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逍遙(소요)의 허허로움
이승섭 기자 | 승인 2019.03.28 12:47

바람처럼 왔다 바람처럼 사라지는 내 자유스러움의 함량은 얼마나 될까?
소요의 바라기는 한줌인데 관조와 낙관은 벌판이라 내 이런 이중성에 문제는 없는 것인지 봄이 벌써 자취도 없이 슬며시 오고 있는 중인데 나는
슬픈 잔해는 없어 지기 바라는 마음에서인지 욕심만 키우는 것은 아닌지 의문 투성이다.
벌써 춘분이 지나고 한식이 닥아온 이때 삼라만상은 요동을치고 미세먼지라는 인류의 문명 속에 만들어진 암적인 존제가 우리의 삶을 불편스럽게 하며 문명 용어가 어색하지 않게 현실을 맞이 하니
이 얼마나 소요인가.

금요저널 이승섭공동회장,시인,작가


봄의 시작을 알리는 푸른 새싹이 기지개를 피며 자연의 위력을 나타내는 흔적이 여기 저기다.
산을 오르면 봄을 알리는 요염한 자태로 생명의 위대함을  보는 것에 감탄이 연발이며 삐죽 내밀고 올라오는 새싹은 살아있다고 자태를 뽑내는 것을 보고 있자면 우주의 오묘한 현상 앞에  다시한번 놀란다.

또한 한방울의 물이 바위를 뚫고 이내 천리 장강을 이루는 모습을 떠올리면 부드러운 일에는 곧 위력을 발휘하는 애너지를 감추고 있다는 지경에 이른다. 그렇다.  보이는 것보다는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 - 그 속에는 무한의 애너지가 숨쉬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약한 것, 기우는 것 그리고 마침내 사라지는 것들에서 느끼는 연민은 모두 어떤 애너지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허세와 호기로 세상을 넘나드는 인간들의 휭행하는 일이 다반사의 일상에 강풍이 불면 자기에게 닥아오는 위험이 무엇인가를 계산하는 것이 인간이며 보슬비의 소리를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에는 그윽한 희망의 메세지를 감지하는 그런 햇살의 힘은 느낄 수 있고, 눈의 위력을 실감하는 -
이제 푸르름의 산천을 바라보는 이 계절에 아우성을 치며 허전의 삶을 바라보면 인간사가 허무해진다. 더구나 싸였던 눈이 햇살의 위력에 의해 소리없이 사라진 모습의 공허 -
허무는 확실히 애너지를 가지고 있다.
비록 애달픔이 남아있다해도 어른거리는 잔상(殘像)에서 닥아오는 아픔 같은 것 - 그런 잔상에 남겨진 기억에서 건져 올리는 인간의 사고 속에는 축적된 소리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소유와 이질이 힘이 있는 것 같지만 오히려 무소유에서 느끼는 것은 세상의 모든 것과 소통하는 의미에서 위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갈(鱾渴)을 채우기 위해 음식을 찾고, 허전을 메우려고 이동하는 행동 속에서 인간은 욕망을 키우게 된다. 완전한 것이 없는 완전의 공간에서 허망이 들린다.
이해라는 것. 이는 이미 얽메인 노예의 신분이다. 그러나 이를 벗어나는 일은 일종의 망각을 뜻할 것이다. 이 망각은 완전히 자유로 통하는 길을 만든다. 그러나 자유라는 이름도 어떤 얼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행동을 거기에 맞춤하는 일이라면 자유라는 말조차 사실은 자유가 아닐 때 갖게 되는 열망의 의미일 것이다.
눈이 녹아버린 땅에는 자취도 없고 오로지 검은 모습이 잔상을 떠올리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폭설에 묻힌 땅을 생각하고 이어 없어진 자취를 생각하는 것의 차이는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아예 모든 상황을 보지 못한 사람의 의식과 전체의 진행을 파악하고 있는 것의 차이 - 자유라는 말에는 그만큼 구속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살아 있는 체험의 인간만이 자유를 알고 그 자유를 그리워 하는 것은 자기 존재의 영역에 대한 수식어일 뿐이다.
어제까지 마당에 쌓인 눈을 어떻게 치울까 염려했고 힘으로 부치니 그냥 두고 보자는 것을 외면했다. 그러나 서울에 외출하고 집에 돌아온 오후엔 거의 말끔하게 사라진 데크의 허전을 바라보니 삶의 족적이 보이는 것 같다. 무엇을 남기고 또 무엇을 남겨서 새기는 어리석은 행위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내 초라의 모습이 -
이제 익어가는 깊이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관조하고 느림의 미학에 취하고 싶어진다. 아니 어쩌면 강풍에 마구 날려 어디론가 날아 가고픈 허망을 느끼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또한 무심한 햇살 아래 사라지는 저 순간의 의미에 전율하는 고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일 것이다. 마치 고요의 폭력을 느끼는 일이 내 마음에 쌓인 허무의 공기와 같은 것처럼 -
누가 공감했고 또 누가 내 뒷자리를 애달파하는 일도 결국은 어리석다는 결론 앞에 서성이는 오늘이 있을 뿐이니 이 노릇 어찌 하리오. 뭐 사는 것이 무엇이고 애증이 어떻고 라는 장황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
봄이 오는 길목에 조바심으로 골목으로 빠져나간 나의 자취가 이제 걷힌 햇살의 틈새로 돌아오는 순간의 웃음을 발견 한다면 내 삶의 모든 일은 자유로워질까 하는 (?) 의문이다. 하드를 돌리면서 하루를 살기 위해 다시 소프트웨어 자판을 서성이는 내 모습이 검은 글자 사이에서 역시 어성성이다. 한식이 도래하는 이 시절에 서재 2층 창문 넘어로 먼 산들의 모습이 허허로움이 정겹다.

                    2019. 03.

         봄이 오는 소요 속에서

이승섭 기자  thesejongtv@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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