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㔕(글)의 이상이란
이승섭 | 승인 2019.04.12 09:08
이승섭작가

㔕(글)의 이상이란 1)글이 주는 효과는 무엇일까 라는 말에는 글을 쓰는 목적 의식에 근접하는 말이 아닐까? 토마스 만은 예술가의 임무는 생기 (to animate)에서 빠져 나가는 것이 아닐 때, 예술은 선(善)에 가깝고 친절성에 뿌리박고 있으며 화합, 공유를 위해 단지 위안(慰安)일 뿐이라고 설파를 한다. 왜냐하면 거창한 목표에 헌신하는 투사도 아니며 그렇다고 무기력한 허무주의자의 독백도 아닌 것이기 때문이다.

열정, 자신감, 생기 혹은 즐거움과 기쁨을 이어주는 때로 단순하기도 하며 혹은 복잡 미묘한 인간의 Ego를 대변하는 임무에 헌신하는 일이 작가의 역활이 아니겠는가? 다만 관과할 수 없는 것이 삶의 스토리에 무목적성이 아니라 상상으로 떠나는 이상의 꿈이 첨가 될 때 양념의 맛깔스러움은 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작가는 무엇을 찾아 떠나는 창작의 나래 속에서 꿈과 행복을 주는 언어의 마술사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몇가지 항목과 조건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2) 관(觀)자라는 속에는 '보다' '자세히 보다' '보이다' '드러내다' 명시하다, 의 의미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무슨 일을할 때, 우선 정립시 되어야 할 것이 어느 대상에 대한 목적 의식이 선명할 때 결과는 더욱 명확한 해답을 적성할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쓰는 것도 목적에 대한 정립이 있을 때의 경우가 확연한 것이다. 전자의 경우엔 언어의 조합일 뿐 이리저리 무엇을 주제로 표현 하려는 목적성에 대한 다양성이 나타나고 후자의 경우엔 비록 짧고 응축(凝縮)되어야 경결함이 언어의 의미가 깊은 숲을 이룩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생각 없이 무작정 길을 걷는 사람과 목표를 정하고 의식을 찾으며 길을 가는 비유와 다름이 없다는 뜻에서 대부분 단어의 함정은 언어의 유희에 빠진 작가가 많다는 것일게다. 왜, 글을 쓰고 시, 수필, 시나라오, 소설 등을 쓰는가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 어떤 의미로 구축하고 쓰는가의 대한 자문자답이 있고난 후에 대상을 목적, 제목, 상상, 창작, 을 관찰(觀察). 투시(透視)하며 어떤 언어의 유희로 의식을 표현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점점 저물어 가는 것이 깊어지면 과거지향형으로 변하는 것 같다.,

앞에 있을 것에 대한 기대감과는 달리 과거 추수의 갈을 넓게 확대하는 경향이 다분해진다고 할까? 그러나 너무 지나치면 나태의 그물에 걸리는 문제는 생을 살아가는 톡특한 개성의 문제로 돌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아, 고향에 혼자 여기 서있네 신중신 / 귀향시초 내 자란 고향 내 어린 시절이 저물어 가는 시간 속에서 고향을 돌아 보았지만 고향은 온데 간데 없고 높이 치솟은 빌딩만 서있고 흔적을 찾아 보았지만 모두 허방이라 아쉬움과 추억이 매몰 되었다. 내 살던 집 조차 찾을 수 없으니 빛바랜 꿈의 파편으로 회상의 골목을 자키는 오늘의 화상이 처연하다.

깊음이 깊어지면 허무가 되고, 어느 것도 구분하기 어려운 추상의 숲을 소요하는 귀향의 꿈 = 산중신시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詩는 잔솔함의 문법일 수 있기 때문이다. 3) 신명(神明) 하늘과 땅의 신령이라는 의미가 신명일게다. 작가는 어떤 작가인가를 묻는다. 왜냐하면 신명이 몸 속에 들어있는 사람이 작가일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칼럼니스트

세세하게 말한다면 시인은 산문이나 소설, 작가와는 달리 신들린 집중력으로, 詩 모습은 잠시 아주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금새 사라지기 때문이다. 작두무당이 신이 올라 절정에 다다를 때 작두를 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두 위에서 신기를 발동한다. 시인에게도 이러한 감각적인 무의식이 자리 잡아야 한다고 스승이신 황금찬선생은 설파했다. 물론 산문을 쓰는 작가는 현상의 리얼리티 = 보이는 것을 얼마나 실감있게 묘사하는 방법을 기술하는 작가와 이런 점에서 차이가 있지 않을까 한다. 인간은 테어난 후 어떻게, 무엇을, 에 목적 의식을 두면서 있는 것이다. 전자는 방법의 문제요 후자는 대상에 대한 구분법이 될 것이다.

