그리고 불합리에 따른 불만이 겹치는 요소들이 모아져서 혁명은 시발을 마련하는 것이다.

영국과 불란서, 러시아, 미국의 혁명에 대한 해부 중 –러시아 혁명은 페트로그라아드에 있어 가두소요 『우리의 【촛불집회】를 가지고 시작했다 여기서 폭력행위가 로마로프 왕조를 무너트리는 계기로 혁명의 시발이 유효 해지는 것이다.

또한 혁명은 자연 발생적이나 계획적이냐의 구분을 논리로 전개한다.

이승섭 평론가 금요저널 주필/회장

한국의 2016년 섣달의 혁명 – 촛불이라는 빈자일등(貧者一燈)의 상징이 거대한 권력을 일거에 약화 시키는 상징은 어느 나라의 혁명사에도 없는 이름으로 빛나지만 작금의 상황이 같은 길로 가는 것 같아 불안할 뿐이고 또한 그쪽으로 가는 길인 것 같아 참담할 뿐이다.

아무튼 자고로 우리 사회를 지탱해온 주도층은 일반 백성이었고 이른바 무지렁이들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라 나라가 위태로울 때 들고 일어난 국가 지주(支柱)는 백성들이었으니 많은 외침과 외환에 수호의 방패막이였다. 이들은 기회주의자들도 아니고 내 할 일 다 하면 군주가

무슨 대수냐의 태도로 나라를 지키려 했다. 임진, 병자, 동학, 등등 지도층이 삼십육계 하드라도 그 자리를 피흘려 싸운 백성들이 아닌가.

심지어 을사오적 중 1명을 제외하고 모두가 과거 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이고 나라를 팔아먹는데 그들 달관의 혀는 놀라울 만큼 합리적이었으니 말이다.

어둠을 밝히는 촛불의 순수를 아전인수 하면서 정치 놀음으로 지기화 하는 정치꾼들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촛불위에 올라탄 기획 꾼들의 높은 목청에 이제 찬물을 부어야 할때이다.

이제 우파의 문학인들이 정신이 바로 설 때 작품 또한 빛나는 이름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학은 오로지 곧음이기 때문이다.

사실 권력은 무상하다고 말한다. 이 말의 깊이는 권력의 맛을 한번 들이면 권력의 맛을 추종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여 권력의 맛은 좋은 것만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누구나 우뚝 서기를 원하고 남보다 앞서 누리는 비단 고매한 사람만은 아닌 것 같다.

장삼이사(張三李四)가 그렇고 모든 사람은 정작 권력에 굴종하고 아부하며 또 그 맛을 자랑하는 허세가 있기는 한다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올라서서 무엇을 어떻게 나라를 운영하려고 하는 것인지 자못 의문스럽다.

금요저널 주필/회장 이승섭시인

나는 우리나라 교수들의 3/2는 이런 외도의 생각에서 자기 본업을 망각하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 다소 과장일지는 모르나 자기를 모르고 남의 장단에 자기를 맞추는 일은 바보의 일이지만 세상 모두가 그런 생각에 솔깃한 것도 부인 못할 진단일 것이다.

어쩌면 자기도 모르기 때문에 남의 그릇에 침을 흘리는 일이 우리나라 지식인들의 현상이라면 정신의 위기이며 국가의 위기가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위선과 천박을 넘어 얼굴에 철판을 깔고 거짓으로 일관한다는 것에 참으로 참담함이다

아마도 생리적으로 구분되는 인간의 문제가 아닐까라는 점을 부연(敷衍)하면 자고로 권력에 심취하여 패망한 존재들은 부지기수이지만 이 교훈을 책에 들어있는 것으로 알 때 자기도 모르는 불행에 빠지는 일이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을 진데 설사 가장 높다는 권력에 올랐다 하드라도 언젠가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일은 필연인 것이다.

이 필연 앞에서 후회하는 사람은 많지만 다시 되풀이 되는 일이 권력의 맛에 심취된 뒤엔 비극을 경험할 때, 비로소 가기 성찰의 문을 열고 옳은 말을 시작하는 것이다.

권력은 권불십년이라 하지 않던가.

동진과 송나라 때의 시인 도연명은 겨우 29세에 제주(祭酒)가 되었으나 벼슬에 견디지 못하고 물러나 고향에서 쟁기를 갈면서 농사를 지며 연명을 하다 63세에 운명(殞命)한다.

그의 《귀거래사》또한 자유정신과 전원 속에서 끝없이 펼쳐진 정신의 깃발은 뒷날의 모범이 되었으니 『고금 은일(隱逸)시인의 종(宗)』의 칭호는 영생의 길을 찾아 이름을 얻은 시인이다.

