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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評] 삶의 존재란?
이분희 기자 | 승인 2019.05.06 08:23
문화주필/작가/이승섭시인

삶의 존재란?

1. 돌아간다는 것일게다

골목을 누비면서 회전목마를 돌리는 풍경에 늙은 목마의 주인장은 코 묻은 몇 잎에 시름 묻은 삶이 어스름이 묻힐 때까지 기다림의 여정이 아닌가.
목마의 주인은 우주의 일면과 아주 사소한 비유일 것이기에 -

살아가야 한다는 것.
더러는 호사에 출렁이는 뱃전에 주인처럼 거들먹 거리는 존재도 있을 것이고 또한 호구(糊口)를 땜질하기 위해 여기저기 운명을 끌고 회전목마를 돌리며 사는 운명도 있을 것이고 -
 

이 둘의 대비해서 보면 삶이란 것은 모두 숙명처럼 바람에 날리는 슬픈 깃발 같은 하루를 돌려 보내고 내일을 기다리면서, 더러는 희망을 노래하고 또는 생의 아픔에 꿈조차 없는 어둠의 터널을 지나야 한다.
산다는 것은 결국 살아 있어 견디는 다만 한페이지의 풍경일 뿐일게다.

세상에서의 삶은 중간 지대에는 없다. 한쪽에서 진행하는 아니면 그 반대의 경우가 있을 뿐이라면 어느 것이든 자기 확인의 증명서는 바로 자기 앞에 펼쳐진 현실에서의 운명일 것이기 때문인 것이다.
 

詩는 그런 노래를 부르는 상상력의 그물을 펼칠 때, 표정이 나타난다고 한다.
모든 시인은 자기 표정을 우회적으로 방법이나 비유나 상징 등 시적 장치로  나타내는 일에 다름이 아닌 것이다.

문제는 언제나 신선한 상상력의 그물을 펼칠 것인가의 詩적 개성이 표출 되는 것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서녁이 지면 새벽이 오 듯
새벽은 또 다른 시작인데

넘어가는 해질녁은
허전이지만 또 다른 희망이라

            시작과 끝< 홍영문>1연, 2연

2. 인간의 일상은 뜨는 아침에서 시작하여 지는 노을로 마감한다.
그 사이 사이로 삶의 파노라마가 펼쳐지고 무언가 의미를 만들고 찾아가는 여정을 재촉하는 것이다. 한해 시작이나 섣달의 마감이나 이러한 구분의 시간 속에서 존재는 이름을 알리게 된다. 물론 시간은 자연의 순환의 법칙이지 우주에는 시간이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시간은 인간이 만든 개념이고 그 개념 속에서 다시 족쇄가 되어 단위로 마감된다.
이런 논리는 지구 원(圓)이라는 점에서 예외가 아니다. 떠난 것은 돌아오고 돌아보면 다시 떠나는 이치는 불가(佛家)인연의 줄기라는 점에서 카르마가 임계치에 이르면 변화를 시작하는 것이다.
 

이 변화의 주기는 대체로 3년쯤이면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인간의 탐구 심성이 작동 된다고 보는 것일게다.

여기서 자기를 깨닫기 위해서 자각의 문에 들어갈 때, 변화는 옳고 바른 길에 들어설 수 있는 것이다.
 

"서녁이 지나면"의 가정법에서 '또 다른 시작'은 새벽(아침)에 의미의 바뀌를 굴리면서 자화상을 만들어가는 시인의 사고는 나이의 성숙에서 오는 성찰이 곧 철학의 옷을 입고 그의 詩를 이끌어 가는 모습이 정제되고 아주 근엄해 보인다.

3. 삶은 살아 있는 인간만이 죽음을 안다고 한다. 죽음이란 저 건너에 있는 개념이기에 오늘 生에 충실할 수 있으며 의미의 동기를 부여하는 生의 걸음걸이도 도출된다.
 

혹 개인 사고에 따라서 설정은 달라지겠지만 현생에 충실함이란 곧 살아가는 방법을 알아버린 의미에 머물 수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주의자는 늘 믿음을 갖고 새로운 삶을 살기가 두렵고 무섭다고 하는 것은 병이 위중하여 대 수술을 받고 기적적으로 완쾌 되어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엄중함에 현실에 적응하는 것이 참으로 무섭고 두렵다는 것일게다

새로운 삶을 살기가
어찌나 두려운지

이 무서운 인생길
어떻게 갈까

새롭게 테어난 삶
이제 느림의 미학으로
가보자

                   새 삶< 서진석>

죽음과 생의 갈림 길에서 오늘을 사는 현실주의자의 고백이랄까 지금까지 삶을 잉태 해오면서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던 긴 여정을 이제는 느림의 미학으로 천천히 가고 싶다는 서진석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온갖 시련과 고통 속에서 삶을 다시 찾은 시인은 앞으로 두려운 삶을 느림으로 살아 가겠다는 지표가 똑바로 정제되고 목표가 뚜렷해 남은 생 믿음과 고백으로 토대를 구축하는 인상을 지울 수 없어 더욱 미학으로 삶의 에너지를 찾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 하면서 순환의 논리가 철학으로 승화 되기를 기대한다.

2019. 05. 06.

금요저널 주필/작가/이승섭시인

 

이분희 기자  thesejongtv@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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