시, 산문, 쓰는 일도 이런 구분의 명확성이 뒤죽박죽을 벗어나는 첩경이 될 것이다. 더러는 비비고 핥기도 하면서 꼬리도 만들어 흔들어 보는 것이다 세상 한번 편하게 살아보는 것이다 최영욱 달콤한 상상에서 어려운 것과 쉬운 것의 차이는 선택의 길이 아닐까. 그러나 중심잡기의 일생은 기준점이 필요하고 개성은 더욱 필요의 항목이 될 것이기에 = 은유한다면 개처럼 핥고, 고개 숙이고, 유순하게 사는 것도 도처춘풍의 삶을 일러 개 같은 칭하면 욕설이 된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없을 때 받는 통칭의 슬픔이기 때문이다.

편하게 살아 명예를 얻으면 그 가치는 짧고, 중심을 잡고 살아가면 명성이 따라오는 차이가 있다.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오적들의 지조는 당시는 고관대작의 삶이었서도 그 자손들은 숨어서 감추는 일이라면 어쩌면 생이라는 것은 필요의 정확한 목록이 아닐까. 달콤의 망상은 쓰디쓴 아픔과 슬픔이 된다는 것을 모를리 없는 역설의 기교가 최영욱시인의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 4)일체화(ldentity) - 시의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목록은 대상과 시인의 의도가 하나로 통합하는 길을 만드는 것일게다. 왜냐하면 표현하려는 사물 - 대상을 의도에 충실하게 하나로 묶을 것인가의 여지는 詩적인 기교를 넘어 재능으로 귀환한다. 물론 언어의 기교이지만 이는 Ego의 기교를 뜻하고 목적성의 하나 되기라는 점에서 일체화는 동일성의 원리가 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詩는 기교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언어, 리듬, 이미지, 상징, 시제, 비유의 모두를 일러 토운(tone)에 충실할 때 글의 맛깔은 살아나는 것이라고 스승께서 말했듯이 말이다.

내 신발은 젖었지만 그림자는 젖지 않았다. 그림자가 내게 자유를 명령했다 몸살이 시작된다. 아직 이른 봄인데 꽃나무처럼. 주인공이 또 하나의 나인 그림자를 끌고 다니면서 산다. 이녀석을 떼어버리기 위해 온갖 음모를 꾸며도, 벼랑에서 밀어도, 어둠에 갖혀도 다시 살아나는 숙명의 존재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인간인 것이다. 그러나 이 그림자를 무심히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비로서 존재의 형상으로 깨닫고 바라볼 때엔 새로운 자각의 길이 존재 문제로 부각 되는 것이다. 여기서 무심히 사는 사람과 작가의 통찰이 주는 삶의 무게는 완전히 길을 달리 한다.

작가에게 필요한 사물 이면(裏面)의 관찰기는 곧 글의 신선함을 부추기는 에너지가 될 수 있다는 뜻일게다. 5)신념(信念) 詩와 신념을 불가분의 개성으로 "무엇"에 해당될 것이기에 詩를 싣는 모든 잡지에서 공통적인 현상은 음풍농월의 그저 그 풍경의 연출이 대부분인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는 여러 가지의 문제가 있을 것이지만 자기 선전의 광고문을 작성하는 것에 불과 하다는 뜻이다. 이는 詩의 본질에 대한 문제와 직결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감상(感像)의 덪, 이미지 사용의 장식(裝飾)성, 관념이나 의도의 지나침, 모순이나 충돌이 내포 된 지나치게 종교적인 강조는 좋지 않은 표본이라는 지적에 대해 학자들은 강조하는 것이 요즘의 요점이다. 미상불 시의 신념은 자기 중심을 세우는 일이기 때문에 글의 표정에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를 관찰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㔕(글)이 주는 합리적 이상은 과연 무엇일까 라는 (?) 는 글쎄올시다. 아니면 아니올시다인 것이다

2019. 04. 작가/칼럼리스트/ 칠보/이승섭

이승섭  thesejongtv@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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