그가 영의정 등 높은 벼슬을 위해 헌신했다면 당대엔 호사와 편안함을 얻었지만, 영원한 생명의 시(詩)는 접근하지 못했을 것이다.

기실 죽어서 이름을 얻는다는 것도 따지면 허무한 일이지만 자기만족을 위해 선택했다는 점에서는 빛나는 이유가 될 것이다.

선거철이 닥아 오니 우후죽순으로 이름을 알리려는 사람들이 메뚜기 튀듯 여기저기 프랭 카드가 난립이다.

사실 이 튀는 일이 자기 이름을 알리는 방법이고 이를 위해 더욱 볼륨을 높이는 일상이 우리 사회에서는 쉽게 보는 일들이고 또 권력이 바퀴면 이 사람들이 어김없이 무슨 자리에 이름을 등재한다. 그러나 화려는 짧고 허무는 길 것이라는 되풀이 예는 실컷 보아왔다.

사람 같은 사람은 숨고 위장과 위선에 있는 사람만이 메뚜기 튀듯 여기저기서 튀는 현수막에 비웃음만 나온다.

사실 우리는 북한과 관계에 금으로 그은 DMZ 또한 남북의 중심을 이루는 강이다.

더욱 복잡한 셈법은 위로는 중국과 러시아의 무게를 그리고 아래로는 일본과 미국이라는 대치의 상황이 엄정하다는 사실이지만 사다리의 혹은 강의 기능을 어떻게 운용하는가의 여부는 위의 무게와 아래의 무게를 평형으로 삼을 수 있는 지렛대의 역할이 있다는 뜻이다.

이는 지렛대의 중심을 잡는 우리의 역량이 있어야만 가능한 셈법인데 지금 우리는 현재 어떻게 운용하고 있는지 -

그런데 아직도 어리석은 북한을 추종하는 자들은 퍼주기를 못해 안달이 나고 있으며 북한에게는 말 한마디 못하는 현실에 있다는 것이다.

하여 우리는 더욱 강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늘, 해상, 육지를 모두 해체 한다니 -

우리가 평화를 지키기 위한 수단은 우리의 중심에 두어야지 북한의 은혜를 기다리는 집권자들의 어리석음은 헛된 공론자의 취한 –

민족의 운명을 비극으로 끌고 가는 바보들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너무나 우려가 된다.

지렛대의 중심을 잡을 때 균형의 평화가 비록 실강의 운명이라 하드라도 막강한 균형추의 역할이 감당되기 때문이다.

강하면 물러난다는 진리는 항상 유효한 것이다.

그리고 막강하면 누구도 덤비지 못하는 것 또한 동물의 세계만의 경우는 아닐 것이다.

미국으로 중심으로 한 세력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판도의 세력 사이에서 끼어있는 신세의 우리나라 -

북은 핵을 가짐으로써 발언권을 강화하는데 우리는 그 것을 막는 사드 배치하나 어정 버정으로 지나는 처지가 현실의 운명이 아니겠는가.

역시 북한을 추종하는 자들의 후예는 북에 무엇을 줄까를 고민하고, 말하고 있지만 북의 태도는 오히려 오불관언의 오만으로 대하는 데도 모자라 대화, 돈, 식량을 줄 터이니 대화를 물라고 구걸하는 낚시꾼의 처지니 참혹하기만 하다.

우려가 현실로 우려가 되는 상황을 이해 못하는 우둔한 집권자들의 머리들이 권력의 정점에서 나라를 이끌고 있어 위태롭다. 관이 없는 자들이다.

여기서 이런 처지를 이해하고 살아야 하는 방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지도자의 탁월성이지만 우리에게 그런 탁월한 능력을 준 지도자가 희소하다는 점에 안타깝다는 것이다.

이승섭 작가 금요저널 주필/회장

내가 철들어 살아오면서 60년대에서 지금까지 중에 능력의 지도자는 결코 만족으로 나타난 지도자는 별로인 것 같다.

자유민주주의 옷을 입고 선전하는 자들치고 비민주의 행동만을 보아온 모두 -

여기서 진행형인 국민의 운명은 변증법들의 위선자들의 의해 항상 불안하고 초조가 정답이라는데 슬픔만이 있을 뿐이다.

더불어 신기한 언론들의 의해 왜곡된 기사들만이 판을 치는 현실에 이 땅의 풍토가 개탄스럽다.

이제 오만과 위선 위장 편법을 버리고 변증법이 아닌 불합리 정치가 아닌 정말 공정, 정의 정공법으로 정치를 해주기를 바란다.

정치에는 현미경을 들이대면 절대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2019. 09. 17.

금요저널 주필/회장 이승섭작가

이승섭 기자  thesejongtv@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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